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적은 자민련? 자민련 적은 국민회의?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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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선거 양당 후보들, 사생 결단의 진흙탕 싸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내분 양상이 심상치 않다. DJP연대 이후 지금까지 양측이 신경전을 벌인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6·4지방 선거 후보자 공천과 선거 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은 강도가 좀 다르다. 양당은 주적(主敵)이 야당이라는 것도 잊은 채 서로 치고받고 있다. 감정에 날이 선 것이 마치 헤어지기 직전인 부부 같다.

 5월23일 자민련의 대전 연설회장에서 국민회의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김용환 부총재는 국민회의가 자민련 텃밭인 대전과 충·남북에서 기초단체장 후보를 22명이나 낸 것은 정치 도의에 어긋난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용납할 수 없는 배신 행위’(한영수 부총재) ‘남의 어장에 투망 던지는 도둑질’ (이원범 의원) 등등 격앙된 성토가 뒤따랐다.

 같은 시각, 국민회의 충주지구당에서 자민련과의 공조 체제가 깨졌다는 국민회의측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민회의는 자민련이 내세운 이원종 충북도지사 후보에 대해서도 국민회의가 조직적으로 지원할 수 없음을 천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18일 이용희 충북도지부장은 국민회의 청주 시장·청원군수 후보 추대 대회에서 ‘국민회의는 여당 본당, 자민련은 여당 들러리당’ 이라는 자극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자민련 발끈하고 나섰음을 물론이다.

경기 · 강원 · 충북 · 전북에서 파열음 요란
 지방 선거를 둘러싼 양당간 파열음은 특히 지역 색이 상대적으로 약한 경기·강원·충북·전북 지역에서 요란하게 터져나오고 있다. 이 지역에서 양측이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버티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기적으로 코앞에 닥친 정계 개편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취약지에 더 많은 거점을 확보해 놓겠다는 목적에서다. 특히 정국 주도권 장악 여부가 6·4지방 선거 직후로 예상되는 정계 개편에 달려 있다고 보는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회의는 이번 지방 선거 결과가 정원의 운명과 지결된다고 판단한다.

 김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는 강원도지사 공천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DJP 공동 정권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것 같았던 강원도지사 공천 갈등은 막판에 김대통령이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에게 ‘양보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기대통령은 그 직전까지도 강원도지사 자리에 미련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마지막 담판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에도 김중권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국민회의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더 큼을 설명토록 했다. 국민회의 한 관계자 역시 “조대행이 청와대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DJ의 생각이 ‘GO'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라고 말해 김대통령의 양보가 벼랑 끝에서 마지못해 이루어졌음을 암시했다.

DJ측과 5공 핵심 사이에 ‘비선’ 가동
 DJ와 JP의 강원도 쟁탈전은 여러 차례 언론에 꼴사나운 진흙탕 싸움으로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이 끝까지 양보 결정을 미룬 것은 그만큼 강원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야가 전국을 서와 동으로 반분한 상황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동쪽에 교두보를 구축하지 못한 국민회의로서는 DJ와 국민회의 지지도가 최고조에 이른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만에 하나 자민련이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확실히 자민련에 지우겠다는 DJ측의 원려가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DJ측은 협상 과정에서 자민련에 강원도지사와 경남도지사를 맞바꾸자고 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DJ측이 제시한 카드는 허문도 전 의원을 경남도지사 선거에 자민련 후보로 연합 공천하자는 것. DJ의 한 핵심 측근은 “허씨와는 일찌감치 조율을 끝냈으나 자민련이 거부해 물거품이 되었다”라며 아쉬워했다. 허씨는 현재 무소속으로 경남도 지사 선거에 나섰다. 비록 연합 공천이 무산되기는 했으나 DJ측과 5공 핵심 사이에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국민회의는 그동안 불거졌던 양당간 갈등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눈치다. 정치적 협상을 하다보면 충돌도 하게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자연스레 치유되는 것 아니냐는 식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마찰이 지역주의를 해소해 가는 필연적 과정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감정의 골이다. 상층부야 ‘정치적’ 이해와 양보로 갈등을 봉합할지 모르지만, 지구당 조직으로 내려갈수록 ‘더이상 같이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후보가 이런 식으로 사생 결단하다가는 엉뚱하게 야당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가능성도 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한나라당은 양당 공조의 틈새를 벌리기 위한 ‘여여 갈등 부추기기’에 열심이다. 김 철 대변인은 5월24일자 논평에서 “자민련이 호남 정권의 충청지사와 영남출장소 정도로 전락했다. 자민련과 자민련 지지자들은 공동 정권의 환상에 깨어나 결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자민련의 이탈을 유도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국민회의와 자민련 지도부는 5월25일 보름 넘게 중단했던 8인 협의회를 재가동하는 등 공조 추스르기에 나섰다. 자칫 잘못하다간 소탐 대실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양측의 손익 계산법이 다른데다, 틈새가 많이 벌어져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른다.
李叔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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