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 정리 ·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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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전 경제수석/“금융개혁법 통과 안돼 위기 심화… 의원들의 경제 청문회는 난센스”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강경식 전경제 부총리와 함께 언론으로부터 IMF사태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이 같은 비판에 초연하다. 그리고 많은 경제전문가가 외환위기는 경제구조의 위기이고, 김씨가 재임기간에 외환위기를 수습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한다. <시사저널>은 최근 김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고백형식으로 싣는다.

 나는 이른바‘IMF’를 초래한 외환 위기의 본질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라고 본다. 국제통화기금도 이 같은 인식에 동의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이 지난해 12월3일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전제 조건으로 초긴축 재정 · 저성장 · 금융개혁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만약 외환위기가 외환 관리를 잘못해 발생한 것이라면, 국제통화기금이 그 같은 요구를 할 리가 없었을 테고, 정부도 이것을 수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한국의 경제 구조는 외환 위기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해마다 경상 수지 적자가 2백억 달러를 웃돌고 단기 외채마저 급증해 왔기 때문에 언제 외환 위기가 갑작스럽게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있었다. 산업 구조를 경쟁력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조정하고, 기업들의 무분별한 금융 차입을 규제함으로써 경상 수지 적자를 서서히 줄이면서 외채를 갚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같은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이닥친 외환 위기로 인해 국가 부도상황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11월21일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고,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외환 위기가 경제구조가 잘못된 데서 말미암았다고 판단해 앞서의 요구들을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이는 구제통화기금이라는 명의가 한국이라는 환자에 대한 진단을 끝내고 약까지 지어주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김대중 정부는 경제청문회를 열어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들을 가려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는 환자가 의사의 처방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기 스스로 다시 진단해 새로운 처방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외환 위기가 몇몇 정책 결정자들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제 구조에서 말미암았다는 국제통화기금의 결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경제 청문회가 지난해 외환위기가 심해질 때 왜 빨리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유을 신청하지 않았는가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 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책 결정자의 처지에서 보면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더라도 곧장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어떻게든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위기를 수습할 정책들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

 물론 백억 달러 규모로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과 같은 정책으로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면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7일부터 당시 강경식 부총리와 내가 구제 금융을 받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11월14일 그 같은 방침을 최종결정한 것은 위기를 수습하려던 정책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11월16일 당시 강부총리가 콸라룸푸르에 있던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를 초청한 것도 구제금융신청 조건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IMF 자극한 임창렬씨 책임크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때만 해도 한국 정부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다가 국제통화기금이 11월21일 구제금융을 신청한 한국에 가혹한 지원조건을 강요하는 등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도니 것은 강부총리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가 강부총리와 캉드쉬 총재 간에 약속한 11월19일 구제금융 신청 발표를 지키지 않아 국제통화기금의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책 결정자는 그날 경제 부총리로 임명된 임창렬씨이다.

 또한 경제청문회가 당시 강부총리와 내가 왜 구조조정 정책들을 펴지 않았느냐면서 책임을 묻겠다고 해도 이는 난센스이다. 우리는 훨씬 전부터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하는 정책들을 펴려고 최선을 다했다. 실제로 우리는 상호지급보증 금지, 결합 재무제표 작성, 금융 개혁 등을 법안으로 입안했었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인들은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데 가장 중요했던 금융개혁법안을 11월18일 구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들이 경제청문회를 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리 · 李敎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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