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품 판 만큼 소득은 없었다
  •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7.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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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립 여당 대표단 방북 결산/일본인 납치 ‘7대 의혹 사건’ 해명 못받아내…수교 회담은 진일보

일본의 연립 여 3당 방북단이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지난 11월14일 오후 귀국했다.

 북한 노동당 총서기에 취임한 김정일이 일본의 연립 여당 방북단을 접견할지도 모른다는 당초의 기대는 크게 어긋났다. 실제로 평양에서 방북단 일행 9명이 면담했던 인물은 고작 대일 외교 담당자인 김용순 서기와 김양건 노동당 국제부장, 박성철 부주석이었다. 그래서 자민당 강경파는 ‘무엇 때문에 평양에 들어갔었느냐’고 방북 단장 모리요시로 자민당 총무회장을 닦달하고 있다.

북한, 또 공수표 발행
 자민당 강경파는 2년 8개월 만에 방북단을 파견했음에도 일본인 납치 의혹 해명에 별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존재하지도 않는 납치 문제를 끄집어내어 회담을 결렬시키려 한다’며 펄펄 뛰던 북한측이 14일 오전 태도를 약간 바꾼 것은,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가는 방북단에 준 조그만 선심이나 마찬가지이다.

 김용순 서기는 귀국 직전에 만난 모리 단장에게 일본측이 제기한 납치 의혹 7건(해당자 10명)에 대해 ‘북한과 관계 없는 일이지만 일단 일반적인 행방 불명자로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그 결과를 <로동신문>에 싣겠다는 언질도 주었다. 일본 어론들은 김용순의 이같은 선심 공세를 ‘북한의 태도 변화’라고 크게 보도하고 있으나, 실은 지난 8월 말 북경에서 열린 북·일심의관급 회의에서도 북한측은 똑같은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8월에 발행한 공수표를 또다시 일본에 제공한 것이다.

 일본이 현재 제기하는 납치 의혹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면 북한이 성의 있는 조사 결과를 공표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이 분명해진다. 먼저 이시가와 현 경찰에 체포된 북한 공작원 77년 9월 도쿄의 한 경비원을 납치해 북한으로 끌고 갔다고 진술한 데 근거한 납치 사건이 첫 번째 의혹이다. 두 번째는 같은 해 12월 나가타 해변에서 당시 열세 살이던 요코다 메구미 양이 행방 불명된 사건으로, 올 2월 전 북한 공작원 안명진씨의 증언에 따르면 요코다양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78년 6월 도쿄도에서 행방 불명된 이은혜가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거진 납치 의혹이다. 91년 1월 개시된 북·일 수교 교섭은 92년 11월에 열린 8차 회담에서 이은혜의 신원 확인 문제를 둘러싸고 결렬되어 지금까지 중단되어 있는 상태이다. 네 번째~여섯 번째 의혹은 78년 여름 후쿠이 현과 니가타 현 그리고 가고시마 현 바닷가에서 데이트하던 남녀 3쌍이 잇달아 행방 불명된 사건이다. 마지막 의혹은 85년 검거된 북한 간첩 신광수가 80년 6월 일본인 요리사를 미야자키 현 해상으로 유인해 북한으로 납치했다고 진술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가 정식으로 인정하는 행방 불명 사건 7건 중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은혜 사건과 요코다 메구미 양 사건이다. 두 사건은 김현희와 안명진이라는 목격자가 있어 실제로 이들이 북한에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본 정부로서도 북한의 납치 의혹을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처지이다.

 그러나 북한은 5년 전 이은혜의 신원확인을 거부한 태도로 보아 이번에도 ‘해당자 없음’이라고 발표해 납치 의혹을 부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한 건이라도 납치 사실을 인정할 경우 나머지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가 거세질 것이고, 자칫하면 일본의 ‘반북 감정’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관측통들은 연립 여당 3당과 북한 노동당 이 수교 교섭을 일찍 재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빠르면 12월 중에 대사급을 단장으로 한 예비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그러나 김용순 서기가 약속한 조사결과 발표 내용에 알맹이가 없을 경우 예비 회담이 열린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이은혜 문제를 비롯한 납치 의혹 7건은 당면한 북·일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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