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오만과 착각
  • 구로다 가쓰히로(산케이 신문) ()
  • 승인 1998.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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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재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구R이 대활약을 할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남미의 브라질이나 멕시코처럼 외체가 많은 나라들이 축구 강국이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국제통화기금 긴급 지원을 받을 정도로 경제 위기에 떨어진 적이 있고, 브라질 또한 한국 다음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한국은 이전부터 ‘이대로 가면 중남미 나라들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라며 과소비 억제와 긴축 필요서을 강조해 왔지만, 결국 말대로 되고 말았다.

 한국에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국제통화기금은 거액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5백70억달러는 한국의 1년 국가예산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그런 거액을 빌려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을 위시해 국민들이 ‘고맙다’고 말하기볻K는 거꾸로 국제통화기금이나 그 중추라 할수 있는 미국·일본을 비난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 지원 당연하게 여기면 곤란
 도와주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맗K는 대신 비난을 앞세운다면 국제 사회에서 신뢰 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IMF 사태의 최고 당사자인 경제 부총리조차도 ‘한국 경제가 무너지면 일본도 곤란할 것이다’라며 일본의 지원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협박에 가까운 발언이다.

 확실히 국제 경제의 관련성을 생각한다면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은 빌리는 쪽, 즉 도움을 받아야 하는 쪽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도움을 주는 쪽이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빌려주는 돈이 적으면 빌려주는 쪽이 으스대고, 금액이 크면 클수록 빌리는 사람이 으스댄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만약에 돌려받지 못할 경우 빌려준 사람도 같이 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이 국제통화기금이나 미·일의 지원에 대해 ‘당연하다’고 여기는 까닭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자세를 취하는 것은 허세일 뿐이다. 그것은 국제적 예의를 모르는 처사로 받아들여진다. 그 결과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잃었다.

 국제통화기금은 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한국에 대외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개방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것은 ‘경제 개국’을 하라는 요구이다. 이 개국은 역사적으로 보면 백년 전 조선 말기와, 45년 광복에 이은 ‘제3의 개국’ 이다. 이번에도 한국은 백년 전과 같이 밖으로부터 ‘개국 압력’에 직면한 것이다. 그 압력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다. 외부로부터의 개국 압력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발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 또한 백년 전과 흡사하다.

 IMF 사태를 ‘제3의 개국’이라고 볼 때, 한국 언론이 이를 ‘국난’ ‘국치’ ‘IMF 신탁 통치’등으로 표현하는 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백년 전 개국 압력에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S 결과 ‘망국’이라는 수치를 겪었다. 그러나 이번 국난을 백년전과 같이 ‘허세’나 배외주의(拜外主義)로 극복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실은 일본에서도 요즘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의 무역·경제 전쟁을 ‘제3의 개국’이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있다. 19세기 후반의 개국과 메이지(明?) 혁명, 45년 태평양전쟁 패전에 이은 것인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로부터 시장을 전면 개방하라는 강한 외압을 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제1 개국’에서 서양의 협조로 근대화를 이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중에 서양 세력인 ‘앵글로색슨’과 적대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나라를 망쳤던 것이다.

 현재 일본은 이를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아, 특히 미국과 적대 관계로 이어지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게 ‘제3의 개국’은 바로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지만, 일본이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미국의 요구에 응하는 것은 ‘미국과 적대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역사적 교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절대적 협조라는 국가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은 IMF 사태라는 제3의 개국에 어떤 국가전략으로 대응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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