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용 차는 뭔가 다르다 ?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8.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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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부품 재질, 내수용과 달라...업계 “지역 특성 따른 것일 뿐, 성능과 무관”

많은 사람이 ‘수출용 차와 내수용 차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어디가 다른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강판의 두께를 재고, 어떤 사람은 후드를 들어올려 엔진을 살핀다. 그러다가 결국 두손을 든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 물증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전에서 자동차 정비업소를 운영하는 정광업씨(35)는 대덕 연구단지가 가까워 ‘외국 물’을 먹었던 차를 고칠 일이 종종 있었다. “연구원들이 유학 시절 타던 국산 차를 들여와 고쳐 달라고 하는데, 부품을 수리하다 보면 재질에 차이가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겉모양은 똑같지만 내용물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그이 지적은 사실이다. 자동차용 머플러(소음기)를 생산하는 ㄷ금속의 예를 들어 보자.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 회사는 두 가지 머플러를 생산한다. 하나는 스테인리스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알루마이트(철강에 알루미늄을 입힌 것)로 만든다. 스테인리스 제품이 좋은 것은 부식이 잘 안되기 때문, 게다가 품질 보증 기간도 알루마이트 제품보다 1년이 긴 3년이다. 그러나 단가가 알루마이트 제품의 3배나 된다.

  이들 두 제품의 운명은 완성차 업체에 가서 완전히 달라진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머플러는 수출용 차량에, 알루마이트 제품은 내수용 차량에 장착된다. 머플러가 하는 일은 배기 가스를 줄이고, 소음과 진동을 완화하는 일, 독성이 강한 배기가스와 접촉하므로 부식을 피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알루마니트 제품을 쓰는 내수용 차량은 홀대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완성차 업계도 할 말은 있다. 한국은 눈이 올 때 미국이나 유럽처럼 염화칼슘을 그다지 많이 뿌리지 않는다. 그만큼 머플러가 부식될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 유럽 기준을 채용하는 ‘과잉 설계’를 할 필요가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스테인리스 제품은 비싸기 까지 하다. 그만큼 차량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과연 국내 소비자들이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까.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 완성차 업체의 시각이다.

아직까지 국내 시장에서는 미세한 품질 차이보다 미세한 가격 차이가 더 잘 먹힌다고 보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수출용과 내수용 차의 부품 재질과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머플러에만 국한한 것도 아니다. 신영중권자동차 업종 애널리스트인 조용준 연구원은 “엔진이나 강판 두께는 차이가 날 수 없다. 차이가 나는 것은 벨트 . 타이어 . 촉매 . 연료 배관 같은 것들이다. 차체 바닥과 도어의 안팎을 어떻게 처리 했느냐도 중요하다“ 하고 말했다.

  수출용 차와 내수용 차에 차이가 난다는 점은 업계 관계자들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내업체들이 소비자를 깔보기 때문이 아니라 각국이 요구하는 품질 인증 기준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된 것이라고 해명한다.

수출용, 인증 기준 . 리콜제도등 고려
  예컨대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도도 공해 물질감소와 안전성 확보에 관심이 많다. 그만큼 품질인증 조건도 까다롭다. 범퍼는 시속 60미일 (100km)속도로 주행하다가 충돌 했을 때에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하고, 충돌 후 차가 뒤집혔을 때 기름이 새지 않아야 한다.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시트도 불에 타서는 안되고, 엄격한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다 충족 시킨 수출용 차는 당연히 안전성과 배기 가스감소 측면에서 앞설 수밖에 없다. 유럽이나 중동으로 가는 차는 또 다르다. 유럽은 흐린 날이 많기 때문에 헤드램프의 빛이 밝아야 하고, 좌우 앞쪽에 방향 지시등을 달아야 한다. 날씨가 더운 나라에서는 라디에이터의 바람을 손실 없이 엔진으로 전달하는 장치가 필요하고, 사막 지역에서는 미세한 모래가 기계 장치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차의 성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인증 기준 외에도 변수가 많다. 가장 무서운 것이 리콜 제도이다. 부품에 문제가 있으면 판매한 차량을 전부 고쳐주거나 교환해 주어야한다. 국내 업체들은 현재 수출에서큰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리콜까지 당한다면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국내 업체는 외국에 제대로 된 에프터서비스(A/S)망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웬만한 부품은 현지에서 즉시 교환해 쓸 수 있도록 범용 제품을쓰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마지막으로 수입상의 요구에 따라 차의 부품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컨대 벨트와 타이어를 어느 회사 제품으로 부착해 달라는 식이다. 이것은 수입 업자가 한국산 제품보다 국제적으로 이름있는 제품이 자국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쉽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올 수 있는 요구이다.

  수출용 차와 내수용 차를 비교하는 것은 피해의식의 발로인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 이 같은 비교는 얼마 못가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머지않아 포드나 GM이 국내에 들어오고, 내년 9월에는 일본차까지 가세한다. 그렇다고 국내 업체가 애국심에 호소할 수도 없다. 오로지 품질 . 가격 . 서비스로 싸워야 한다. 여기서 패하면 안방까지 내주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용 차오 내수용차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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