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에 영웅은 없다”
  • 런던ㆍ한준엽 통신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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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리 박사‘처칠이 전쟁 확대??주장에 영ㆍ독 학계 논란 처칠은 과연 히틀러의 영국정복 야욕으로부터 국가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었는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야망을 달성하자면 히틀러를 완전 패배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고집에 밀려 나치독일과 평화관계를 맺을 수 있는 외교협상 기회를 일부러 외면한 채 전쟁으로 치달은 호전 주의자였는가.

 1940년 6월 이후 런던 시내를 강타한 독일 공군기의 공중폭격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영국의 전전(戰前) 세대에게는 이 같은 질문이 구국의 아버지처럼 떠받들어온 처칠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영국 역사학계에서조차 처칠의 지도력과 업적을 비판하는 학술적 견해와 주장은 그동안 금기시돼왔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에겐 위인이나 영웅은 존재하지 않으며, 처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2차대전 당시 처칠의 전쟁수행 결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전기 한권이 최근 영국의 역사학계와 사회전반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책은 영국 이스트 잉그리카 대학의 역사학 교수 존 참리 박사가 저술해 이달 초 발간한《처칠, 그 영광의 종말》이다. 이 책은 처칠의 생애와 업적을 찬양하고 지지하기만 해온 지난날 역사 기술에 맞서 우상파괴적인 수정주의 사관에서 처칠의 주요정책 결정과 업적을 재평가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올해 37세의 참리 교수는 2차대전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전후 세대다. 그는 처칠 수상이 타계한 65년 당시엔 겨우 아홉 살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처칠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갖지 않고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후 세대 가운데 첫 역사학자일 것이다. 나는 이번 논문에서 있는 그대로 처칠의 허물과 오류까지 함께 보고자 노력했다.??

 독일 학계“對獨항전은 옳은 선택?? 참리 교수는 이 저서에서??처칠이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잘못과 오류는 같은 척도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2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도 있었다. 처칠은 40년, 41년에 히틀러와 영ㆍ독 단독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그러나 악의 화신이라고 증오해온 히틀러에 대한 강박관념과 그를 최후까지 파멸시켜야 한다는 집착 때문에 처칠은 영국 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갔으며, 소련에 대한 지원과 미국의 침전을 요청해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이다??라고 전쟁 확대의 한 요인을 처칠의 전쟁 수행 결정에서 찾고 있다.

 그에 따르면 처칠은 집권 당시 대영제국의 영광과 영국의 자주독립성 그리고 반사회주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전후 첫 총선거가 치러진 45년 7월 대영제국은 이미 해외 식민지를 대부분 잃고 미국에 외교ㆍ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다. 또 노동당이 내세운 사회주의 노선과 정책 때문에 전통적인 가치관과 질서가 급격한 변혁의 길을 걷고 있었다.

 참리 교수는“2차대전에서 영국이 얻은 것은 단지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다시 말해 처칠은 그의 영광에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보수당 내각의 클라크 전 국방장관은??이 책은 전후 수정주의 사관의 관점에서 쓰여진 가장 중요한 역사서일 것??이라고 찬양했다.

 군사역사학자이기도 한 클라크는 참리 교수의 견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처칠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필요 때문에 결정적인 평화협상의 길을 외면함으로써 수천 명의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 손실 그리고 대영제국의 붕괴를 가져왔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당 의원들과 정통사관을 옹호해온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참리 교수와 클라크 장관의 견해는 인기를 끌려는 극단적인 수정주의 견해라고 비판하고 있다. 니콜라스 바이른 보수당 의원은 클라크 전 장관의 견해를“가정에 근거를 둔 증명될 수 없는 견해이며, 그가 참리 교수의 이론에 편승한 것은 정치적인 숨은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바다 건너 독일의 경우 그 반응은 매우 이채롭다. 유력지〈알게마이네 자이퉁〉은 참리 교수의 이번 주장을“영국의 위대한 과거와 대영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감상적인 애국주의자, 역사학자의 견해??라고 논평했다. 이에 반해 독일의 역사학자들은 참리 교수의 주장이 히틀러의 영국에 대한 거듭된 유화제스처 얘기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며, 히틀러의 과거 속셈에 비추어 볼 때 처칠의 전쟁수행 결정과 대독항전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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