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몸집 불리기’ 시동
  • 김당 기자 ()
  • 승인 1997.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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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청사 신축, 정보대학원 설립 추진…올 공채 인원 예년보다 100%증가

정중동(靜中動). 요즈음 국가안전기획부의 동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정권 교체기만 되면 나타났던 집권 여당 후보에 대한 간부들의 노골적인 줄서기는 사라졌다. 대통령 선거를 겨우 40여 일 앞두고 야당 후보가 각종 여론 조사에서 몇 달째 선두를 다리는 이례적인 현상이 반영된 결과이다. 게다가 집권당 자체가 사분오열되어 누구를 밀어야 할지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권영해 부장도 요즘 부쩍 간부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안기부는 이처럼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한 채 조용히 실속을 챙기고 있다. 정권 교체기라는 ‘틈 새 시장’을 파고들어 최대한 몸집을 불리려는 전략인 셈이다.

“통일 대비한 전문 인력 양성이 목적”
 안기부는 지금 ‘교육중’이다. 서울 이문동 국가 정보연수원에서는 올해 뽑은 새내기들이 박사 학위 소지자 13명을 포함한 선배 교수진 70명으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올해 뽑은 신입 공채(7급)기수(35기)는 백명이다. 문민 정부 들어 해마다 40~50명씩 뽑아온 예년의 신입 공채 기수에 견주면 100% 이상 늘어난 숫자이다.

 안기부는 또한 ‘면학중’이다. 기존 국가정보연수원(원장 조창월)을 국가정보대학원(가칭)으로 전환해석·박사 학위 과정을 개설하는 부설 대학원 서립을 추진하고 있다. 안기부는 이미 10월 정기국회 회기에 맞춰 정보위에 ‘학업 계획서’를 제출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이 국가 정보대학원 설립 추진안에 따르면, 안기부는 현재 대학원 설립을 뒷받침할 국가정보대학원 설치법(제정안)에 대한 정보위 심의를 끝내고 정부(차관회의)에 상정해 놓고 있다. 사실상 대통령의 재가만 남겨 놓은 상황이다.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안기부의 ‘학업 계획서’에 따르면, 안기부가 내세우는 대학원 설립 명분은△북한의 급변 사태로 인한 통일에 대비해 정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21세기 정보전쟁에 대응해 자주적인 정보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기능을 강화하자는 데 있다.

 안기부가 대학원을 설립할 필요성으로 맨 먼저 내세우는 것은 북한의 급변 사태 등 통일에 대비한 북한 전문가 양성이다. 현재 국가정보연수원이 북한 정보 과정(연7백명)을 교육·운영하고 있으나 과거 서독이 통독에 대비해 분야별 동독 전문가를 양성했던 것에 비추어 현재의 과정만으로는 통일에 대비한 전문 요원을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첨단 정보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는 것도 중요한 대학원 설립 이유이다. 즉 국내 대학원에는 전문 인력 양성에 필요한 국가정보학·정보특기학 같은 학과가 개설되어 있지 않고, 관련 과목을 일반 대학에 개설해 요원들을 위탁 교육할 경우에는 요원들의 신분이 노출되고 예산도 낭비라는 것이다. 이같은 점 때문에 러시아 등 외국의 정보기관 정보학교 안에 정보대학원 과정을 설치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 정보 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전문가 양성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대학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현재는 위성·항공 사진 판독, 암호 해독, 전자통신 분야 등 대북 영상·신호 정보의 대부분을 미국의 정보 제공 중단에 대치해 한반도 주변국에 대한 독자적인 첨단 정보 수집 체제를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기존 정보 역량에 학문적 분석을 접목하고 부문별 정보기관 요원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해 국가 정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대학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안기부가 36년간 축적한 정보 분야별 연구·실무 경험을 살리고 국내외 저명 대학 및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등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학문적 분석을 접목하고, 현재 부문별 정보기관 요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훈련 기관이 없는 만큼 과정에서 이를 지원해 총체적인 국가 정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부처와의 형평성과 예산이다. 현재 부설 대학원을 갖고 있는 정부 부처는 국방부(국방대학원)가 유일한데. 이는 군 조직의 특수성과 자체 교육기관(사관학교)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의 경우 창립 모델인 미국 중앙정보국(CIA)에도 없는 부설 대학원을 설립하려는 것은 정보·수사권에다 교육 기능까지 가지려는 ‘과욕’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따라서 국립대학안에 국가정보학과정 특수 대학원을 설립해 운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정보위원도 있다. 또 일부 부처에서는 내놓고 얘기는 안하지만, 안기부가 정권교체기를 틈타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안기부도 이같은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부설 대학원을 설치하더라도 기존 국가정보연수원의 시설 및 인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조직이나 예산을 늘리지 않고도 운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교육법 상의 대학 설립규정은 학생 40~50명당 교수 1명꼴인데, 현재의 국가정보연수원에만도 박사 학위 소지자를 포함해 교육법상 자격요건을 갖춘 교수 인력이 70명이나 있고, 실무 부서에도 세계 각국의 유명 대학 박사 학위 소지자가 상당수 있어 이들을 겸임 교수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국가정보연수원에 있는 교육시설(교지 5만평, 교사 1만5천평)을 활용하므로 추가 예산 소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사적체 해소에 숨통 트일 듯
 그러나 7천억~8천억원에 이르는 안기부 예산의 내역 자체가 기밀이기 때문에 안기부가 마음만 먹으면 계수를 조작해 대학원 운영에 따른 추가 예산 소요를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안기부 예산 내역은 2급 비밀인데다 1년에 한 번뿐인 국회 정보위의 예·결산 심의 자체가 형식에 그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일까. 안기부는 지금 ‘공사중’이다. 올해 안기부 예산(정부 일반회계 상의 본예산)에는 안기부 제2청사 신축 비용이 계상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거기에는 교육 시설도 포함되어 있다. 즉 안기부는 이미 내곡동 청사에 신축하는 제2청사의 교육 시설을 부설 대학원 교육 시설로 활용할 계획을 세워 놓고 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안기부는 올해 대학원 설립을 뒷받침한는 ‘국가정보대학원 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당장 내년부터 국가정보대학원에 국가정보학과를 설치하고 그 안에 2개의 전공 과정(국가정보학·북한정보학)을 둔다는 계획이다. 또 일단은 주간석사 과정부터 시작하되 장차 박사 및 야간 석사 과정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한편 대학원 입학 자격은 공무원 임용에 흠이 없는 대학 졸업 민간인을 주대상으로 하되, 대학을 졸업한 안기부원과 유관 기관 직원을 포함할 계획이다. 입학생 규모는 전공 과정 별로 20명 정도를 책정하고 있다.

 사실 명실상부한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조직 내에 교육법 상의 ‘진짜 대학원’을 갖는 것은 안기부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이름바 안기부맨들은 “미국의 대학 교수들은 CIA 분석관이나 정보 학교 교수 경력을 가진 것에 대해 매우 자긍심을 갖고 있다”라는 말을 곧잘 한다. 정보기관에서 쌓은 오랜 실무 능력을 학문과 접목해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정학(情學)협력’이다.

 이에 비해 안기부는 지금껏 선배들이 쓸 만한 교재 하나 집필해 놓은 것 없이 CIA 교범을 그대로 번역해 쓰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보면 ‘공부’보다는 ‘공작’에만 전념해온 당연한 결과이다. 그나마 연구 · 교수 직도 교관(정보학교)에서 교수(국가정보연수원)로 승격한 지 2년밖에 안되었다. 그만큼 부서에서 갈 데 없는 사람이 거쳐가는 한직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부설 대학원이 설치되면 국가정보연수원교수들은 신분이 안정되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교육법 상의 정식 교수가 된다. 실리도 크다. 연구 · 교수 직 부원들은 정년이 자동으로 연장(대학교수 정년 65세)된다. 이로써 계급 정년의 위협에 시달리며 적체된 부이사관 · 이사관 · 관리관급 인사에 숨통을 틔우는 데도 적지 않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전에는 ‘물 먹은 자리’로 간주되던 정보연수원 교수 자리로 벌써부터 서로가려고 한다는 말도 들린다.

 95년9월 신청사 완공을 계기로 안기부는 ‘국민에게 안기는 안기부’라는 새로운 슬로건이 될지 아니면 한때 국방대학원이 그랬던 것처럼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골프 싱글 대학원’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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