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 ‘기업 사냥’에 비상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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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가와 화폐 가치가 폭락하자 기업의 자산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12월 말부터 1년 전 시가의 20% 값으로 국내 주식을 매집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 투자가에게는 지금이 과거 어느 때보다 국내 기업을 합병·매수하기에 유리한 시점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합병·매수 열풍이 국내에 상륙했다. 주로 미국과 유럽 투자가들이 아시아국가의 주가와 화폐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지자 자산 가치가 떨어진 기업 사냥에 나선 것이다. 미국 AIG그룹이 태국의 방콕인베스트먼트를, 스위스 취리히 그룹이 홍콩의 페레그린인 베스트먼트를 각각 합병·매수했다. 또 미국 시티은행이 태국 퍼스트방콕시티은행을 각각 인수했다. 국내에서도 미국 프록터갬블이 쌍용제지를 8억1천만달러에 매입해 국내 생리대 시장에서 선두로 떠올랐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국내 기업 가운데 금융기관을 가장 탐내고 있다. 따라서 대주주 지분율이 4%에도 못 미치는 금융기관들은 서둘러 경영권 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대주주 지분율이 4%를 넘지 못하는 금융기관으로는 신한은행·장기신용은행·한일은행·동화은행·대구은행·대한재보험 등이다.

 외국인 직접 투자 지분이 25%를 넘는 기업들은 우호적 합병·매수가 가능하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대기업 계열사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따라서 국내 대기업들은 지분이 상대적으로 낮은 계열사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때 자기 편이 될 수 있는 우호 세력을 늘리고 있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임직원의 12월 상여금 2백억원을 자사주 매입에 충당하고, 대우 그룹은 지분이 낮은 계열사 위주로 지분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LG그룹도 계열사 별로 우호적 기관투자가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운영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 매입 자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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