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평균 얼굴’컴퓨터로 찾아냈다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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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8일 오후 5시께, 명지대학교 용인캠퍼스 최창석 교수(정보통신공학) 연구실. 연구실에 있던 관계자들의 눈길이 온통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 화면에 못박혔다. 곧 네시간에 걸친 한국인의 가상 표준형 합성 작업의 결과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날 것이다. 과연 어떤 얼굴이 나타날 것인가. 현장에는 최창석 교수와 이 작업의 실무를 맡은 박철하씨 (박사과정) , 서울교육대 미술교육과 조용진 교수, 그리고 (시사저널) 특집반이 자리를 함께했다.

잠시후 한 젊은 여성의 얼굴이 컴퓨터 화면에 떠올랐다. 어렴풋이 상상으로만 그린 평균한국인 여성의 얼굴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인의 평균 얼굴을 찾아온 조용진 교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생각했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조교수는 곧 인화지에 출력된 얼굴의 가로 세로 비율, 눈 코 입 귀의 크기와 각도를 자로 재 보고는 자신이 조사한 평균 수치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평균 얼굴 모습을 컴퓨터로 합성해낸 이 작업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다. 이는 《시사저널》이 한국인의 평균 얼굴에 대해 광범위한 측정자료를 축적해온 조용진 교수와, 컴퓨터로 사진을 합성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명지대 최창석 교수에 의뢰해 이루어졌다.

여성의 평균 얼굴은 눈에 익으나 남성은 낯설어

조용진 교수는 과거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연구하기도 한 현직 화가이다. 그는 화가로서 오늘날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미의식을 제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우선 한국인의 얼굴을 과학적이고 정량적인 방법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지난 86년부터 91년까지 매년 5월 서울에 있는 각 대학 2학년 학생으로, 20세인 남녀 1백60명의 얼굴 각 부위 94군데를 측정해, 20세의 평균 한국인에 대한 통계자료를 이미 완성해놓았다.

이 날의 작업은 조교수가 91년 조사한 남녀 대학생 1백60명의 얼굴 중, 얼굴의 가로·세로 비율과 눈 코 입 귀의 위치 및 각도가 20세 한국인의 평균치와 가장 가까운 남녀 각 4명의 사진을 골라낸 다음, 이 4명의 평균 얼굴 모습을 최창석 교수의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해 다시 합성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지난 91년 최교수가 개발한 가칭 ‘얼굴 영상의 분석?합성 시스템??은 사진만 집어넣으면 컴퓨터가 스스로 평균적인 얼굴을 합성해내는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다(44-45쪽 보조 기사 참조) . 이런 작업방식은 평균치에 비교적 정확하게 근접한 얼굴 사진을 컴퓨터가 다시 평균해 합성해냈다는 점에서 작업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20세의 평균한국인 여성은, 한국인이라면 한두번쯤은 마음 속에 그려보았을 한국 여성의 얼굴 모습을 비슷하게 재현하고 있다. 얼굴의 윤곽선이나 눈 코 입 귀의 모습이 어디선가 한번쯤 본 듯한 정감어린 얼굴이다.

여성의 얼굴이 비교적 눈에 익은 모습인 데 비해 20대 평균한국인 남성의 얼굴은 나이든 사람이 보기에는 어딘가 낯선 모습이다. 그것은 20대 평균한국인 남성의 얼굴이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생각해온 것에 비해 광대뼈가 작아지고 턱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얼굴 모습이 과거에 비해 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평균한국인의 얼굴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한국인의 얼굴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것이 북방계 인종과의 친연성이다. 이는 한국인의 민족 형성기에 주로 바이칼호·시베리아·만주 일대의 북방계 인종이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50-52쪽 기사 참조). 단국대 손보기 교수는 한국인이 지닌 북방계 특징으로 “실눈에 광대뼈가 크게 튀어나오고, 코가 덜 오똑하고, 중키에 살붙음이 통통한 몸매??를 들고 있는데, 이는 ??추운 지방에서 오랫동안 적응한 조상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한국인에게 북방계의 특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한반도의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남방민족적 특징도 있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이는 한국인의 시원적 조상인 후기구석기인이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반도와 인도 남부를 거쳐 한반도까지 오는 과정에서 남방쪽에 비슷한 인종이 퍼져 살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병모 교수(한양대?문화인류학)는 고조선 이후에도 이 경로를 통한 인구 유입이 있었으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북방적 특성과 남방적 특성은 얼굴 생김새에서도 나타난다. 조용진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얼굴 모습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54~55쪽 기사 참조). 첫번째 형태는 주로 한반도 북부에 분포하는 북방계 유전자형으로, 얼굴의 아래 위 길이가 길다. 두번째는 한반도 남부에 주로 분포하는 남방계 유전자형으로 얼굴 길이가 짧고 양옆의 너비가 널어 네모나다. 세번째는 주로 한반도 중부지역에 분포하는 형태로, 북방계와 남방계의 중간 모습이다. 지역에 따른 차이는 눈 코 입 귀에서도 확인된다.

남자와 여자의 얼굴 형태에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해부학이나, 허 준의 《동의보감》,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등 한의서에서는 대체로 남자는 얼굴 왼쪽이 크고, 여자는 얼굴 오른쪽이 크다고 되어 있다. 조용진 교수가 86년 조사한 바로는 조사대상 남녀의 약 37%가량은 양쪽 얼굴이 비교적 균제한 얼굴이나, 남자의 40%는 얼굴 왼쪽이 크고 여자의 36%는 얼굴 오른쪽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의 차이는 그렇다 치고, 한국인의 얼굴 형태가 지역적으로 크게 세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면, 이의 평균치는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얼굴일 수밖에 없다. 원과 사각형의 평균을 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무의미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 해도 평균한국인의 얼굴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평균한국인은, 한국인의 평균적 얼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또 얼굴 형태의 변화를 통해 사회심리나 풍속의 변화과정도 점칠 수 있다.

먼저 턱밑에서 정수리까지의 높이를 재는 총두고에서 평균한국인 여자는 22cm (42쪽 아래 사진) 남자는 약 22.4cm (43쪽 아래 사진)를 보여 남자의 얼굴이 여자보다 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얼굴 높이인 발제점고(턱밑에서 이마 맨 윗부분까지의 수직거리)가 남자는 약 19.5cn, 여자는 약 18.6㎝이다. 얼굴의 높이를 크게 3등분해, 이마 부분을 윗얼굴, 양미간 중앙에서 코밑까지를 가운데얼굴, 코밑에서 턱밑을 아랫얼굴이라고 볼 때, 윗얼굴 가운데얼굴 아랫얼굴의 비율은 남자가 91 : 100 : 106, 여자가 88 : 100 : 102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인의 평균얼굴이 이마가 낮고 아랫얼굴, 즉 턱부분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머리의 양옆 툭 튀어 나온 부분을 재는 두최대폭에서 평균한국인 남자는 약 16㎝, 여자는 약 15.5㎝이고, 양쪽 광대뼈의 끝점을 재는 얼굴 최대폭에서는 남자가 약 14.7㎝, 여자가 약 14.4cm로 얼굴의 너비에서도 남자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양미간에서 머리 뒤꼭지까지의 투영적 거리를 재는 두최대장은 평균한국인 남자가 약18㎝, 여자는 약 17㎝로 나타났다.

이처럼 평균한국인의 얼굴 모습은 전체적으로 머리의 높이가 매우 높고 얼굴의 너비가 넓은 편이나, 머리의 앞뒤 길이가 짧으며, 얼굴을 3등분했을 때 이마가 낮고 아랫얼굴, 즉 턱부분이 크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얼굴 윤곽선에서 나타나는 또하나의 특징은 얼굴의 가로축과 세로축 비율이 1 : 1.3을 유지해 전체적으로 달걀형이라는 점이다. 이 1 : 1.3이라는 비율은 하회탈 중 각시탈의 가로 세로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눈 코 입 귀에서도 한국인의 얼굴은 주변의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눈이 작고, 쌍꺼풀은 없는 편이며, 눈두덩이 넓고, 눈썹은 흐리다. 코는 콧등의 길이가 긴 반면 코의 너비가 좁고 콧날도 얇아 전체적으로 코가 작은 편이다. 또 입술은 얇은 편이고, 귀는 추운 기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귓볼이 발달되지 않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의 얼굴을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머리 높이가 월등히 높고 너비도 넓은 편이나 앞뒤 길이가 짧다. 그러나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의 차이는 주로 ‘한국인답다?? 또는 ??중국인 (일본인)답다??는 정형화된 주관적인 관점에서 좀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젊은이 얼굴, 일본 젊은이 닮아가

일반적으로 각 민족의 얼굴 형태는 선조 때부터 내려온 유전적 형질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지역적 · 혈연적으로 폐쇄된 민족공동체 내에서 상호 혼인관계가 중첩되면 유전자 상승작용이 일어나 각 민족에 고유한 얼굴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얼굴 형태가 마냥 고정돼 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윤곽선이나 얼굴의 비례관계 따위는 크게 변하지 않지만, 일부 부위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컴퓨터로 합성한 평균한국인 남자의 얼굴이 낯설어 보인 까닭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턱이 좁아보이고 광대뼈가 작아졌다는 데 있다. 이같은 경향은 1930년대 일본인 학자들이 한국인의 인골을 조사한 수치와 비교해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조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86~91년 6년 간에도 이같은 경향이 급격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턱의 길이가 4%정도 줄었고, 턱 윤곽선이 모나지 않고 밋밋해져 정면에서 보면 아래턱이 좁고 뾰족하게 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체질인류학자들은 주로 음식물의 차이에 의해서 얼굴 형태의 변화가 나타난다고 본다. 박선주 교수(충북대 ·고고미술사학)는 “한국인의 얼굴이 광대뼈가 튀어나온 북방형의 모습을 띠는 것은 주로 추운 기후에서 딱딱한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젊은 세대의 얼굴이 장년층이나 노년층에 비해 광대뼈와 턱이 작아지는 변화를 보이는 것도 음식물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즉 요즘 젊은층이 주로 먹는 인스턴트 음식은 장년층과 노년층이 주로 먹던 딱딱하고 질긴 음식에 비해 턱뼈가 발달하지 않아도 된다. 이에 따라 광대뼈와 눈주위 뼈의 발달도 지체되고 두개골도 얇아지게 돼 전체적으로 유약한 인상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얼굴 모습은 대체적으로 일본 젊은 세대의 얼굴을 닳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장신요 명예교수(해부학)는 해부학적인 측면에서도 “한국의 젊은이와 일본의 젊은이는 점차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대에 따른 얼굴 형태의 변화는 각 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 즉 미인·미남형에 있어서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조용진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이 좋아하는 얼굴형은 세대별로 크게 세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50~60대가 선호하는 얼굴형은 대체로 턱이 큰 편이고, 입과 코는 작고, 눈두덩이 넓고 쌍꺼풀이 없으며, 얼굴 전체는 납작한 모습을 한 전통적인 미인형에 가까운 얼굴형이다(45쪽 위 오른쪽 사진). 주로 30~40대가 좋아하는 얼굴형은 얼굴이 전체적으로 좁고 길며, 가운데얼굴이 앞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왔고, 눈과 입은 크나 입술은 두껍지 않은 서구적 인상을 띤 미스코리아형이다(45쪽 위 왼쪽 사진). 세번째는 주로 10~20대에서 선호하는 얼굴형으로, 턱이 작아 얼굴 높이가 전체적으로 낮아 보이고, 눈은 동그랗고 크며, 코는 약간 높으나 크지 않고, 입술은 두툼한 ‘낭만기형 미인??이다.

10~20대가 선호하는 얼굴은 세기말적 미인형

조용진 교수는 미인형에 대한 이같은 변화 추세는 “남성적인 견실미보다 여성적인 유약미를 좋게 보는 사회심리가 반영된 현상으로,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라고 평가한다. 특히 10대와 20대가 선호하는 미인형은 미술사적인 측면에서는 그리스 말기의 헬레니즘 시대, 로코코 시대, 프랑스의 낭만주의 시대, 우리나라의 조선후기 등 세기말에 나타나는 미인형과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세기말적 미인형은 경제적 풍요?문화적 음성?생기발랄한 사회기풍 등 긍정적인 면을 나타내기도 하나, 퇴폐?사치?허영에 들뜬 사회 분위기 등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를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인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좀더 건강한 미의식을 회복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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