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 만난 컨설팅 업체 한국 경제구세주인가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8.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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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관과 기업들 다투어 ‘SOS'...지나친 믿음은 버려야

한국 경제는 경기 침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에 들어온 다국적 컨설팅 업체들은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컨설팅 업체들은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잠잠해진 갖가지 경영 혁신방안들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한국 경제 희생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6.25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국내 경제 주체들은 대략 20억 ~50억 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컨설팅 업체에 쥐어 주며 ‘쿠오 바디스‘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주님의길‘을 알고 있는 것일까?

  미국과 유럽에서는 컨설팅 업체들이 이룬 성과에 대한 회의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80년대 미국과 유럽 경제가 불화의 늪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선진 업체들은 세계 유수대학에서 똑똑한 인재를 싹쓸이해 간 컨설팅 업체가 볼황 타개 방안과 전망을 내놓기를 바라며 거액을 헌납했다. 76년 컨설팅 업체들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판한 이후 최대 사건이라는 리엔지니어링을 비롯한 최신 경영 기법을 제시하며 세계 유명 기업최고 경영진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많은 기업들이 계속 거액을 들이며 그들의 조언을 들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들인 비용만큼 얻은 것이 있느냐를 판단할 기준과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딜버트의 원칙>과 <독버트의 극비 경영 핸드북>의 저자 스콧 애덤스는, 컨설턴트는 당신의 돈을 앗아가고 당신의 종업원들을 괴롭히며 끊임없이 계약을 연장하려는 사람 이라고 폄하했다.

두산,매킨지 도움 받고 일찌감치 위기 탈출
   끊임없이 제기되는 회의론과 조롱에 지친 컨설턴트들이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들어오면 신천지를 발견한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경제 주체들과 콧대 높기로 유명한 경제 . 금융관료들이 다국적 컨설턴트를 구세주처럼 신봉하고 복음을 구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 한때 잘 써먹었던 경영 혁신 개념들을 적당히 둘러대도 두둑한 컨설팅료가 그들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경제 위기 이후 두 권의 책이 한국 출판계를 강타했다. 컨설팅 업체인 부즈앨런&해밀턴과 매킨지 사가 각각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위기의 원인과 탈출 방안을 제시한 <한국 보 고소>가 그것이다. 매킨지의 <한국 경제보고서.는 6만부나 팔려 한때 대형 서점에서 베스 트셀러 종합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집계한 이후 경영 . 경제 서적이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해양수산부 1급 이상 공무원들은 장관의 명령에 따라 억지 춘향 격으로 이 복음서를 읽어야 했다.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의 원인과 탈출 방안을 모색하는 여름철 세미나와 토론회마다 이 책들에서 인용된 말이 난무했다. 이 보고서가 한국인의 후진성과 무분별함을 질타하면 한국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융 감독 위원회(금감위)는 은행 . 증권 . 보험 감독 위원회를 금융 감독원 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매킨지에 의뢰했다. 또 금감위 산하 기업구조조정 위원회에는 부즈앨런&해밀턴 장종현 사장과 앤더슨컨설팅 이재형 사장이 상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부채 비율이 높고 독자 희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업체들을 추려내 기업 가치 회생 작업을 주도하는 위원회이다.

  세계 유명 컨설팅 업체가 뻗는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것은 정부뿐만 아니다. 자의 반 타의 반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빠진 금융기관과 기업체들도 구조조정 경험이 풍부한 컨설팅 업체에 앞 다투어 기업 회생방안을 의회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 세계 제1위 컨설팅 업체인 앤더슨컨설팅은 전세계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참여하는 기아자동차 입찰을 주관하면서 정부와 채권단이 내놓은 큰 틀에 맞추어 기아자동차 처리 세부 방안을 내놓고 있다. 앤더슨컨설팅은 그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축 내던 기아자동차 처리 문제를 미국과 유럽에서 부실 규모가 큰 업체들을 매각한 경험을 살려 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구조 조정의 모범 사례라고 손꼽히는 두산그룹은 일찌감치 매킨지의 도움을 받았다. 매킨지가 파견한 컨설턴트와 두산 그룹 임직원이 한 팀이 되어 조직한 트라이C팀은 혁신에 가까운 기업구조조정 작업을 해냈다. 사업 전망이 없는 계열사와 부동산은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팔아치웠다. 심지어 두산 그룹 태생지인 영등포 공장을 파는데두 주저함이 없었다. 두산그룹 박용만 기획조정실장은 “매킨지에 많은 비용을 지불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얻었다고 생각한다.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에 그룹 살빼기에 들어가 국내 다른 업체들보다 위기를 덜 타고 있지 않는가“ 라고 말했다.

세계 초우량 업체들은 컨설팅 업체 외면
  보람은행은 94년 매킨지의 컨설팅을 받아 고객위주의 경영 혁신을 이루어냈다. 보람은행은 96 .97년 연속 고객 만족도 1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조흥은행이 브즈앨런&해밀턴과 손잡고 금감위에 제출할 기업 구조 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밖에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이 경제위기를 전후로, 줄지어 외국 컨설팅 업체들의 주머니를 둑둑히 채워 주면서 경영 컨설팅을 받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김우중 차기 회장은 선출되자마자 외국 선진 업체들의 기업 지배 구조와 재무 구조를 조사해 달라고 보스턴컨설팅에 의뢰했다. 정부가 경제 위기의 책임을 대기업들에게 돌리고 강도 높게 기업 지배구조와 재무 구조 개선작업에 착수하려 하자 반박할 논리를 마련하려는 뜻이었다. 보스턴컨설팅은 세계초우량 기업들의선례를 들면서 정부가 주장하는 업종 전문화가 절대 선은 아니라는 논리를 개발해 주었다.

  하지만 전경련 규제개혁팀 심종익 부장은 보스턴컨설팅에 건 기대가 컸던지 조사 내용에 대해 썩 만족하지 못했다. “외국 선진 업체들의 지배 구조와 재무 구조가 어떠했는지, 또 기업 다각화나 업종 전문화가 거둔 성과들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 했는데, 의외로 그 결과가 싱거웠다“. 그는 또 ”사실 기업이 처한 상황은 해당 기업이 잘 안다. 따라서 기업이 가진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점을 제시하는 데서도 내부 기획부서가 더 현실성 있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부즈앨런&해밀턴과 매킨지 보고서 내용도 미국에서 유행하는 몇 가지 새로운 경영 개념을 제외하고는 국내 경제학자들과 기업 경영진들이 알만한 처방전이다. ‘부채 비율이 높고 덩치만 키우는데 집착한 한국 업체들은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한국 금융의 후진성이 외환 위기 주범이다.‘ 이런 충고는 외환 위기가 닥친 지난해 11월을 전후해 국내외 경제학자들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부즈앨런&해밀턴의 <한국 보고서>는 ‘한국 경제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만 있고 행동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세계초우량 업체들은 잇달아 컨설팅 업체와의 계약 연장을 포기하고 있다. 미국 최대 통신 회사인 AT&T는 지난 10년 동안 매킨지를 비롯해 천개가 넘는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고 경영 컨설팅을 받는 데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AT&T는 컨설팅 업체의 조언을 받아들여 컴퓨터 업체인 NCR를 인수한 후 대량 정리 해고와 경영 혁신 책을 시행했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96년 11월 존 윌터 신임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회사 안에 있는 모든 컨설턴트들을 내쫓은 것이었다. 초우량 업체로 손꼽히는 휴렛팩커드와 존스 앤드 존슨은 아예 컨설팅 업체들과 인연을 끊고 산다. 3M은 업종 전문화라는 컨설팅업체의 복음을 무시하고 업종 다각화를 꾀했는데 이것이 성공해 컨설턴트들을 무안하게 했다.

유명하니깐 믿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컨설팅 업체들이 불황 이나 위기에 처한 업체들에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는 최신 경영 기법, 즉 리엔지니어링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나고 있다. 리엔지니어링 창시자 마이클 해머조차, 리엔지니어링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고 말한다. 리엔지니어링을 산업 현장에서 실행하고 있는 컨설팅 업계의 체면은 지금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컨설팅 업체가 상종가를 치고 있는가? 전경련 심종익 부장의 말은 이렇다. “정책과 관련한 문제는 우리(전경련)가 더 잘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었들때 정부나 일반 구민이 믿겠는가. 또 기업 기획부서가 구조 개선안을 작성한다고 할 때 일반 직원들과 이해 관계자들이 중립성과 객관성을 믿겠는가.“ 하지만 같은 결론을 내리더라도 외국 컨설팅 업체들은 객관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한국기업들의 경영 형태와 사업 관행이 투명하지 못해 스스로 불러들인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조흥은행 구조조정안 마련작업에서도 나타난다. 이 작업에 참여 하고 있는 한 실무 직원은 “조흥은행 임직원들이 아무리 훌륭한 구조조정안을 만들어 금감위에 제출한다고 해도 금감위가 믿겠는가“ 라고 되물었다. 하지만 부즈앨런&해밀턴과 함께 작업한 구조 조정안은 금감위가 의심 없이 받아들지 모른다.

  유명 컨설팅 업체의 이름이 가진 신통력은 기업체 최고 경영진을 설득하는데도 약효가 있다. 최고 경영자들은 자기 회사 직원과 국내 경영 컨설팅 업체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는 우습게 보아도 매킨지나 보스턴컨설팅 같은 업체들이 제시한 전략은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두산그룹 기획조정실 트라이C팀 이상화 차장은 “매킨지가 최고 경영진에 내놓은 전략 가우데 트라이C팀에 속한 두산그룹 직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도 적지 않다. 평소라면 채택되지 않았을 두산그룹 내부 직원의 아이디어를 매킨지는 매킨지 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최고 경영진이 받아들이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유명컨설팅 업체들과 함께 일한 국내 업체들이 메킨지나 부즈앨런&해밀턴 같은 컨설팅 업체들이 가진 계량 분석 능력과 균형 감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조흥은행 구조 조정에 참여한 한 직원은, 부즈앨런&해밀턴이 계량 분석 도구를 동원해 어디서 돈을 벌고 어디서 까먹는지,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의사 결정 과정이 어떤지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보인 치밀함 과 정확성에 혀를 내둘렀다.

  컨설팅 업체들은 치밀한 분석 들을 이용해 기업이 처한 상황을 밝혀낸 후 기업 처지에 맞는 전략과 전망을 제시한다. 국내 컨설팅 업체나 기획부서 임직원들도 비슷한 전략을 내놓지만 설득력에서 차이가 나다. 컨설팅 업체들은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최고 경영진을 설득하기 쉽다.

  앞으로 한국이 경제 윅의 터널을 벗어나기까지 유명 컨설팅 업체의 활약은 더 커질 것 같다. 국내 경제 관행에 투명해져 경제 주체 간에 신뢰성이 회복되고 계량 분석과 선진 경영 개념이 충분히 도입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컨설팅 업체가 제시하는 전략과 전망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컨설팅 업체들은 여러 가지 메뉴를 준비한 뒤 소화하기 쉬운 것을 골라 먹으라고 권고할 뿐 일일이 떠먹여주지는 않는다.

  94년 매킨지의 컨설팅을 받은 보람은행 이증락 경영혁신팀장은 “의사가 약을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약만 먹고 운동은 하지 않는다면 병이 낫겠는가.“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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