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 뺨치는 불교계 ‘야단법석 선거전’
  • 문정우 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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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총무원장 선출 앞두고 인신공격 · 흑색선전 난무 … 설정 · 지선 · 설조 등 4 ~ 5명 ‘송월주 체제’에 도전

보통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말에는 의외로 불교 용어가 많다. 그 중에는 야단법석이라는 말도 있다. 부처가 실내가 아닌 들에서 설법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속세에서는 시끌시끌하고 어수선한 상태를 일컫는 말로 변질했다. 그런데 요즘 정말 세속적인 의미에서 불교계가 야단법석이다. 오는 10월 속세의 행정부 수반에 해당하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각 세력이 벌써부터 물밑에서 각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이 3선을 강행하다 승려대회에 의해 축출된 뒤 출번한 것이 지금의 송월주 총무원장 체제이다. 따라서 현재의 지도부는 출범 당시부터 구태 척결 기치를 내걸어 개혁 종단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개혁종단이라는 이미지는 빛이 많이 바랬다. 송월주 총무원장을 지지했던 개혁 세력들은 개혁이 중단되었다며 등을 돌렸고, 구세력도 재기를 꿈꾸며 현지 도부를 공격하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때 알게 모르게 이회창 후보를 지원했던 송총무원장은 이후보가 대선에서 낙선한 뒤 급격하게 입지가 좁아졌다. 따라서 재선에 도전하려는 송총무원장과, 정권 교체를 외치는 도전자들 사이에 일찌감치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자금력 막강한 ‘설악산파’ 움직임 주목
현재 송총무원장 체제에 반기를 들고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 도전할 후보는 4~5명이나 될 것을 보인다. 우선 꼽을 수 있는 인물이 중앙종회 의장인 설정. 그는 수덕사를 근거로 한, 조계종 내 유서 갚은 문파 중의 하나인 덕숭 문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원만한 성격에 서울농대 출신 엘리트여서, 불교계 내 온건 세력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최근 지지자들이 경기도 양평의 한 콘도에서 그를 차기 총무원장으로 추대하길 결의하고, 본격적인 세력 규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 장성 백양사 주지 지선. 그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영남 쪽에 주도권을 넘겨주었던 호남의 불교계는 호남정권 출범을 계기로 그를 내세워 ‘정권 교체’를 꾀하고 있다. 그동안 불교 재야 세력의 한 축으로서 김대중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어 온 그는 현재 겉으로는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그가 총무원장 자리를 향해 한 반짝 씩 다가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얼마 전 재야 불교 운동 세력의 연합체인 전국불교운동연합(전불련) 의장 직을 사임했다. 94년 개혁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실천불교승가연합의 공동대표 자리도 내놓았다. 교계에서는 그가 총무원장 출마를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주 불국사 주지 설조. 그는 송월주 총무원장과 같은 금오 문중의 사형사제 간이다. 그는 94년 선거 때 송원장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그와 송원장의 사이는 사형사제 간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벌어졌다.

최근 각 언론사에는 ‘불국사 설조 스님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A4 용지 8장 분량 괴문서가 일제히 배달되었다. 골자는 그가 불국사를 운영하면서 온갖 비리를 저질렀으며, 이중 호적을 활용해 병역을 기피(42쪽 상자 기사 참조)했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설조는 지적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성명서를 교계 신문에 발표 했고, 본사 주지 모임에서 조계종 종단이 괴문서를 작성한 진원지인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괴문서에는 감사 권한을 갖고 있는 종단 본부가 아니면 파악할 수 없는 구체적인 통계 수치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조계종 지도부에 대항해 본사 주지 모임을 이끌면서 자신이 세운 지금의 지도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밖에 총무원장에 두 번 출마했다 낙선한 전 중앙종회 의장 월탄, 그리고 조계종의 오랜 명문인 법어 문중이 지지하는 백타도 출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 교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차기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신흥사 · 낙산사 · 백담사를 한데 묶어 일컫는 이른바 설악산파의 움직임이다. 설악산 파는 뿌리가 깊지 못해 자체 후보는 내지 못했지만 역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언제나 ‘교통정리’를 해왔다. 선거 막판에 설악산 사찰에서 거두어들이는 관광객들의 입장 수입으로 조성한 자금과, 무술 승려들을 투입해 선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이 설악산 파였다. 설악산 파는 현재 어느 후보를 지워할지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설악산 파의 ‘돌아온 대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막후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도 흥밋거리이다. 전두환씨는 특사로 풀려난 뒤 가까운 승려들에게 여러 차례 정치 재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4월 5일 신흥사에서 열린 ‘국난 극복을 위한 참회 대법회’에 참석하는 등 종교 활동으로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는 전T가,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이번 총무원장 선거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것이라는 분석이 교계에서 나오고 있다.

주지 선거도 혼탁 … “10억 써서 당선되겠다”
총무원장은, 전국 24개 교구 본사 대표 10명씩  2백40명과 중앙종회 의원 81명이 직선으로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총무원장 선거의 승패는 누가 각 교구 본사 주지를 자기편으로 많이 끌어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총무원장 선거 전에 모두 7개의 교구 본사에서 직선으로 주지를 선출할 예정이다. 이 또한 총무원장 선거의 분위기를 미리 달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주지를 새로 뽑는 본사 7개 중 가장 먼저 선거를 실시하는 고은 대구 동화사이다. 동화사 주지를 뽑는 산중총회는 4월 10일 열리는데, 이 선거가 총무원장 선거의 대세를 가름할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어 분위기가 과열 혼탁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3월 31일에는 대구 파계사에서 철웅 대선사가 주관하는 대법회가 열렸다. 이 날 대법회에는 문희갑 대구시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과 종단 본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파계사 성전암에서 20년간 수행했다는 철웅 대선사는 현 조계사 주지 현근 등 송원장 진영이 지지하는 인물이다. 종단본부는 그가 주관하는 대법회를 출입 기자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그 때문에 그와 관련된 기사가 일간지에 일제히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법회가 열리기 전날인 30일 밤 대구 시내 술집 곳곳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ㅎ호텔 지하 룸살롱과 ㅇ단란주점 등에서 교계 언론 간부들과 종단본부 관계자, 그리고 철웅 대선사의 법회에 동원된 승려들이 폭탄주까지 돌리며 거나한 술판을 벌였다.

대구에서는 벌써 수주일 전부터 이런 식으로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계속 향응을 베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개 후보 진영은 ‘5억을 쓰고 떨어지느니, 10억을 쓰고 당선되겠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속세의 선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과 흑색선전도 난무하고 있다. 대구 불교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가 ‘차마 부끄러워 그 혼탁상을 내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이다.

대구 동화사 선거에는 불국사 주지 설조와 비교적 가까운 주지 무공, 종단본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철웅, 종회 의원인 성덕 등 5명이 각축하고 있다. 대구 동화사에 이어 나머지 6개 본사에서도 선거전이 시작되면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질 10월까지 불교계는 내내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불교계의 유명한 왈짜들이 어느 어느 후보 진영에 스카우트되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불교계에서는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송월주 총무원장은 후보 자격 시비에 휘말려 있기도 하다. 현재 종헌에는 총무원장은 1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송원장은 80년 10 · 27 법난 전 잠깐 동안 총무원장을 지낸 적이 있다. 그 때문에 반대 세력들은 송원장이 다시 출마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송원장이 출마를 강행할 경우 불교계는 한바탕 회오리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송원장이 다시 당선된다 해도 이 문제는 내내 시빗거리가 될 것이다.

‘사판 싸움’ 치열해야 ‘이판’이 편안?
보통 수행승은 이판(理判), 행정승은 사판(事判)이라 부른다. 행정승은 이판과 속세의 경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판들의 행태는 속세 사람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종단본부를 운영하는 총무원장이나 절집의 살림을 맡고 있는 주지들은 사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세력 다툼은 속세의 선거전처럼 시끄럽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 전체가 부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판들의 활동이 왕성해야 이판들이 편안히 수행에 정진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금 조계종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전은 지나치게 세속화했다. 오히려 속세의 행태를 뛰어넘을 정도로 돈과 폭력과 추문으로 얼룩져 있다. 속된 말로 이판 새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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