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출 한국 기업 리스트
  •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7.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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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 · 삼천리자전거 등 26곳 자격 갖춰…대우 · 태창은 의류 · 샘물 공장 완공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다 보면 통일을 앞당길 수 없다고 진단한다. 이데올로기보다는 경제 협력 같은 현실 문제를 중심으로 남북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남북 간의 경제 협력은 김일성 주석 사망과 잠수함 사건 같은 돌출변수 때문에 위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90년대 초반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의 ‘협력사업자’승인을 받고 북한에 터를 닦을 채비를 하고 있는 우리 기업은 모두 26개이다. 이 가운데 정식으로 ‘협력사업’승인을 받고 북한에 나가 있는 기업은 신포 경수로 건설과 관련한 한국전력과 한국통신, 남포에 의류공장을 세운 대우, 금강산에 샘물 공장을 가동중인 태창 등 모두 네 기업이다(89쪽 표 참조). 기업들은 1차로 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은 뒤 최종 승인 절차인 협력사업 승인을 받아야 북한에 돈과 설비를 보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투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 대기업의 대북 투자는 규모가 크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북 당국도 규모가 크기 때문에 발표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해당 기업도 1급 비밀로 분류해 은밀히 추진한다. 대기업 중에서는 현재 롯데그룹과 동양그룹이 열심이다. 롯데그룹의 경우 신격호 회장이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롯데가 안되면 일본롯데라도 들어간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롯데는 북한의 농을 지원하고 있고 한국롯데는 식품 가공과 물류 유통사업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룹은 북한에 쵸코파이 공장을 만들 계획이다. 동양그룹은 그 사전 조처로 나진·선봉 지대를 조사하고 돌아올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그룹은 이미 남포에서 와이셔츠를 만드는 의류공장을 돌리고 있다.

 토지공사는 정부투자기관으로서는 유일하게 나진·선봉 진출을 시도하는 기업이다. 토지공사는 이곳의 유현동에 1차로 여의도의 반정도 크기인 40만평짜리 공단을 만들 계획이다. 토지공사의 유현공단이 완성되면 국내 기업들의 나진·선봉 진출은 좀더 빨라질 전망이다(<시사저널> 제418호14쪽 참조).

 대기업은 그동안 북한 투자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현실 여건상 사업 진척이 어려웠다.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기업은 기껏해야 4~5년 기간에 국한된 사업을 염두에 둔다.

‘금강산 샘물’ 내년에 한국 상륙
 정부도 지금까지 정치적 이유를 들어 국내 기업의 대북 진출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정부 입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교역을 확대할수록 북한 경제가 한국 경제로 편입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외국 기업의 북한진출에 관해 정부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통일원 교류협력국 당국자는“화교계와 일본 자본이 북한에 앞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투자 규모가 커서 이것저것 재다 보면 기동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훨씬 재빠르다. 성과를 낸 중소기업은 돌파력이 있는 기업 대표가 혼자 북한 시장을 개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효원물산 김영일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90년대 초반부터 북한의 나진·선봉을 드나든 그는 남북 교역에 관한한 상당한 경험을 축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의 조총련계 기업인 ‘서해물산’‘C&L'과 손잡고 북한의 송화가루·로열제리·당면·호두 같은 몇가지 품목을 수입해 한국에서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같은 대북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대북 투자 사업 비결을 내세우기도 했다. △우리가 북한에 들어가서 직접 만들어서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북한 실정에 맞는 사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북 무역이 단순한 교역과 임가공 형태를 벗어나 합작회사나 합영회사 같은 단계로 발전해야하고, 인건비가 낮다고 무조건 들어갈 것이 아니라 북한의 원자재와 지하 자원을 이용하는 사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진·선봉에서 미역·밥조개·털게 같은 수산물, 송이버섯 같은 임산물, 녹두·팥 같은 농산물을 제품화해 수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천리자전거는 93년부터 대북 사업을 시작했다. 자전거 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조립 산업이다. 인건비가 높아진 국내에서 수지가 맞지 않자 이 회사는 북한 진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96년 초에 이 회사는 북한의 광명성총회사를 통해 조립 생산을 의뢰했다. 96년 중순 광명성총회사는 자전거 바퀴 천개를 조립해 삼천리측에 보냈다. 품질 시험 결과 북한이 보낸 자전거 바퀴는 거의 완벽했다.

 삼천리자전거는 대기업인 LG상사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독특한 경우이다. 삼천리자전거 정재화기획팀장은 “50여 년간 자전거를 만든 터라 기술은 있으나 대북 채널이 없다. 그래서 해외 시장 개척 능력과 대북 채널이 있는 대기업과 손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삼천리자전거는 남포를 공장 터로 고려하고 있다.

 태창은 준비 단계인 다른 기업과 달리 이미 통일원의 사업승인을 받아 북한의 금강산(강원도 고성군 온정리)에 샘물 공장을 세웠다. 태창은 용성맥주와 평양소주를 생산하는 북한의 ‘조선능라 888무역총회사’와 연결하여 샘물 공장을 세우기로 합의한 뒤 97년 5월22일 통일원의 사업승인을 받았다. 태창은 이곳에서 생산한 샘물을 1백8㎞ 떨어진 원산항까지 철도로 수송한 뒤 배로 부산과 인천으로 실어 나를 계획이다. 태창의 이주영 사장은 생수뿐만 아니라 금강산 생수를 원료로 한식음료 사업과 금강산 개발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물류주식회사는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나진·선봉 지대인 나진시 동명동에 10만평 규모로 상업·숙박·위락시설, 사무실, 은행, 정보 통신 시설 등 국제 물류유통기지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제약 회사인 ‘녹십자’는 평양 시내의 동평양 지구에 혈관 질환 치료제인 유로키나제 공장을 차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녹십자는 3백만 달러어치 시설과 기술을 제공하고 북한의 광명성경제연합회는 토지와 건물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유로키나제는 사람의 소변으로부터 성분을 추출해 생산하는 의약품으로 혈관이 막혀 생기는 뇌졸중(중풍)과 심근 경색을 치료하는 데 있인다.

 현재 북한이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외화와 기술 부족이다. 그래서 북한은 외화 벌이와 기술 도입, 관광산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실제로 북한은 현재의 나진·선봉뿐만 아니라 지난 6월에 남포와 원산을 보세수출가공구로 지정했다. 북한은 남포를 한국 기업에, 원산은 일본 기업에 열겠다는 방침이다. 보세수출가공구는 우리의 마산수출자유지역과 같은 개념이다. 북한은 이를 금년 말이나 내년 초에 법률로 공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보세수출가공구는 나진·선봉 같은 경제 특구와 달리 임가공과 무역을 주로 하는 곳이다. 이 두 지역에는 북한의 무역 관련 기업, 임가공을 하는 한국·일본·홍콩의 합작기업이 들어가서 주로 노동집약적인 전자·섬유 산업을 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북한 진출, 통일에 도움
 북한은 한국 기업과 교류를 확대하고 있으나 한국 기업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우리 기업인이 북한에 머무르며 공동으로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 합영 사업보다는 합작이나 임가공 수준으로 낮추려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 기업의 투자지역도 변경인 나진·선봉 지대에 국한하려 하고 있다. LG의 경우 컬러 텔레비전 합영 사업을 하려 했으나 북한측이 합작으로 수준을 낮추고 장소도 평양에서 나진·선봉 지대로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수도 주변에 한국 기업이 들어왔을 때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리 막기 위해서이다. 외국 기업의 이름을 쓰도록 하는 것도 북한이 유도하는 사항이다. 북한에 쵸코파이 공장을 지으려는 동양그룹과 통신장비 제조 공장을 세우려는 삼성그룹은 홍콩의 기업 이름을 빌려 북한에 진출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남북 대화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전면적인 경제 개방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우경제 연구소 이찬우 연구원은 “북한은 신의주 · 나진 · 선봉 · 남포 · 원산 등 국토의 4극을 개방 지점으로 택했다. 그러나 북한이 중국처럼 개방 지점을 점차 확대하는 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도 당분간 북한은 남북 간의 정치적 대립상태를 유지하면서 경제 실익을 얻는 정책을 계속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이 통일을 앞당기는 선봉장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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