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돕는 방법 ‘3인 3색’
  • 성기영 기자 ()
  • 승인 1997.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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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 공동 주최 <대선 후보 초청 정책 간담회>

<시사저널>과 우리 민족서로돕기운동(공동대표 서영훈·송월주·김준곤·최창무)이 공동 주최한 ‘대선 후보 초청 정책 간담회’가 종교·사회 단체 지도자를 포함한 각계 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회창·김대중·이인제 후보는 11월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통일 및 대북 인도적 지원 정책’을 주제로 한 이 간담회에서 시종일관 치열한 정책 대결을 벌였다.

 이회창·이인제·김대중 후보 순서로 진행한 기조 연설에서 이회창 후보는 현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후보는 북한 식량난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동포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현정부가 취하고 있는 조건부 지원 원칙을 고수했다. 이후보는 그 이유를 “무조건 지원은 무한정 계속될 수도 없고, 또 한편으로는 (무조건 지원이) 북한 동포의 고통을 연장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후보는 민간 지원에 대해서도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창구 단일화 원칙을 고수해 차별성을 드러냈다. 한편 이후보는 집권 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남북 정상의 남북한 상호 교환 방문’과 ‘북한 부흥 계획 수립’등을 제시해 관심을 끌었다.

 김대중 후보는 기조 연설문을 사전에 배포하지 않은 채 즉석 연설을 펼쳤다. 김후보는 특히 민간 지원 단체들이 주장해온 창구 다원화를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김후보는 남북 관계 현안을 △정치△경제△인도적 지원 분야로 구분하고, 정치에서는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을, 경제에서는 정경 분리 원칙을 강조했다. 김후보는 인도적 자원에 대해서도 민간 차원의 지원은 정부가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면서, 미간 지원은 △북한 동포의 기아 해소(인도주의) △동포에 회복(화해) △선의(善意)에 대한 이해(평화와 전쟁 억제)라는 세 가지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후보는 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대량 지원이 이루어지려면 정부 차원의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라고 밝혀 현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 방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이인제 후보는 기조연설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전항적인 대북 정책을 피력했다. 이후보는 식량 지원 방향에 대해 현정부와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군량미 전용 의혹등)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장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후보는 또 대북 식량 지원은 앞으로 추진될 남북한 경제 협력의 일부라고 전제하고, 정경 분리와 경제 협력은 남북 대화와 북한 개방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보의 이같은 주장은 일부 참석자로부터 ‘화려한 수사일 뿐 실천을 담보하는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보는 또 창구 단일화 및 남북 교류협력법을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는 북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민간 분야도 북한과 직·간접으로 다양한 루트를 가져야 한다”라면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을 통한 역량 강화 논리를 펼쳤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30일 앞두고 열린 이번 정책 간담회는 바로 전날 열린 <조선일보> 초청 합동 토론회에 이어 대선 사상 두 번째로 이루어진 후보 합동 토론 회이자, 특정한 단일 주제를 놓고 벌인 최초의 합동 토론회로 기록되었다. 오전 7시 30분부터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토론회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김당:이후보가 찬동하는 이른바 ‘조건부 지원론’ 때문에 지난해와 올해 많은 북한 주민이 굶어 죽었다고 보는데, 이 원칙을 앞으로도 고수할 것인가?

이회창: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굶어 죽는 동포를 살리기 위해서 식량을 지원해야 하지만, 그러한 지원이 좋은 방향이 아닐 때는 재고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데도 무작정 많이 보낼 수는 없다.

법륜: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기업의 참여가 필수이다. 이를 허용할 방침은 있는가? 또한 정부 차원에서 대량 지원할 용의는 없는가?

이회창:언론과 개별 기업의 참여를 제약하는 데는 반대한다. 방만하거나 무질서하게 지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무제한이어서는 안된다.

법륜:적십자사를 통한 창구 단일화보다는 여러 채널을 통해 민간 단체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남북 화해에도 유리하다고 본다. 창구 단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회창:현재 상황에서는 적십자사로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대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기 때문이다. 모든 단체가 개별적으로 지원하면 투명성 확보도 어려워진다. 국제적십자 같은 공산력 있는 기구를 통해야 투명성이 보장된다.

이호재:북한의 목을 조금만 더 죄면 흡수 통일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식량 지원을 자제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른바 ‘조기 붕괴론’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이회창:식량 지원과 조기 붕괴론은 별개 문제이다. 식량 지원은 일반 경협과 달리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경험이나 식량 지원은 어디까지나 합리적 변화와 개혁을 유도하기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김훈:통일에는 국민의 희생과 고통이 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민과 근로 소득자 들은 통일에 대해서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희생과 고통을 어떻게 국민에게 설득할 생각인가?

이회창:남북한 협의와 화해를 통하면 자연스레 통일이 다가올 수 있다. 돌발 사태로 인한 흡수 통일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적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도 문제이다. 그러나 예상되는 손실과 고통 때문에 통일을 늦추거나 회피해서는 안된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이호재:현재 우리 외교는 미국과 일본에 주도권을 내어준 체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50억달러 규모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대북 경수로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주체성을 상실한 외교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김대중:노태우 정권에 비해 김영삼 정부는 외교의 주도권을 상실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우리 외교의 큰 문제점을 노출한 것이다. 노태우 정권은 미국과 물샐 틈 없는 공조를 통해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할수 있는 통로를 배제했다. 그러나 현정부 들어서는 국내 문제에서까지 미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켜 북한이 그 틈세를 비집고 들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국과 문제가 있으면 충분히 조절해서 확고한 한·미 공조를 이루어 북한이 오판할 소지를 없애야 한다.

김훈:국민회의는 자민련과 연대한 이후 국가보안법에 대한 강경 반대 입장이 상당히 후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새로운 입장은 무엇인가?

김대중:자민련과 정책을 조율하면서 상당한 전통 끝에 국가보안법의 명칭은 유지하되 인권 침해 조항을 개정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결국 우리는 명분을 양보하면서 실리를 취했다. 인권 침해 조항이 들어 있는 북한의 형법과 형평성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진전되고 국민정서가 변하면 변화도 있을 수 있다.

김당:창구 단일화, 가두 모금 금지, 언론과 기업 참여 불허등 현정부가 민간 지원에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고수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대중:북한에 대한 민간 지원은 정부가 전면 허용해야 한다. 언론의 참여도 허용해야 한다. 서독은 분단 당시 동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동독 주민의 적개심을 녹여 이를 통일의 촉진제로 삼았다. 서독은 흡수 통일을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동독의 5개 주가 스스로 서독으로 통합되기를 결정한 것이다. 서독의 민간 지원은 통일의 계기가 되었다.

이호재:내년쯤 북·미, 북·일국교 정상화가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김대중:북·미,북·일 국교 정상화는 북한의 개방과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므로 적극 찬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한국을 제외하고 북한이 미국과 일본만을 상대하는 ‘남한 고립화’로 간다면 곤란하다. 만일 집권한다면 곧바로 미·일 정상을 만나 남북 관계가 한·미, 한·일 공조에 따라 진행되도록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이호재:이후보는 기조 연설에서 정경 분리 원칙을 말했지만 북한은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외화 획득 기반이 함께 무너저 무역 규모가 급속히 떨어지는 등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고는가?

이인제:최근 북한이 개방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진·선봉에 활발하게 투자를 유치하고 있고 경수로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로서는 정경 분리 원칙이 불가피하다. 정치적으로 화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도 경제·문화·종교·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가능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김훈:북한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정부 내에서도 부처끼리 갈등을 겪고 심지어는 비선 조직을 가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북 협상 통로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이인제:통일원·안기부·외무부·청와대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안보 상황실을 설치해 변화하는 상황에 시시각각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 놓고 있다. 집권하면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안보대책반’을 운영해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이를 조정·통제할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겟다.

강문규:정부의 창구 단일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남북교류 협력법이다. 이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이인제:국가보안법이 교류와 통신을 일절 금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교류를 촉진하려는 것이 남북교류협력법이다. 북한에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 교류와 협력 요건을 완화하고 운용도 탄력적으로 하겠다.

이호재:북·미,북·일 국교 정상화에 대한 견해는?

이인제: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대미·대일 수교를 막지 않겠다. 그러나 남한을 배제하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곤란하다.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협받을 수는 없다.

법륜:북한 식량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세계지도자회의가 열려 ‘하루 단식’을 결의한다면 동참할 용의가 있는가?

이인제:북유럽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는 등 북한 식량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지도자회의가 열린다면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 농업문제 해결을 위한 지도자회의를 제안할 용의도 있다. 북한 식량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구조적인 농업 문제를 해결해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이 국가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어려운 문제가 많다. 결국 북한도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을 할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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