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1년에 13조원‘꿀꺽’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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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사회연구원,‘한국인의 술 비용’최초 계산… 음주 전후 생산성 25%차이

 “꽃은 반만 핀 것이 좋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 마시면 이 가운데 무한한 가취(佳趣)가 있다.”(<채근담>)

 마이크피기스 감독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는 알코올 중독자의 말로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인 벤(니컬러스 케이지 )은 술로 가족과 친구, 직장마저 잃게 되자 나머지 생을 확실하게 술로 마감하기 위해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로 간다. 여기서 벤은 창녀 세라(엘리자베스 슈)를 만나 마지막 사랑을 불태운다.

 그 영화가 바다 건너 픽션일까? 한국인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술을 많이 먹는 민족이며, 게다가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다. 술이 빚어내는 웃지못할 풍경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사발주를 마시다가 신입생이 죽었고, 음주 단속에 걸린 것을 비관해 자살한 사람이 잇는가 하면,‘술상무’라는 너무나 한국적인 직책을 가진 직장인의 사망이 산업재해라는 이색 판결이 부산고법에서 나왔다.

 주류회사들은 97년에 술을 3백16만9천1백65 시장에 내놓았다. 96년에 비해 조금 줄었지만, 술 소비량은 여전히 세계 상위이다. 통계청의 사회 지표 조사에 따르면, 95년 현재 20세 이상 인구의 63.1%(남자83.0%, 여자44.6%)가 한달에 한번 넘게 술을 마신 경험이 있다. 남자의 12.1%, 여자의 1.9는 매일 술을 마신다.

의료비 총액 9천억원 넘어
 알코올이 일으키는 부작용은 알코올 남용이나 의존증과 같은 중독 증상에 그치지 않는다. 김광기 교수(인제대 · 보건관리학)는“흔히 알코올 문제하면 이미 병이 된 알코올 중독만을 떠올리지만, 알코올이 일으키는 부정적 결과들을 감안할 때 음주통제의 초점을 음주 관련 문제로 넓혀서 보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중독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알코올은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술 때문에 우리 사회가 치르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음주의 경제사회적 비용’이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술을 먹음으로써 치르게 되는 다양한 손실과 피해를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95년 기준으로 우리 사회가 술로 인해 치른 총비용이 무려 13조6천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국내 처음으로 이루어진 술 비용 계산법을 살펴보자. 우선 술은 병원을 찾아가게 만든다. 알코올은 담배와 함께 인간의 몸에 각종 질병을 직 · 간접으로 일으키는 최대 유발 인자로 꼽히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소화기계 · 심혈관계 · 호흡기계 질환, 태아성 알코올 증, 정신 및 행동 장애같은 질병을 일으키며 특히 간에는 치명적 손상을 입힌다. 이 연구원은 의학계에서 술로 말미암는 8대 질환의 의료보험 진료비인 2천5백98억원(95년기준)을 술 때문에 치르는 의료비로 보았다. 그런데 이 돈은 의료보험조합이 내는 돈이므로, 본인인 부담하는 진료비를 덧붙여야 한다. 의료보험 진료비의 28.6%가 본인이 내는 돈이므로, 술에서 말미암는 병을 고치려고 쓴 의료비 총액은 3천6백44억원으로 계산된다.

 노동자가 마신 술은 산업 재해도 부른다. 국내외 각종 연구에서 산재보험 지급액의 대략20%정도 고도한 음주에서 말미암는다고 밝혀졌다. 따라서 산재보험 요양 급여약 2천9백94억원 가운데 5백59억원 가량이 술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이다. 술을 마신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는 돈도 만만치 않다. 보험개발원 자료를 이용해 추계한 결과, 음주 교통사고에 의한 의료비는 자동차 보험이 2백62억원, 사고를 낸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2백85억원으로 추산되었다. 음주 교통사고는 모두 5백47억원을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빼앗가 간 셈이다.

 음주 대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입원하거나 병원을 찾아갈 때 간병인 비용, 교통비, 대기 시간 같은 간접의료비용이 꽤 드는 것이다. 보건사회 연구원은 직접 의료비의 38.1%가 간접의료비라고 보고, 질병 및 사고에 따른 간접 의료비를 1천8백41억원(직접의료비 4천8백32억원)으로 계산했다.

 간접비용에는 술 마신 사람이 숙취를 예방하거나 숙취로 인한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약이나‘컨디션’같은 음료를 사기 위해 쓴 돈도 포함된다. 20세이상 인구의 음주율과 음주 빈도를 통해 1년 동안 술 마신날을 1억2천2백87만8천일로 계산할 때 여기에 드는 보조비용은 2천4백57억원에 이른다. 드링크제와 두통약 · 간장약 값이 1천5백~3천원이고, 컨디션 같은 음료값이 2천원인 것을 감안해, 하루2천원이 든다고 가정한 것이다. 따라서 병원 이용에 따른 직 · 간접 의료비 총액은 9천1백30억원에 달한다.

술로 인한‘사망손실액’3조원
 술은 생산성마저 갉아 먹는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 한 사람이 음주하기 전과 후에 나타난 생산성 차이는 평균25%안팎이다. 술은 이만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질병이나 사고로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서 생긴 손실액은 4천8백62억원이나 된다. 또 폭음은 결근과 지각을 밥 먹듯 하게하고, 업무를 태만히 하게 한다. 이로 인한 생산 손실액은 무려 5조1천4백47억원이나 된다. 이를 모두 합하면 질병 · 사고 및 음주 · 숙취로 안한 생산손실액은 5조6천3백9억원에 이른다.

 과도한 음주는 사람을 제 명대로 살지 못하게 하므로 이에 따른 생산 인력 손실도 사회적 비용을 보아야 한다. 경제 활동 기간의 소득 흐름을 현재 가치고 환산하는 인간자본접근법을 통해 조기 사망으로 인한 피해액을 추정한 결과 질병에 의한 것이 1조6천6백86억원, 사고로 인한 손실액이 1조1천3백64억원이나 된다. 사고로 인한 손실액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자살(3천2백억원)이었고, 교통사고(2천8백억원), 익사(2천억원)순으로 나타난 사실도 눈길을 끈다. 이로써 애주가가 빨리 사망한 데 따른 생산 손실액은 2조8천50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가운데 남자는 91.5%에 해당하는 2조5천6백80억원어치 손실을 사회에 끼친 것으로 집계되었다. 조기 사망으로 인한 손실액에 장례비용 1천6백29억원을 넣는다면 총 비용은 2조9천6백77억원에 달한다.

 음주는 당연히 재산피해도 가져온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재산 피해액을 자동차 사고와 화재사고에 국한해 보았는데도 4백67억원에 이른다. 또 술은 각종 행정 비용도 쓰게 만든다. 의료보험 처리에 드는 비용과 음주 운전 사고를 일으켰을 때 경찰과 보험사가 쓴 행정비용만을 따져도 88억원이다. 마지막 항목은 음주자가 술을 사는 데 쓴 비용, 즉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95년 술 시장 규모가 5조9천억원이었고 여기서 국내 생산 및 수입 주류의 주세(1조8백40억원)를 빼면 주당들은 4조5백59억원을 술에 바친 셈이다. 따라서 알코올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총 13조6천2백30억원으로, 95년 국내 총생산(GNP)의 3.9%에 달했다. 술은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을 치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3조6천억원도 술 비용의 전부가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철 선임 연구위원은“기초 통계를 구할 수 있는 항목에 한해 추계했기 때문에 이번 연구의 음주비용은 상당히 낮게 잡혔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가령 이번 연구에서는 음주로 인한 병원응급실을 찾는 환자, 알코올중독자 처지비용, 술로 인한 약물 복용, 음주운전 단속 비용, 유족연금 및 장애연금, 음주관련교도소 재소자 교정비용, 알코올 교육 및 연구비용같이 계량화가 가능한 항목조차 실태조사 자료가 없어 빠졌다.

 돈으로 환산하기가 매우 어려운 비용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가령 가정을 파괴하려고 폭행 · 강간 · 살인 등 범죄를 일으키는 술의 파괴력을 계량화할 수 있다면 엄청날 것이다.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의 절반이상이 음주상태였으며, 알코올 중독을‘이혼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알코올은 가정파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가 가정 등 알코올과 직 · 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치르고 있는 정신적 비용 또한 막대할 것이다. 이밖에 술이 인간의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킴으로써 타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들이 잘못될 가능성까지 감안한다면, 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올 들어 IMF 한파로 술 소비가 줄고 잇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술 비용도 낮출 것이기 때문이다.                         
張榮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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