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토크 쇼 진행한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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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진짜 사람 같은’캐릭터 개발 중… 컴퓨터 용량과 처리 속도가 관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텔레비전 토크쇼를 진행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머지않아 현실 세계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가파른 속도로 발전하는 가상 탤런트 제작 기술 덕분이다.

 사이버 아이돌 · 버추얼 모델 · 사이버 캐릭터 등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가상 탤런트는 우리에게 이미 낯익은 존재이다.‘인격을 갖추고 태어난 세계 최초의 사이버 아이돌’다테교코가 일본 청소년을 열광시킨 지 1년여 만에 한국에서도 아담과 류시아라는 남녀 사이버 가수가 잇달아 등장했다. 아담과 류시아는 첫 음반을 내기가 무섭게 광고모델 · 비디오자키 · 영화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엄밀히 말해 아직‘반쪽 연예인’이다. 이들은 생방송에 출연할 수도, 팬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라디오에서라면 성우가 대신 목소리를 내줄 수는 있다). 말하거나 노래할 내용에 맞추어 미리 입 모양 · 몸놀림을 오나벽하게 제작해 놓지 않는 한, 자유롭게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이들의 한계이다. 일본의 다테교코 또한 예외가 아니다.

 최근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KBS기술 연구소는 1년 전부터 가상 탤런트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가상 탤런트의 표정과 몸짓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되, 실시간(real-time)으로 말하고 움직이게 한다는 목표가 그것이다.

 두 가지 모두 이루기 쉬운 목표는 아니다. 지난 1월 한국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이 탄생했을 때 일반인들의 반응은‘신기하되 사람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전문가들은 머리카락 · 눈썹 · 눈동자 움직임 등 아담의 세부적인 모습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표현이 섬세할수록 데이터 용량이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것이 가상 탤런트를 제작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다. 섬세한 얼굴과 달리 아담의 몸놀림이 밋밋한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숨어 있다. 반대로 다테교코는  화려한 춤사위 대신 섬세한 얼굴 표현을 희생해 데이터 용량을 줄였다(이 때문에 교코는 커트 머리를 하고 있다).

가상탤런트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가상 탤런트가 실시간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것도 이 같은 컴퓨터용량과 처리속도의 한계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시간으로 움직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모션 캡처’같은 장비가 날로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션 캡처란 실제 사람의 얼굴과 몸에 센서를 붙인 다음,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컴퓨터가 이를 읽어 가상 탤런트에 적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이를 이용해 토크쇼를 진행하는 가상 탤런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Canal+ 방송사의 벅스 버니, 영국 채널4 방송사의 버트가 그들이다. 단 이들은 토끼(벅스 버니), 앵무새(버트)처럼 동물의 외관을 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유는 한 가지. 한번 웃는 표정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 근육 수백 개를 움직여야 하는 인간과 달리 동물은 입과  눈동자 따위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다시 말해 적은 데이터로도 이를 충분히 표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래머 여배우 클레오나 악동 브로즈처럼 유럽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인간 캐릭터가 지극히 과장된 외모로 꾸며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KBS 기술연구소는 오는 연말까지‘진자 사람 같은 ’캐릭터를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KBS 기술 연구소 이범구 차장은, 센서로 읽어 들일 얼굴과 몸의 기준점을 최소로 줄여 데이터 용량을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일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 기준점을 최소화하되 표현은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름은 물론이다.

 이미 가상 탤런트를 시장에 내놓은 업체 또한 실시간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아담을 탄생시킨 (주)아담소프트 박종만 사장은 올해 안에 아담의 입놀림(립싱크)을 자동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대화할 내용을 키보드로 입력함과 동시에 아담이 이를 발음하게 한다는 것이 박사장의 구상이다. 이를 위해 아담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합성하는 작업이 선행된다(현재는 성우가 아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아가 박사장은 아담에게 인공지능을 부여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실험이 성공하면 가상 탤런트 역사에 도 한 획이 그어지는 셈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아담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입학도, 단순한 홍보 효과보다는 이 같은 기술을 산학 공동으로 연구하기 위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박사장의 설명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아담이 출현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가고 있다. 시스템공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최근 자체 개발한 대화형 시스템을 아담에 적용시켜 보자고 제안해 왔다. 이를 이용하면 아담은 사람의 손과 머리를 빌리지 않고도 혼자 힘으로 팬과 대화할 수 있다.

 물론 가상 탤런트가 등장한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가상 탤런트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54쪽 상자 기사참조).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이들을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치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3차원 컴퓨터 그래픽 · 가상현실 · 인공지능 등 첨단 연구의 집적체이자, 이러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사이버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金恩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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