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기름 장사하고 싶다”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7.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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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LG · 대우, 북한 유전 개발 참여 움직임…주유소·정유공장 건설 등 추진

 북한 유전 개발은 이제 논쟁 차원에서 현실 문제로 다가섰다. 특히 ‘막대한 원유가 매장된 사실을 확인’한 북한측이 케도형 방식을 통한 국제 컨소시엄 구성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유전 설명회를 계속 열 경우 국제적으로도 북한 유전 붐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북한 석유 매장량이 북한측 주장대로 4백30억 배럴(60억t)이 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4백30억 배럴은 80년이후 전세계 석유개발사에서 거의 천문학적인 수치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80년대 이래 10억 배럴 단위 유전만 발견된다 해도 금세기 최대의 발견이 될 것이라며 흥분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 견주어 보면 4백30억 배럴은 터무니없이 많아 보인다. 현재 북한이 1년동안 사용하는 원유량이 백만t이니 이는 북한이 6천 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일본측이 그동안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추정한 북한 석유 매장량은 서한만 일대에 30억 배럴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양이다. 일본측의 매장량 추정은 일본 종합 상사인 니쇼이와이(日商岩井)사가 95년5월~96년12월 서한만 지역의 자료를 분석한 추정치에 근거한 것이다.

일본기업, 10년 이상 북한 유전에 관심
 <시사저널>은 지난 2월 니쇼이와이의 북한 유전 진출 문제를 보도한 이래, 니쇼이와이측이 당시 어떤 경로로 북한 유전 문제에 접근했는지 추적해 왔다. 니쇼이와이 상사가 북한 유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역사는 적어도 10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작접이 이루어진 것은, 95년 초 북겨에서 북한측과 합의를 하면서부터이다. 니쇼이와이는 북한측과 합의한 것을 토대로 일본 석유공단(JNOS)으로부터 약1억엔을 지원받아, 석유 개발 전문 업체인 일본 오일엔지니어링사에 북한 서한만 일대에 대한 조사 용역을 맡겼다.

 니쇼이와이의 용역을 받은 일본오일엔지니어링사는 80년대 초 노르웨이의 지코(GECO)사가 이 일대를 탐사하고 생산해낸 2~3t의 방대한 테이프 자료를 입수해 전산 처리했다. 기존 탐사 자료라도 신기술로 이를 처리할 경우 얼마든지 새로운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니쇼이와이는 이같은 과정을 통해 96년 12월 두가지 보고서를 확보했다. 하나는 서한만의 지질 구조까지 포함한 방대한 부석 자료이고, 또 하나는 이를 4쪽으로 요약한 보고서이다. 현재 분석 자료는 니쇼이와이사와 일본석유공단 등 3~4곳만 소유하고 있고, 4쪽짜리 보고서는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배포되었다.

 이 4쪽짜리 보고서에는 베일에 가려진 북한 석유 매장의 실체를 벗길 내용이 담겨 있다. 즉 방대한 양이 매장되었다는 사실이 과학적 방법에 의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요약 보고서에서 원유 매장장소로 지적한 곳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북위 38°5′지역이다. 바로 개성 앞바다에 해당한다. 니쇼측은이곳의 A·B·C 세 지역을 집중 분석해 특히 수심 30~60m, 면적 5천㎞에 이르는 C지역에서 5억 배럴 가량의 원유가 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5억 배럴은 한 구멍에서만 확인된 것이므로 다른 곳의 매장 가능성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훨씬 많아진다. 니쇼이와측의 이 보고서를 토대로 일본 석유 전문가들은 전체 매장량을 약30억 배럴로 추정했다.

 니쇼이와이 상사는 현재 일본 종합상사 중 북한 유전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다. 이 회사는 65년 한·일 협정 당시 마루베니 상사가 청구권 자금을 매개로 급성장한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북·일 수교 과정에서 북한 특수를 확보함으로써 기업 성장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니쇼이와이 측 자료에 대한 공동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일본석유공단이 정치적 여건을 고려해 자제를 요청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북·일 수교 움직임이 구체화하면서 니쇼이와 이측의 대북 접근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및 재계·정치권역시 앞으로 청구권 자금과 관련한 유효한 프로젝트로 북한 원유 개발을 깊이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일본 언론계에는 11월중순 방북한 여3당 대표단의 노나카 히로무 자민당 간사장 대리가 북한측과 유전개발권 확보문제를 협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밖에 마루베니 상사의 경우 지난해부터 석유 탐사 전문가를 평양사무소에 파견해 북한 서해안 일대에 대한 탄성파 탐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유전에 관한 한 미국도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국내 석유 전문가들은 스탠턴 그룹의 움직임을 주목해 왔다. 에너지 분야의 설계 및 컨설팅 전문 업체로 알려진 스탠턴 그룹은 대다수 미국 기업이 엠바고에 묶여 꼼짝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한 측과 승리화학정유공장 재가동 및 화력 발전소 건설 문제 등을 활발하게 협의해 왔다. 스탠턴 그룹이 이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미국 정부의 후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미국 석유 메이저들과 북한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스탠턴 그룹을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LG상사, 승리화학공장 재가동에 관심
 미국 석유 메이저들은 해외 진출에 앞서 대정부 로비를 선행하는 것이 관레이다. 미국 정부와 로비하는 과정에서 우선 진출자가 결판나기 때문이다. 7대 석유 메이저 중 특히 아모코 사 같은 경우, 북한 유전 개발에 매우 적극적이면서도 겉으로는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메이저들의 움직임이 표면화할 날도 멀지 않았다. 내년 1월째로 예상되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 석유 메이저들이 동행할 것이라는 정보가 최근 나돌고 있다. 이는 미국 엠바고 해제의 핵심이 바로 이들 메이저의 북한 진출 허용 문제라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북한 유전 문제에 관한 한 한국 기업은 미국이나 일본 기업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나 북한이 정부 대 정부 차원의 교섭으로 가닥을 잡아 가고 있는 데 비해 한국기업은 정부 채널이 차단된 채 혼자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에게도 북한 유전 문제는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0월7일 도쿄에서 열린 ‘조선유전설명회’에서 확인되었다. 설명회에 미국·일본 기업은 전혀 참석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현대정유·LG상사·석유개발공사, 그리고 통일원의 도쿄 주재관 등이 참석한 것이다. 당시 설명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 기업은 설명회에서 발표된 자료 정도는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나마 자료도 아쉽다”라고 한탄했다.

 비공개 형태이기는 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바로 현대정유이다. 현대정유는 지난해 중반부터 중국 교포 등의 중재로 북경에서 북한측과 접촉해 왔고, 올해 8월엔ㄴ 정몽혁 사장 중심의 방북단 파견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 회장이 먼저 방북해야 한다는 그룹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유보된 상태이다.

 현대정유는 현재 북한 진출과 관련해 세 가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첫 번째가 북한의 신포등 몇몇 중심 도시들에 주유소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두 번째는 평양 인근에 정유공장을 설립하는 사업이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북한 서해안 지역에 대한 유전 탐사 작업이라고 한다.

 LG사사는 유전 탐사보다는 정유공장 진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의 승리화학공장 제가동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얼마전 LG상사는 승리화학공장 재가동에 대한 서로 상반된 보고서를 입수했다. 하나는 스탠턴 그룹이 작성한 것으로 재가동 전망을 매우 낙관적으로 분석했다. 또 하나는 LG정유의 합작회사인 미국의 칼텍스사가 분석한 것으로 ‘차라리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낫다’는 비관적 보고서다. LG상사는 승리화학공장 재가동과 관련한 시범 사업의 하나로, 지난 8월 이곳에서 생사한 나프타를 국내 최초로 반입하기도 했다.

석유개발공사도 북한 원유 개발에 관심
 석유개발공사 역시 북한 원유 개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동안은 북한측과 직접 접촉하기보다는 싱가포르의 석유 컨설팅 회사 등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꾸준히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개발공사가 북한 유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앞으로 국내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게 될 때 공사가 적극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업계의 요구와 관련이 있다. 또 한 가지는 국내 대륙붕 탐사를 주도해온 공사 처지에서 북한의 지질 자료를 입수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지질구조 분석에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업계 관계자들이 북한 유전 개발과 관련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곳은 바로 대우그룹이다. 관계자들은 조용히 있는 곳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대우그룹은 이번 1차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미 그 정도 자료는 확보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 그룹은 표면적으로 조용하나 내부적으로는 이미 진용을 갖춰 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김우중 회장이 에너지 개발을 주식회사 대우의 핵심 사업 분야로 선정하면서, 담당 부서인 에너지자원개발팀을 확충한 것이 그 사례다. 인원보충뿐 아니라 석유개발공사에서 석유 탐사 전문가인 부장급과 과장급 인사를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또 회장 비서실에서 대북사업을 총괄하던 고위급 인사가 지난해 에너지자원개발팀 책임자로 이동한 것도 북한 유전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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