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원형은 후기구석기인”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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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은, 평균 한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이고, 주변의 다른 민족과는 인종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국인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시점을 밝히는 작업은 결국 한국인의 민족형성 기원을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문제도 역시 한국인의 평균 얼굴이 형성된 시기를 밝힐 수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 얼굴을 수천년 전 이땅에 산 사람들의 얼굴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고학이나 체질인류학에서는 현재 사람의 머리뼈와 옛날 사람의 머리뼈를 비교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사람의 머리뼈 생김새는 결국 얼굴 생김새와 유사할 수밖에 없고, 또 머리뼈는 유전적으로 계승되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그 형태를 비교하면 순한국인의 얼굴 형태가 이루어진 시기를 역으로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흥미로운 작업이 최근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의 이융조 · 박선주 교수의 공동연구로 진행되었다. 논문 제목은 〈우리 겨레의 뿌리에 관한 고인류학적 연구-청원 두루봉 흥수아이와 선사인류 화석을 중심으로〉이다.

현대 한국인 머리 높이는 높고 앞뒤 길이는 짧아

이 연구에서 이·박 두 교수는 현대 한국인의 머리뼈 형태를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발견된 후기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 인골과 비교 분석했다. 후기구석기 인골로는 북한의 룡곡 · 력포·승리산·만달리·금촌, 남한의 청원군 흥수동굴과 단양군 상시지역의 인골을 비교했다. 신석기 시대 것으로는 웅기와 회령, 중국 동북지역의 인골을, 청동기 시대 인골로는 승리산 · 웅기 · 황석리 인골과 중국 요령성·길림성 · 하북성 일대 인골을 비교 분석했다.

연구 결과 현대 한국인의 머리뼈 형태 특징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청동기시대 고조선기로 드러났다. 현대 한국인 머리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척추뼈와 머리뼈가 만나는 지점에서 정수리까지의 높이인 머리높이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머리높이는 140~141㎜나 되어 세계 평균 수치 132~137㎜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같은 동북아시아의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이다. 또 한국인은 머리의 앞뒤 길이를 재는 머리길이에서는 매우 짧은머리(단두)에 속하나, 머리 양옆의 툭 튀어나온 부분을 재는 머리너비에서는 큰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머리가 큰 편이다. 즉 큰머리와 높은머리는 현대 한국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밖에 현대 한국인은 머리 생김새를 보는 머리너비· 앞머리뼈  최소너비지수에서는 좁은머리이고, 얼굴의 넓적한 정도를 보는 위얼굴 높이· 너비지수에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가운이마, 눈구멍과 콧구멍 크기에서도 중간 크기인 가운눈굼, 가운코굼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52쪽 도표 참조).

그런데 이교수와 박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대 한국인의 이러한 머리뼈 특징이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발견된 고조선 시대 인골의 머리뼈 형태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치한다고 한다. 이는 현대 한국인의 머리뼈 형태가 이미 고조선 시기에 확립되어 유전적으로 계승· 발전되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한국인의 평균적인 얼굴모습이 확립된 것도 고조선 시기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고조선은 한국인 최초의 단일민족 국가인 셈이다.

고조선 시기의 인골에 대한 이교수와 박교수의 연구를 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두 사람은 고조선의 인골이 분포된 범위로서, 고조선의 강역을 중국동북부의 난하까지 확대해 보는 고대사학회의 일부 견해를 수용하고 이곳에서 발견된 인골까지 함께 조사했는데, 이 인골의 머리 형태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인골과는 달리 한반도에서 발견된 인골의 특징인 높은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점도 나타난다.

길림성 지역에서 발견된 인골들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인골과 같이 높은머리에 짧은머리(머리길이와 너비를 비교한 머리길이 · 너비지수)를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요령성에서 발견된 인골은 높은머리에 긴머리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갈래집단은 모두 한국인의 특성인 높은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인골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따라서 “오늘날 한민족의 근간은 고조선 시기에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지역에 있었던 두개의 서로 다른 높은머리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박선주 교수의 견해이다.

머리뼈 재기를 통해 현대 한국인의 형성시기를 청동기시대인 고조선기로 본 이교수와 박교수의 연구는 한민족의 형성기를 고조선으로보는 학계의 기존 견해와 일치한다. 그동안 학계에서 고조선을 한민족의 형성기로 본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의 성립조건인 공통의 혈연 · 언어·문화·관습 같은 여러 요소가 형성되려면 주변의 다른 민족과 지역적으로 구분되는 폐쇄적인‘유전자 풀(gene pool)??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한민족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 시기에 비로소 이러한 폐쇄적인 유전자 풀이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민족형성기를 고조선으로 볼 때 중국 사서에서 동이족으로 구분한 예족·액족 · 삼한족은 바로 한국인의 직접 조상이 된다. 이 세 고대종족 중 가장 앞선 예족은 고조선을 세웠고, 맥족은 예족이 고조선을 세운 뒤 부여를 세웠으며, 그 한 갈래가 고구려를 세운 뒤 여기에 통합되었다. 또 부여족의 한 갈래는 남쪽으로 내려가 삼한족에 통합돼 백제를 세웠다.

북한 학계 “만달인 · 승리산인이 조선 민족의 시원??

그렇다면 문헌에 등장하는 이들 예 · 맥·삼한족은 그보다 앞선 시기에 한반도에 산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현재까지의 고고학 발굴 성과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40만~50만년 전인 전기구석기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또 10만년 전인 중기구석기시대도 존재하며, 3만~4만년 전인 후기구석기시대의 인골도 여러 군데서 발견됐다. 또한 4천~5천년 전인 신석기시대에도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데 이들 문헌 이전 시대에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과 한국인의 직접 조상인 고조선 사람의 관계에 이르면 학계의 견해는 다양한 갈래로 나뉘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약 3만~4만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후기구석기인(슬기사람· 호모사피엔스)을 민족형성 문제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한반도에 살았던 후기구석기인은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그 자취가 발견된 후기구석기인와 함께‘좀돌날석기 (세석핵)문화??라는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동굴벽화를 남기는 등 자의식과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들을 한국인의 시원적 조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은, 이들이 수렵채취 시대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살았다는 데 근거하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설에 대해서는, 빙하기의 추위가 닥쳤을 때도 이들이 이동하지 않고 한반도에 계속 살아남아 한국인의 민족 형질의 원형을 이루었다는 주장(이융조 교수)도 제기되고 있다.

둘째, 4천~5천년 전 한반도로 이동해온 신석기인과 그 이전의 후기구석기인, 그리고 그 다음의 청동기인의 관계이다. 이 시기에 한반도로 이동해온 신석기인은 바이칼호 서안과 시베리아, 만주 일대에 살다가 한반도로 남하한 북방계 인종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것은 신석기시대 문화의 특징인 빗살무늬토기 문화권이 북위 30도 이북 북방지역에 하나의 광범위한 띠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그 이전의 후기구석기인, 그리고 무늬 없는 토기문화를 가지고 북방에서 또다시 남하한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서로의 관계를 단절적인 것으로 보는 입장과, 상호 혼인관계 등을 통한 유전인자의 계승· 발전 관계로 보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이처럼 남한 학계가 한국인의 시원적인 조상을 설정하는 데 심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반면, 북한 학계에서는 1970년대 이후 후기구석기시대 인골에 대한 발굴성과를 토대로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주장해왔다. 즉 북한 학계는 한국인 머리 형태의 특징이 이미 평양시 승호구역에서 발견된 만달인과 평안남도 덕천군에서 발견된 승리산인 등 후기구석기시대 인골에서 확인되었다며, 이들을‘조선 민족??의 시원적인 조상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이다. 북한 학계의 견해에 따르면, ??조선민족은 본토의 승리산인과 만달인을 시원적인 조상으로 하여, 신석기 시대에는??조선옛류형사람??으로 발전했고, 고조선 시기에 이르러 조선민족의 직접 조상인 예 · 맥 · 삼한 등 고대 종족으로 이어져왔다??(장우진〈조선사람의 시원에 대하여〉).

이융조· 박선주 교수의 연구결과는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한국인의 기원 문제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방법도 역시 현대한국인의 머리뼈의 특징을 후기구석기· 신석기인의 머리뼈 특징과 비교 검토하는 방법이다. 연구 결과, 한반도 일대에서 발견된 후기구석기인의 머리뼈는 머리의 앞뒤 길이에서는 현대 한국인보다 매우 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머리너비· 높이지수에서는 높은머리의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위에서 본 머리통과 위얼굴의 관계, 눈구멍과 콧구멍의 모습에서도 현대 한국인의 특징이 나타나고있다. 이는 곧 “한국인의 머리 형태의 특징이 이미 후기구석기시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박선주 교수는 말했다. 즉 이미 후기구석기시대에 한국인의 시원적인 조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신석기시대 인골을 비교하면 머리뼈의 특징이 혼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시기에 북방에서 새로운 인종이 유입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머리뼈 형태의 변화라는 점에서 보면 이들 새로운 인종과 후기구석기인, 그리고 그 다음 시기인 청동기시대인과의 관계는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유전형질의 상호 교환관계에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고 한다. 즉 한국인의 머리 형태는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비롯된 유전형질에,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북방에서 내려온 유전형질이 상호 계승 발전되면서, 고조선 시기에 비교적 뚜렷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 인류의 이동경로라는 점에서 볼 때 한국인의 원조상인 후기구석기인은 남방계적인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80년대 이후 세계 고고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는 현생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 후기구석기인이 약 20만년전 남아프리카의 한 여성(‘미토콘드리아 이브??)에서 발생하였다는 ??아프리카 단일기원설??로 귀착되고 있다(최근에는 이 학설에 대해, 연구에 쓰인 컴퓨터 프로그램에 잘못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들 후기구석기인은 약 10만년전 북아프리카로 이동했다가, 다시 4만년 전에는 크게 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데, 한 갈래는 유럽으로 들어가 유럽인의 조상이 되고, 다른 한 갈래는 아라비아반도 시베리아를 거쳐 북미 · 남미에 도착했다. 한반도로 이동해온 후기구석기인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인도를 거쳐 이동해온 세 번째 갈래로, 그중 한 갈래는 인도네시아로 들어갔고, 나머지 큰 갈래가 중국 남부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으로 건너왔다.

이러한 경로로 보아 한반도로 들어온 후기구석기인이 주로 남방민족과 비슷한 속성을 띠게 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그후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 고립돼 견디는 과정에서 남방계적인 특성 위에 한국인 고유의 체질적인 특성을 더해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로 건너온 북방계 사람이 대체로 한국인의 주류를 이루는 북방계 얼굴 모습을 남겨 주었다면, 주로 한반도 남부에서 보이고 있는 남방계적인 특성은 이들 후기구석기인들로부터 전해져온 유전형질인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교수와 박교수의 연구가 주로 한민족의 형성기원과 관련한 실증적 고찰이라면, 최근 몇년사이 한국인과 주변 여러 민족 간의 관계에 대한 국내 일부 학자와 중국 및 일본 학자의 연구는 한국인의 인종적 위치를 밝히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조선족과 동북 3성 중국인은 같은 혈통

중국학자들의 연구는 주로 80년대 후반 조선족과 중국내 소수 민족의 체질적 특징을 비교연구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상해 제2 의과대학의 張海國 교수, 중국과학원의 張振標 교수, 王令紅 교수가 있다(손보기 교수〈체질학상으로 본 한국 사람의 뿌리〉). 이들 중국학자의 연구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족과 중국 동북 3성에 사는 중국인의 관계이다. 체질이나 머리뼈의 수치 비교에서 동북 3성의 중국인은 조선족과 거의 비슷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융조 교수와 박선주 교수의 머리뼈 재기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이들 지역의 중국인들이 고조선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인과 같은 혈통을 가지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전인자를 조사함으로써 한국인과 다른 인종 간의 유전적 거리를 분석한 연구결과로는 적혈구· 콩팥효소· 혈청촉진단백질·항쓸개 등을 조사해 조선족 티벳족 몽고족 간의 유전 거리를 조사한 중국의 徐玖瑾 교수, 항체유전인자(GM)를 통해 세계 각 인종 간의 유전 거리를 조사한 일본인 학자 마쓰모토(松本秀雄) , 백혈구 항원을 통해 유전 거리를 조사한 한양대학교 김목현 교수 등의 연구가 있다(손보기 교수〈체질학상으로 본 한국 사람의 뿌리〉).

이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동아시아의 인종 갈래 중 몽고족 티벳족 둥 북위 30도 이북에 분포하는 북방계 인종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있었던 두번의 북방계인종 유입과 관련한 결과이다. 또 유전 거리라는 면에서 한국인은 일본인과 매우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를 전후하여 우리 겨레의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의 인종을 구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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