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18세기 조선’ 바로 읽기
  • 허영환(성신여대 교수. 박물관장) ()
  • 승인 1998.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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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시대가 위대한 예술가를 낳는냐, 아니면 위대한 예술가가 위대한 시대를 만드느냐. 이 논쟁에 대한 결론은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위대한 시대와 위대한 예술가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위대한 시대와 위대한 예술가 사이에는 역사적 · 민족적 · 지역적 상관성이 있다는 말이다.

인류 역사에서 18세기가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양 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인지 일찍이 18세기학회를 창립해 18세기를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한국에도 18세기학회가 있다.

서양에서는 18세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발표했으며*1762년), 수력 방적기가 발명되었다(1768년).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 냈고(1774년), 미국의 독립선언이 있었다(1776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1789년)가 실시되고 프랑스에서 시민혁명(1789)이 일어났다.

조선의 문화 절정기 연구하는 ‘최완수 학파’
동아시아도 황금기를 누렸다. 중국은 강희 · 옹정 · 건륭 황제 시대에 중화 문화의 절정기를 이루었으며, 한국도 숙종 · 영조 · 정조 임금에 의해 문예 부흥기를 맞았다. 중국에서 1795년에 건륭 황제가 물러남과 동시에 청나라의 몰락이 시작되고, 조선에서 1800년에 정조 대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남으로써 위대한 시대가 마감된 것을 볼 때 시대와 예술의 상관성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한국의 18세기는 참으로 위대한 시대였다. 이 위대한 문화 절정기를 ‘진경시대(眞景時代)’라 부르며 이 시대를 연구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최완수 학파’라 부른다. 서울대 사학과 출신인 최완수씨(56)는 학사이지만 박사 제자를 많이 거느린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재야 학자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추사 · 겸재 연구가이기도 하다.

최완수씨는 32년 전인 66년부터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있으면서 20명 가까운 연구원 겸 제자를 길러내고, 저서와 논문을 많이 펴냈다. <불상 연구(佛像 硏究)> <추사집(秋史集)>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등의 저서와 <겸재 정선> <추사 실기> <비파서고> <한국 서예사강> 같은 논문이 있다.

최씨는 이번에 그의 제자 · 지인 9명과 함께 진경 시대에 관한 글 열세 편을 모아 <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 시대>라는 책을 냈다. 최완수씨가 ,조선 왕조의 문화 절정기 진경 시대> <진경시대 서예사의 흐름과 계보> <겸재 정선과 진경 산수화풍>등 세 편, 유봉학 교수가 <경화사족의 사상과 진경 문화> <조선 후기 풍속화 변천의 사회사상적 배경> 등 두 편을 썼고, 강관식 김기홍 방병선 오주석 이세영 정병삼 정옥자 지두환 교수들이 한 편씩 썼다.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인 저자들은 진경 시대의 사상 · 정치  경제 · 문화 · 회화 · 서예 · 도자기 등 여러 분야를 연구하여 진경 시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즉 문화 절정기로서의 진경 시대, 진경 시문학, 경화사족 사상과 진경 문화, 진경 시대의 성리학, 진경 시대의 불교문화, 진경 시대의 사회경제적 변화, 진경 시대의 서예사, 진경산수화풍, 조선 남종화풍, 단원의 생애와 예술, 조선후기 풍속화, 진경 시대 초상화 양식, 진경 시대 백자 따위 깊이 있는 논문들이 18세기 조선 진경 시대를 밝게 조명했다.

이 책의 큰 미덕은 다른 논문집과 달리 귀한 도판 자료를 2백17장이나 실었다는 점이다. 이런 풍부한 도판만으로도 독자들은 조선 후기 문화 · 예술사를 한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조선이 곧 중화(中華)라는 이식을 가지고 자기 시대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그 고유문화를 발전시켰던 조선의 문예 부흥기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문화 절정기는 3백년 만에 한번씩 찾아왔다. 즉 통일신라시대인 700~800년대, 고려 시대인 1100년대, 조선 초기 1400년대, 조선 중기 1700년대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2000년대에 문화 절정기를 다시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절정기가 2백년 쯤 계속 되었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IMF 시대가 끝날 즈음 우리는 아주 찬란한 문화 절정기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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