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우정’ 나누는 김대중의 사람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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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상급, 지구촌 곳곳에 포진…위기 탈출 지렛대 역할 기대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전세계가 보인 방응은 환영 일색이었다. 19일 하시모토 일본 총리와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각각 축전과 전화를 통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한국의 경제 위기와 남북한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중국 정부 역시 김후보 당선에 즉각적인 환영논평을 내고, 김대중 당선자가 그동안 중국 조야에 심어놓은 친(親)김대중 인맥을 모으는 작업에 들어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도 김후보자 당선하자 ‘한국 민주주의의 진일보’ ‘아시아 민주주의의 완성’ 같은 논평을 냈다. 대선 기간에 이례적으로 취재진을 서울로 급파했던 유럽의 언론들은 김후보 당선에 대해 ‘반체제 인사 드디어 청와대에 입성하다’ ‘동아시아의 넬슨 만델라, 집권에 성공하다’라는 제목으로 대서 특필했다. 세계의 눈에는 김후보가 당선한 것이 한국을 다시 보게 하는 놀라운 사건으로 비친 것이다.

클린턴 인맥 활용하면 국의에 큰 보탬
 김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자기가 특히 경제 외교 방면에서 준비된 대통령 후보임을 강조해 왔다. 이제 그는 그동안 세계 각국에 심어둔 인맥을 활용해 당면한 국난에 대응해야 할 처지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김당선자의 미·일 인맥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김당선자가 미국쪽 인맥을 활용해 경제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모습은 선거운동 기간에 그 실체가 약간 드러났다. 지난 12월13일 무역센터에서 가진 미국의 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와 가수 마이클 잭슨이 등장한 국제 화상 회의가 그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헝가리 출신으로 현재 미국에서 세계적인 투자 회사인 골드맨 & 삭스를 이끌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김당선자와 교분이 있었다. 소로스는 93년 김당선자가 설립한 아태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김당선자와 오래 교분을 유지해온 미국의 경제계 인맥으로는 세게은행(IBRI) 울픈슨 총재와 모리스 스트롱 유엔 사무차장이 꼽힌다. 또 뉴욕 증권거래소 회장 및 주요 증권사 사장단도 김당선자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교류해온 인물들이다. 특히 투표를 3일 앞둔 지난 12월15일 아침 김후보가 국민회의 당사에서 만났던 로버트 톨리첼리 상원의원은 그동안 미국내 경제인들과 김후보 사이의 연결 고리 구실을 해왔다. 이 날 토리첼리 위원은 김후보와 만나 “3일 뒤 김후보가 당선되면 뉴욕 금융 시장 주요 인사들을 인솔해 즉시 한국으로 달려오겠다. 만약 당선된 뒤 바로 미국으로 온다면 뉴욕에서 그들과 만나 협조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두겠다”라고 지원할 뜻을 밝혔다.

 김당선자의 미국내 주요 인맥은 주로 클린턴 주위에 포진해 있다. 클린턴 행정부와 김당선자의 긴밀한 관게는 카터 전 대통령을 매개로 구축되었다. 80년 신군부가 김당선자에게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했을 때 마침 정권 교체기에 있던 카터 대통령은 후임 레이건 당선자에게 김대중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대한 정책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라고 주문해 관철했던 것이다. 그 뒤 김당선자가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자연스레 생명의 은인인 카터를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맺었다. 85년 2·12총선을 앞두고 김당선자가 귀국할 때는 신변 안전을 염려한 민주당 의원 5명이 서울까지 호위하기도 했다.

 바로 그들이 현재 미국 집권당 소속으로 클린턴 행정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김당선자와는 정책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깊은 유대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DJ가 미국 방문길에 비공식 접촉을 해온 클린턴 대통령은 물론 스탠리 로스, 찰스 카트먼, 로버트 갈루치 등 전·현직 국무부 관리들과 현재 민주당 동아태 소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솔라즈가 그런 인맥에 속한다. 특히 클린턴 후보의 선거 참모였던 조지 스테파나플라는 이번 한국 대선 기간에 김후보를 찾아와 선거운동을 조언하고, 김후보가 당선되면 즉각 클린턴 대통령과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일본 친구들, ‘납치사건 조사위’ 구성
 김당선자의 미국내 인맥이 집권 민주당에만 포진한 것은 아니다. 공화당 소속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DJ와 20년 지기로서 한번도 문제를 수시로 토론하는 사이이며,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 역시 DJ와 인류의 미래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사이이다. 레이건 정부 때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와 도널드 그레그도 그동안 공개적으로 김당선자를 지원해 왔다.

 일본의 경우 고노 료헤이 전 외상이 DJ와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인맥으로 꼽힌다. 고노씨는 일본에서 선거가 있을 때 김당선자가 부인 이희호 여사를 보내 지원했던 사이이다. 그밖에 김일성 연구로 저명한 도쿄 대학 와다 하루키 교수, 무샤 코지 일본 국제문제협회장, 도이 다카코 전 국회의장 등을 비롯해 현역 여야 의원 30여 명도 김후보의 일본내 교류 인맥이다. 특히 30여 현역 의원들은 93년 일본 국회에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조사 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했을 정도로 김당선자와 우의를 다져 왔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국축과 관련해 김당선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중요한 축이라고 강조해온 나라이다. 김당선자는 한·중 수교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중국 방문과 서신 교환등을 통해 중국 내 인맥을 개척해 왔다. 현재 국가 서열 3위로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후임 총리로 선출될 것이 확실시되는 주용기, 서열 4위인 이서환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 한반도 4자회담 중국측 대표인 당가선 외교부 부부장 등이 그런 인맥이다. 그 외에도 북경 대학 오수청 총장, 상해 복단대학 양복가 총장, 천진 남개 대학 옹심광 총장, 중국 사회과학원 호 승 원장 등이 그동안 김당선자와 교분을 맺어온 인사들이다. 특히 북경 대학 오수정 총장은 DJ의 저서인 <21세기를 향하여>를 중국어로 번역해 중국의 여론 주도층에 보급한바 있다. 중국 정부가 김후보 당선 직후 즉각 환영 논평을 내고, 중국 정부 및 학계의 친김대중 인맥을 급히 불러모아 회의를 가진 것은 갑작스런 반응이 아니었던 셈이다.

개도국 정상과도 ‘교분’…기업 진출에 유리
 이밖에도 김당선자는 아시아의 소신있는 민주지도자 및 한반도 평화 옹호자라는 국제 사회의 평판을 활용해 그동안 세게 각국 지도자들과 교분을 맺어 왔다(20쪽 표 참조). 그는 특히 정계를 떠나 있던 93, 94년에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을 만큼 각국 지도자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김당선자측은 이들 해외 인맥이 단순히 한번 만난 사람들이 결코아니라고 강조한다. 한반도 문제, 세계의 지역평화문제, 한국과 해당국의 경제 이해증진 등을 주제로 진지하게 토론하는가 하면 지속적으로 서신을 교환해온 돈독한 사이라는 것이다.

 특히 김당선잔가 교류해온 인맥에는 세계 4강 지도자 외에도 여러 국가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국가와의 교류 활성화는 앞으로 한국 기업의 활로 모색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 태국 추안락파이 총리, 필리핀 리모스 대통령, 체코 하벨 전 대통령, 루마니아 콘스탄티에츄 대통령이 그들이다.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은 김당선자가 후보로 선출 되던 지난 8월 국민회의 전당대회장에 딸 지니 만델라를 보낼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만델라 대통령은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찼던 시계를 선물로 보냈고, DJ는 답례로 미국 망명 시절에 썼던 서류 가방을 선물했다.

 어쨌든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세계는 한국을 향해 ‘놀랍다’ ‘다시 보게 됐다’는 식의 반응을 보임으로써. 김당선자가 국제 사회에서 유명했음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김당선자 앞에는 그런 국제 사회의 평가에 안주할 수 없는 절박한 국내 현실이 가로 놓여 있다. 당면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김당선자는 그동안 세게 가국에 일궈놓은 교류 인맥을 이제 본격적으로 활용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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