수술 부위 잘 가려야 안기부‘새 살’돋는다
  •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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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입‘원천봉쇄’장치 마련하고 부서 기능 재조정해야

김대중 정권의 가장 시급한 개혁 과제로 재벌 개혁에 이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개혁이 꼽히고 있다. 현재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경제의 총체적 위기는 안기부와 재벌이 역대 정권을 각각 이데올로기와 물적 측면에서 불법적으로 뒷받침한 측면이 적지 않다는 비판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집단에 대한 개혁이 도마에 오른 배경은 상이하다. 재벌개혁이야 누가 집권하더라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사태 때문에 불가피했겠지만, 안기부 개혁은 야당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 개혁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안기부의 조직과 예산을 공개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문제다. 국내 정치에 개입해 왔다는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안기부로서는 어떻게든 개혁이 칼날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안기부는 지난 1월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 보고에서 조직과 예산을 보안 사항이라며 한사코 밝히기를 거부했다.

 안기부의 거부 사유는 보안 때문만은 아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안기부의 업무 보고 거부는 차기 대통령측의 양해 아래서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대통령의 통치와 관련한 국가 기밀을 국민회의 소속이 아닌 인사가 다수 포함된 인수위에 보고할 수 없지 않느냐고 차기 대통령측을 설득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에 따라 안기부는 이종찬 인수위원장을 통해서만 업무 보고를 하기로 했다. 결국 안기부의 업무 보고 거부 사태는‘개라 새 주인을 몰라보고 문’격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차기 대통령측은 안기부 개혁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고려하고 있다. 우선 안기부의 국내 정치개입을 근절하기 위해 정치 정보 수집과 공작 기능을 폐지하는 것이다. 이는 김 차기 대통령 자신이 야당 지도자 시절 오랫동안 안기부 정치 공작의 대표적인 희생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 번째 방향은 해외 경제 정보 수집 강화이다. 이는 한국 경제가 오늘날 국경 없는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해외 고급 산업 정보에 대한 안기부의 수집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중앙정보국 등 선진국 정보기관들도 해외 경제 정부 수집 기능을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만약 안기부가 이 같은 방향으로 개혁될 경우 국내 정치 정보 수집과 공작부서 인력은 해외 경제 정보 수집 부서로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기부의 이 같은 개혁 방향에 대해 이를 구체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안기부 내부에서는 차기 대통령측이 안기부1차장 산하 국내 담당 부서들 중 국내 정치 정보 수집과 공작 부서를 폐지하고 순수한 대공 수사 부서만 살리겠다는 구상에 이의를 제기한다. 대공 수사 기능을 살린다고 하더라도 대공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 정보수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와 고관련해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대공 수사는 외국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인 만큼, 누가 간첩인지 찾아내려면 정치권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안기부 대공수사 부서가 서울대 고영복 교수의 고정 간첩혐의를 미리 포착했더라면 그가 정부의 고위직에 임용되지 못하게끔 조처했을 것이다. 이것이 정치 개입이라면 대공 수사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안기부의 정치 개입은 가능하다.”

2차장 · 3차장 직속 부서가 개혁1순위
 이 소식통의 지적은 안기부 개혁 방향에 무시하지 못할 함정이 있음을 일깨운다. 즉 국내 정치 정보 수집과 공작 기능이 폐지된다고 해서 안기부의 정치 개입 근절이라는 차기 대통령의 목표가 달성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대공수사는 언제든지 국내 정치 정보 수집과 공작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안기부가 대공 수사과정에서 획득한 국내 정치 정보를 정치 공작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확실하게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안기부 일각에서는 국내 정치 정보 수집기능이 존속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직후 안기부의 정치 정보를 받고‘안기부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가 있듯이, 김 차기 대통령도 통치권 행사에 필요한 정치 정보를 안기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따라서 안기부는 정치인들에 대한 사찰 · 공작 기능만 폐지되고 정치 정보 수집 기능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국내 정치 정보 부서에 종사하는 대규모 인력을 현실적으로 해외 경제 정보 부서로 전환 배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안기부 소식통들은 그 배경으로, 이 인력은 오랫동안 정치 정보 수집에만 종사함으로써 급변하는 국제 정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안기부는, 해외 경제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김 차기 대통령의 구상에 대해서도 곤혹스러워한다. 그가 말하는 해외경제 정보가 외국의 고급 산업 기술 정보라면, 안기부가 산업 스파이 행위를 해야만 한다는 말로 해석되어 외교마찰을 초래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안기부측 주장이다. 실제로 앞서의 안기부 소식통들은 차기 대통령의 이 같은 구상이 언론에 공개되자 외국 정부들로부터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김 차기 대통령은 안기부에서 가장 시급한 개혁 대상 부서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2차장 직속 대북공작실 · 해외정보실, 그리고 3차장 산하 대북전략실 · 남북교류협력실 · 남북대화실 · 북한실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이들 부서는 차기 대통령이 안기부에서 가장 중요한 개혁 대상으로 삼아야 할 부서들이다. 만약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정부가 제아무리 대외 신인도를 높이더라도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차기 대통령이 이들 부서에 대해 가장 시급히 개혁할 또 다른 부분은, 국내 정치에 남북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안기부는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안기부의 대북 전략이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 그 같은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실제로 안기부는 지난해 7월 4자회담 예비회담을 받아들인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기자회견을 강행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사례로, 안기부가 지난 8월 초부터 신한국당(현재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위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이회창 후보 극비 방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의혹이 꼽힌다. 당시 이 프로젝트에는 신한국당 이 아무개 의원이 극비리에 가세해 9월초 북경에서 북한 노동당 장성택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만나 성사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그러나 성공했다면 이회창 후보에게 매우 유리한 선거 국면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안기부에 대해 이 같은 비판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2차장과 3차장 직속 부서의 요원 대부분은 남북관계를 올바로 정착시키려고 고민하는 엘리트들이라는 평을 듣는다. 특히 해외정보실의 경우 북한의 제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정부의 올바른 대북 정책 수립에 기여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실제로 이 부서 요원들은 북경 등지에서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북한 고위 당국자들을 접촉해 북한 지도부의 변화 등 고급 정보 확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안기부내 중론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안기부가 거듭나려면 대북전략실과 대북 공작실을 차장 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기부의 대북 전략이 일관성이 없는 것은 대북 전략과 공작이 따로 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 전문가는 또 대북 전략 수립에 필수인 북한 정보를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해외정보실도 앞서의 두 실과 함께 있어야 안기부의 대북 전략이 국내 정치에 영향받지 않고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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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 배치 등‘부실 인사’도 쇄신 대상 ·  ·  ·
 사정이 이러함에도 그동안 어떤 이유로 대북전략실과 대북공작실이 분리되어 있었을까. 앞서의 소식통들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작년 초 김현철씨 비리에 연루되어 안기부를 떠날 때 안기부가 운영차장제를 폐지하지 않고 3차장제를 신설하면서 제2차장이 맡고 있던 대북전략실등 여러 실들을 끌어모아 3차장 밑에 두었다. 바로 이때부터 안기부 내부에서조차 대북 전략과 공작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북전략실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라고 앞서의 소식통들은 지적한다. 대북전략실이 주업무인 대북전략은 제쳐두고 남북 교역, 남북 교류 협력 사업, 사업자 인허가, 대북 인도 지원 문제도 등을 이루는 민원 부서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 업무들은 통일원의 남북교류협렵국과 중복된다. 한 대북 사업자는“안기부와 통일원이 동시에 남북 교류 협력 사업에 간여하면서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 전문가가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는 투명한 인사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의 소식통들은, 안기부의 인사가 상당부분 연줄에 의해 이루어지다보니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비전문가가 앉는 폐단이 속출했다고 밝혔다.

 김 차기 대통령측의 안기부 개혁은 안기부의 공과 과를 철저히 구별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안기부 관계자의 우려처럼 안기부 개혁은‘맹장수술을 하려다가 심장을 떼어내는’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개혁 대상인 안기부는 남북 관계의 긴장 완화가 곧 IMF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 중의 하나임을 인식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안기부가 이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조직과 예산 등 내부 사정을 인수위에 공개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李敎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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