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자유에 떠밀린 표현 자유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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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청 벽화 · 전주시 장승, 기독교계 반발로 훼손 · 철거 시비

지방 자치 단체가 의욕적으로 펼치는 공공미술과 민속 문화 재현 등 문화행정의 성과물들이 최근‘종교의 자유’를 앞세운 종교인들의 반대로 작품이 훼손되거나 철거 시비에 휘말렸다.

 광주광역시 북구청(청장 김태홍)은 지난해 12월14일 기독계의 요구를 수용해, 1년여 동안 논란을 빚어온 청사 벽화의 일부를 수정했다. 북구 청사 벽화는 96년 9월‘공공미술’의 한 형태로 북구청이 7천8백여만원을 들여 제작한 적국 유일의 관청 외벽 벽화. 공모를 거쳐 작가 홍성담씨(42)가 제작한 이 벽화는 가로 42m, 세로 3.4m 크기에 타일 6백46장으로 구성된 부조 작품이다.

 ‘회복’이라는 주제의 이 벽화는 특히 전통 민화의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광주의 옛 모습과 공동체정신을 재현하고 첨단 과학 도시 광주의 미래를 제시해 공공 미술의 한 형태로 큰 관심을 끌었다. 광주 지역 기독교계의 반발을 부른 것은 벽화 중앙 남자 좌상 부분으로, 벌거벗은 소년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장면과 벌거벗은 상체를 드러낸 여인이 묘사된 장면.

 고아주시 두암동 중앙교회 박갑웅 목사 등‘광주 기독교단체협의회’소속 기독교인들은“벽화 일부내용이 가부좌를 틀고 참선하는 모습을 표현해 특정 종교와 무속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상체를 드러낸 여인의 모습은 미풍양속을 저해할뿐더러 자녀 교육에도 좋지 않다”라며 크게 반발했다.

 북구청은 기독교계의 항의가 계속되자 지난해 9월부터 97비엔날레와 월드컵 홍보 플래카드를 내걸어 문제가 된 장면을 가리는‘고육책’을 써보기도 했으나, 결국‘남자좌상’부분을 채색된 비닐로 덧씌우고 접착제로 선팅해 가리는 것으로 일단 논란의 소지를 없앴다. 김태홍 북구청장은“앞으로 홍성담씨와 협의해 작가 의도를 살리는 방법으로 벽화 수정 문제를  결정짓겠다”라고 밝혔다.

홍성담씨“남자 좌상, 스님과 전혀 관계없다”
 그러나 작가 홍성담씨는 “작품을 수정하는 전제 조건으로 북구청에 공청회를 열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렇다 할 얘기 한마디 없이 끝내 작품이 훼손됐다. 남자 좌상 부분은 광주의 상징인 태봉산을 통해‘자연과의 합일’을 표현한 것이지, ‘참선하는 스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홍씨는 또“북구청 벽화는 정식 공모전을 거친 작품으로 전문가의 검증을 이미 받았다. 설사 문제되는 장면이 있다 해도 작가와 사전협의 없이 작품을 수정한 것은 저작권 훼손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북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임을 밝혔다.

 미술 평론가 성완경씨는“종교계가 문화적 의미의 작품을 교리적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트집 잡는 태도는 성숙하지 못한 행태다. 이제 공공 문화와 종교도 서로의 울타리를 넘어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관용의 문화’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전주시(시장 양살렬)가 고도(古都) 전주의 옛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건립한 장승도 기독교계의 반발로 철거 시비에 휘말리고 잇다. 전주시는‘장승백이’로 불려온 전주시 완산구 평화1동사무소 앞과 전주-무주 길목인‘소리개제’에2천7백만원을 들여 지난 10월 높이5m짜리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장승을 각각 설치했다. 그러자 전주 예일 교회 임기수 목사등 기독교인들은 전주지역 43개 교회로 장승철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무속신앙을 확산하고 미신을 조장하는 장승을 2천여만원이나 들여 설치한 것은 예산 낭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승이 철거되지 않을 경우 서명운동 등 조직적인 철거운동을 펼칠 방침을 정했다.

 전주시 평화동에 사는 이정애씨(36)는“나 자신이 천주교회를 다니는 교인이지만 장승이 미신숭배를 조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과민 반응하는 것 같다”라며 장승철거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전주시청 관계자는 “이미 학계와 향토사학자의 자료 발굴과 고증을 거쳐 설치했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반발이 있는 만큼 전주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열어 철거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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