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첫 상봉 우리가 성사시킨다“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7.11.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부 민간단체 · 언론 · 기업, 98년 봄 목표로 앞다투어 추진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 되어 오던 미간단체와 일부 언론·기업의 이산 가족 상봉 추진 사업이 서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완상 전 통일 부총리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사회문화연구원(한사연)은 최근 ‘사이버 이산 가족 찾기 사업’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원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10월27일 ‘한반도 내에 이산 가족 면회소를 설치하자’고 북측에 제안하고 나섰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거나 방문 중인 일부 언론사들도 이산 가족 상봉 사업을 중요 의제로 노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일부 이산 가족 상봉 주선 단체는 중앙 일간지를 상대로 ‘이산 가족 상봉이벤트’를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중 일부는 특정 언론사와 이산 가족 상봉 및 중계 사업 협의를 사실상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빗장 열쇠’ 북한 조평통이 갖고 있어
 이처럼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이산가족 상봉 추진 사업은 4자 회담 성사 기류와 남북관계 변화 조짐을 타고 ‘최초 성사’라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앞다투어 진행되는 양상이다. 이들은 대체로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봄을 목표로 잡고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에 김정일 총비서 체제가 출범하면서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 이산 가족 문제의 빗장을 풀겠다고 내비친 의중을 읽어낸 점도 한몫 했다.

 현재 공개적으로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는 한사연이다. 한사연은 10월 말부터 PC통신과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이산가족 찾기 사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이산 가족들로부터 신상과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들의 관련 정보를 모아 전산화한 뒤 이를 북한의 ‘준비된 자료’와 접속해 생사 확인 및 상봉까지 주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해 한사연 이장현 원장은 “한사연은 통일원 산하 단체로서 이산 가족 차기 사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온겨레한가족운도’을 펼치기로 하고 지난 5월부터 준비해 왔다. 그동안 정보통신부가 후원하는 기술토론회 등을 거친 끝에 이산 가족 수십만 명분의 자료를 입력해 서비스할 수 있는 인공 지능 검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라고 말했다.

 한사연은 오는 11월17일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온겨레한가족운동본부’를 발족키로 했다. 현재 이홍구 전 총리, 조계종 월하 종정, 가톨릭 김수환 추기경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 선거를 앞두고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 여야정당 중진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이미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입력하기 위해 이산 가족들에게 성별·주소 등 문자정보뿐 아니라 용모·헤어스타일 등 화상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보내달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통신 서비스는 (주)한컴, 소프트웨어 개발은 한얼CNC, 영상 지원은 다진컴이 각각맡고 있다. 본격 서비스가 개시되면 PC통신 외에도 전화음성자동응답(ARS)을 통하거나 직접 방문해 생사 확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사연측은 이같은 통신 서비스외에도 이산 가족 직접 상봉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 기업 및 언론사·북한측과 다양한 채널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 기업중에는 현대그룹이 이 사업에 참여키로 했다. 현대는 이산가족의 제3국 상봉을 염두에 두고 블라디보스토크 현대호텔을 면회소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사연과 현대는 오는 12월 ‘블라디보스토크 현대호텔 개관기념 남북한 공동토론회’ 행사를 그 첫 단계 작업으로 준비하고 있다.

 한사연이 벌이는 이산 가족 상봉(통신을 이용한 생사 확인 포함)추진 사업의 가장 중요한 열쇠인 북한측 파트너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라고 한다. 그 창구는 전 카자호스탄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낸 방찬영 박사가 맡고 있는데, 김일성·김정일과 쌓아온 방교수의 친분을 활용해 깊숙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한사연은 방찬영 교수를 아예 한사연 이사장으로 영입하기로 했다.

 한사연이 이 사업과 관련해 가장 공을 들이는 쪽은 중계 보도할 언론사 선정이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해온 이 운동을 전격 공개한 데는 언론사 섭외를 둘러싼 사연이 컸다는 것이 한사연측 설명이다. 지난 5월 이 사업을 시작한 한사연은 MBC와 협의를 마치고 공동 추진해 왔는데 그 과정은 MBC의 요구에 따라 9월까지 비공개로 진행해 왔다고 한다. MBC측은 창사 특집 프로그램으로 이산가족 상봉 중계 방송이라는 ‘역사적 이벤트’에 기대를 걸고 방영 시간(약 50시간)까지 잡아둔 상태였다.

일부 언론, 이미 북측과 깊숙이 논의
 그러나 9월 들어 MBC측이 돌연 참여 연기를 통보했다. 이에 대해 한시연의 한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이 운동을 추진하는 데 정치적 오해가 많아 MBC가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MBC의 요구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해온 점 자체가 오해를 증폭시킨 면이 크다고 판단하고, 그간의 추진 내역을 공개해 각계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어차피 누가 집권하든 대선 후 들어설 새 정부 때 본격적인 생사 확인 및 상봉 서비스가 시작되는 사업이므로 정치적 오해를 벗자는 뜻에서라는 것이다.

 MBC가 손을 뗀 후 한사연은 다른 언론사를 물색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일보>와 <문화일보>가 이 사업 참여에 적극적 입장을 보임에 따라 이를 지상 중계할 언론사 선정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한사연의 공개적인 이산 가족 찾기 사업 추진에 대해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통일원의 기본 입장은 민간이 추진하는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을 정부가 돕겠다는 것이다. 한사연의 사이버 이산 가족찾기는 아직 정식 신청을 해오지 않아 검토하지 못했지만, 이산 가족 개개인이 자기 정보를 제공하는 데 승낙한다면야 통일원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한사연 이장현 원장은 “이 사업준비 과정에서 통일원이 토론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협조·후원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협의·승인 절차를 밟는 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산 가족들로부터 받은 신상 정보가 자칫 유출되어 악용될 경우 생길 수 있는 법적인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정보 보안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공개로 진행해온 이산가족 찾기 사업을 추진하는 다른 민간단체와 언론사들은 아직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북 이산 가족 상봉을 주선하고 있는 민간단체는 모두 7개 이다. 한겨레상봉회(김학상), 이산가족상봉추진회(이경남), 효도회(장승학), 세계한민족통일협의회(전암), 한민족상봉회(김귀덕), 연길이산가족소개소 서울사무소(백홍기), 중국내 이산가족 중개소 한국 연락사무소(송낙환)등이 그런 단체이다. 이들은 연길·도문·단동·장백 등 주로 압록강변과 두만강변 북한·중국 국경을 무대로 남북한 이산 가족 상봉을 주선해 왔다. 통일원이 이들 단체로부터 신고받은 지난 6년 간의 ‘실적’은 서신 교환 3천7백98통, 생사 확인 9백42건, 제3국 상봉 1백28건으로 나타났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이산가족 상봉 주선 단체는 보통 생사 확인에 5백~천달러, 상봉에 5천달러 가량을 북측에 건넨다고한다. 상봉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므로 통계보다 더 많은 이산 가족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사실상 남북한 당국의 묵인 아래 이산 가족 상봉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올해 들어서만 상봉이 30여 건 이루어졌다. 이처럼 갈수록 상봉 건수가 늘어나는데 대해 이들 단체는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북한측의 태도가 변화하는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7개 단체중 규모가 큰 일부 단체는 정부의 비공식 지원 아래 언론사와 손잡고 ‘이산가족 상봉 이벤트’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최근 그런 제의를 받고 있다는 <중아일보>의 한 관계자는 “압록강·두만강 연안을 면회 장소로 해서 국내 실향민을 각 출신 군단위 별로 이끌고 가고, 북한측에서도 각 군민별로 가족을 집단으로 데려와 돌아가면서 상봉하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제안하는 쪽에서는 이미 준비가 돼 있는 상태였다”라고 말한다. <중앙일보>측은 다른 경로를 통해 독자적인 이산 가족 상봉 이벤트를 추진할 계획이 있어 이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산 가족 상봉 이벤트는 한 언론에서 물꼬가 트이면 다른 경쟁 매체로서는 사활적 경쟁 대상일 수밖에 없어 그런 제안을 다른 언론사가 수용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중앙일보사가 추진하는 독자적인 이산 가족 상봉 이벤트는 이산 가족 해상 상봉인 것으로 알려진다. 김일성의 유훈 사업인 금강산 개발 완성과 때맞춰 속초 원산간 관광 항로를 개설하면서 카페리오 선상에 면회소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중앙일보사 방북팀은 북한 문화유산 취재 협의 외에 이 문제에 대해서도 북측과 상당히 깊숙이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MBC의 방북을 성사시킨 북한 아태평화위원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용순 비서가 이끄는 이 단체는 금강산 개발 사업권도 갖고 있다. 금강산 개발과 이산 가족 해상 상봉이 한 볶음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한다.

 결국 72년7·4남북 공동성명 이후 아직 껏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남북한 이산 가족 상봉이라는 역사적·민족적 이벤트를 서로 먼저 성사시키기 위해 각 언론사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새 정부 출범과 북한의 김정일 총비서 체제 출범이 맞물리면서 각민간단체와 언론사들이 이산 가족 상봉 성사 기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게 봄으로써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각축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준비 작업이 사실상 새 정부 출범 후 설사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대권 도전에 나선 각 후보 진영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다. 각 후보 진영은 저마다 북한의 변화 조짐을 바탕으로 이산 가족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위 상자 기사 참조). 아울러 일부 민간단체와 어론사들이 추진하고 있는 이산 가족 상봉 추진 사업에 대해서도 저마다 집권하면 적극 지원하고, 정부 정책으로 수렴하겠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