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총리, 그 이름은 힐러리”
  • 워싱턴·김승웅 특파원 ()
  • 승인 200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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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몸놀림이 눈에 띄게 기민해졌다. 백악관에 입성한 지 닷새째 되는 날, 그는 남편 클린턴의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서관(웨스트윙) 바로 위층에 자신의 전용 사무실을 차렸다. 엿새째에는 클린턴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통령 직속 기구인 의료보험해결전담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토록 했다.

미국 국민 가운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효는 4천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야말로 클린턴의 취임후‘1백일작전??의 승패를 결정하는 가늠자 구실을 하게 된다. 자신의 선거공약이기도 한 이 난제에 대해 클린턴은 선뜻 그의 아내를 해결사로 임명한 것이다. 클린턴은 결과적으로 힐러리가 백악관에 사무실을 가질 명분을 준 셈이다.

대통령 부인 41명의 자서전 독파

힐러리의 잽싼 동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백악관을 거쳐간 역대 대통령 부인 41명의 자서전과 기록을 샅샅이 독파해 누가 어떤 분야에서 출중했고, 어떤 점이 단점이었는지를 속속들이 파악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기록 중 힐러리를 가장 매료시킨 자료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 엘리어트 루스벨트가 쓴 자전적 추리소설이 꼽힌다. 이 소설에 아마추어 탐정으로 등장하는 여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역할이야말로 힐러리가 추구하는 본보기인 듯하다.

힐러리는 지금 백악관에서 변호총장(Advocate-in-Chief)으로 불린다. 검찰총장, 또는 법무장관(Attorney General)에서 따온 이 별명은 그가 미국의 현역 변호사가운데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단순한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다.

현역 각료 14명 가운데 과반수가 변호사 출신인 데다, 남편 클린턴까지 변호사 출신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여변호사 힐러리의 입김과 역량이야말로 가히 ‘변호총장?? 또는 ??변호장관??이 되고도 남는다는, 자못 풍자적인 별명이다.

별명에 걸맞게 힐러리의 실제 역할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한갓 ‘치맛바람??차원이 아니라 훨씬 치밀하고 실용적인 차원으로 전개되는 고감도의 정치공학이 될 것임을 깨닫게 한다. 구체적인 예가 남편 휘하에 심어논 그의 사단이다.

클린턴의 모든 일정을 짜고 기획하는 보좌관 수전 토머스는 힐러리와는 예일대 법과대학 대학원 동기동창이다. 또 클린턴의 국내정치 담당 수석보좌관 캐럴 래스코와 에너지장관 헤이즐 올리어리, 보건장관 도나 살랄라 역시 힐러리가 인수인계팀에 압력을 넣어 발탁케 만든 여성 앨리트들이다.

"힐러리에 대적할 인물은 클린턴뿐”

남성 심복도 적지 않다. 브루스 린지는 백악관 수석 보좌관에, 워터게이트 사건 때 힐러리와 함께 하원 법사위에서 활약한 변호사 버나드 너스바움은 백악관 자문위원으로 임명됐다. 또 그와 한 회사에서 변호사 일을 보던 빈스 포스터는 백악관 차석 자문위원으로, 역시 비즈니스 분야에서 동업자였던 아이러 매거지너 변호사는 곧 대통령보좌관으로 발령날 예정이다.

힐러리는 또 지난번 선거에서 선거자금 관리를 도맡다시피 한론 브라운 상무장관이나 캐럴 브라우너 환경청장, 마이크 에스피 농무장관 등과는 클린턴 못지않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힐러리가 이들을 회식이나 여행에 초청해 자기의 주장을 피력하거나 이의 정책화를 종용할 경우 과연 완강히 거부할 각료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야당인 공화당 중진의원들의 우려다. 공화당 의원들은 대놓고 말한다. “힐러리는 미합중국 총리다. 클린턴 말고는 그를 대적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힐러리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 할 클린턴은 “내가 만일 힐러리를 중용하지 않는다면 나는 미합중국에 대해 직무유기를 범하는 꼴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마치 남편의 직무유기를 막기 위해서인 듯이 힐러리가 노리는 정치활동은 굵직굵직한 것들이다. 힐러리 측근들이 예상하는 첫 작업은 그가 각료회의에 참석하는 일이다. 그들은 힐러리가 이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의회에 나가 증언하거나 답변하는 문제까지 아울러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힐러리를 견제하는 것이 남편의 힘으로 가능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을 시사하는 가장 유력한 단서로 미국의 식자들은 17년 전 예일대 캠퍼스에서 있었던 클린턴과 힐러리의 첫 데이트를 즐겨 인용한다. 법과대학원생 클린턴한테 다가간 같은 과 여학생 힐러리가 먼저 말을 건다. “넌, 내 꽁무니만 훔쳐보는데 나 역시 너한테 관심이 많아. 우리 괜히 시간낭비하지 말자. 내 이름은 힐러리야, 힐러리 로댐!??

둘은 얼마후 기숙사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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