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기부 개편 방향/실장급 이상 대대적 물갈이
  • 김당 기자 ()
  • 승인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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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안기부장 임명 후 착수… 음지 · 양지 뒤바뀔 듯

국가안전기획부(부장 권영해)개혁 방향 가닥이 잡혔다. 조직은,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적대적M&A(합병 · 매수)’이고, 인력은‘국 · 실장급은 다 물갈이’하는 쪽이다. 그 결과로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될 판이다.

  이같은 방침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이종찬)가 안기부의 업무 보고를 청취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인수 업무 중단’파문과 그 이후의 수습조처에서 드러났다. 인수 업무 중단 사태는 자칫 인수위와 안기부간 대립으로 번질 뻔했다. 그러나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개입해‘안기부 인수 업무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지침을 내림으로써 파문은 곧 가라앉았다.

독대 후‘선 접수, 후 개편’선회
 얼핏 보면 안기부의 판정승이다. 인수위와 안기부의 샅바 싸움에서 김 차기 대통령이 안기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스타일을 잘 알고 안기부 사정에도 비교적 정통한 국민회의 소속 국회 정보위 관계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안기부 사정에 정통한 한 정보위 위원은“정부 일반 부처와 달리 안기부 개편은 김 차기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정보위 위원은 차기 대통령의 지침은 곧 임명할 신임 안기부장을 통해 업무를 파악하고 나서 천천히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선 접수, 후 개편’이다.

 이와 관련해 안기부 사정에 밝은 인수위의 한 전문위원도“안기부 개혁에 대한 차기 대통령의 의중은 서두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문위원은 그 배경으로“안기부는 이미 차기 대통령에 대한 독자적인 보고 채널을 가동하고 있고 정례적으로‘대통령 보고서’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김 차기 대통령이 안기부의 공식보고를 처음 받은 때는 지난해 12월26일이다. 당시 안기부측 보고자는 권부장과 박일룡 · 이병기 · 엄익준차장, 신정용 기획조정실장 등 5명이었다. 차기 대통령측 배석자는 정보위 위원인 박상천 · 천용택 · 임복진 의원과 조세형 총재권한대행 · 이종찬 인수위원장 · 김중권 당선자비서실장 · 유재건 총재비서실장 등 7명이었다. 안기부측은 이 날도 보안을 이유로 들어 배석자를 정보위 위원으로 제한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차기 대통령측은 이를 일축했다.

 그러나 70분간의 복고 시간에서 후반 30분은 당측 배석자 없이 진행되었고, 특히 10분간은 권부장과 독대가 이루어져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천용택 의원은“통치권자만이 알아야 할 극비 정보 사항에 대한 보고가 있었을 것이다”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이른바‘대통령 보고서’에 관한 보고 양식과 절차 등을 안기부장이 보고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차기 대통령의 의중이‘선접수, 후 개편’쪽으로 방향을 잡은 배경에는 이같은 속사정이 잇는 것으로 보인다.

 결구 최고 통치권자 1인하고만‘직거래’하려는 정보기관의 생리와, 정권교체에 따른 조직의 동요 및 문서 파기 행위, 그로 인한 정보 생산 중단과 안보 공백 상황 등에 대한 차기 대통령의 우려가 맞물려 안기부 인수 창구 단일화라는‘과도적 조처’가 나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의 정보위 위원은 정권 인수라는 과도기가 지나면 차기 대통령의 당초 의중대로 대통령 직속 기관(안기부)에 과감한 수술이 단행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 같은 관측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의 이번 조처는 안기부의 판정승이 아니라 KO패를 예고하는 것이다.

 우선 간과해서 안될 것은 새 정부는 과거와 같은‘정권 재창출’이 아닌 수평 교체에 의해 수립된 정부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안기부에서 잔뼈가 굵은 간부들은 수십 년간 차기 대통령과 직 · 간접으로 적대적 관계이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새 정부의 안기부 조직과 인맥에 대한 인수는‘적대적M&A’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안기부는 정권 안보와 국가 안보를 동일시해 왔다는 것이 차기 대통령의 안기부관이다. 결국 대수술이 불가피 하다는 것이다.

 현재 안기부 개편을 둘러싼 쟁점은 국내 정치 간여 금지(안기부법)와 안기부 수사권 제한(국가보안법)이다. 전자는 이를 위반하면 7년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이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에서 이 법을 어긴 죄로 처벌 받은 직원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안기부법을 법대로 적용하면 실 · 국장 이상 고위직 중에서‘살아남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안기부 직원들의 솔직한 답변이다. 결국 현재의 국 · 실장급 이상은 다 물갈이 대상이라는 말이다.

교수보직 인사 상당수 복귀 전망 
 안기부는 대선 직전에 1실장과 대구지부장을 바꾸었다. 이례적인 인사였다. 1실장은 이른바 국내 담당인 1차장 휘하의 핵심 부서장이다. 안기부 직제가 국(局)에서 실(室)로 바뀌기 전 기획 판단국에 해당하는 곳으로, 1실장은 1차장으로 가는 핵심보직이다. 결질 배경은 1실장이 지방을 순회하면서‘DJ는 절대 안 된다’고 한 발언을 입수한 국민회의측이 정치 쟁점화했기 때문이다. 당시언론에는 이사 내용과 배경이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정보위 간사인 천용택 의원이 권영해 부장에게 공식 항의하자 선거후 잡음을 없애기 위해 이들을 선거 전에 경질했다는 관측이다.

 2실은 이른바 김대중 비자금 폭로건과 관련해서 도마 위에 오른다. 2실장 ㅇ실장 휘하 일부 직원들이 비자금 폭로에 개입했다는 것이 국민회의측 시각이다. 국내 정보 수집 부서인 2실의 경우 6개 처가 모두 개편대상이다. 오익제 월북 사건 수사를 맡은 3실의 Rㄱ실장은 경질 0순위로 꼽힌다. 이밖에도 해외 및 대북 파트 역시 오익제 월북 및 일련의 평양발 편지와 관련된 북풍(北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안기부는 지난해 3월 3차장제를 도입해 그동안 2차장이 관장하던 해외 · 대북 파트를 해외 담당(2차장)과 대북담당(3차장)으로 분리했다. 차기 대통령측은 선거 막판에 북풍을 직접 주도한 세력으로 안기부 ㅇ · ㅎ 전 차장을 꼽지만, 3차장이 관장하는 3개 실도 일부 책임이 거론된다.

 부 · 차장을 포함한 국 · 실장들이 대폭 경질될 경우, 교수 보직으로 정보연수원에 가 있는 1~2급들이 상당수 복귀할 전망이다. 대표적 인사는 조창월 정보연수원장(1급)이다. 수수통인 조원장은 두렷한 이유없이 한직에‘유배’되었지만 그 덕분에 정치 간여에서 자유로운 처지가 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총무관리실 같은 지원 부서를 밴 안기부 핵심 조직인 8개 실장ㅈ우에서 호남출신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대선을 앞두고 지자체 단체장 선거 연기 검토 문건 유출 같은‘사고’를 막기 위한 인사포석이었다는 것이 중론인데, 결과적으로‘물 먹은’인사들한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안기부 부훈(部訓)대로 음지가 양지로 바뀐 것이다.                                             
김 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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