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품어 영해 낳는 섬나라 일본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8.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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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암초섬 발굴 · 본존 힘써

일본은 바다를 넓히고 바다를 연구하는 데도 한국을 한참 앞지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을 일으킬 만큼 팽창 의식이 강했던 일본은 일찍이 임자 없는 섬을 찾고 보존하는 데 열심이었다. 도쿄에서 남방으로 2천4백㎞ 떨어진 곳에 있는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는 센가쿠시마(중국이름 釣魚島)보다 더 아래에 있는 일본 최남단 섬이다.

 오키노토리시마는 바다 속에서 산호가 동서 5㎞, 남북 1.8㎞크기로 자라 생긴 암초덩어리이다. 그런데 이 중 지름 2m짜리 바위가 치솟아, 밀물 때에도 물 바깥으로 70㎝ 정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덕분에 이 암초는 유엔 해양 법상 암초가 아닌 암석의 지위를 얻어, 일본은 이 일대에서 제주도만한 크기의 바다를 영해로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해양 분할이 본격화하던 80년대 말 일본은 오키노토리시마가 파도에 부서져 다시 물에 잠길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대대적인 보수 작업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물 위로 치솟은 바위 주변에 9천9백여 개의 콘크리트 블록을 투하해 반지름 25m 높이 3m인 담벼락을 둘러쳤다. 이로 인해 수면 위로 치솟은 바위는 원형의 콘크리트 풀장에 갇혀 태평양의 거센 파도로부터 영원히 격리되었다. 이러한 인공 구조물을 설치한 후로는 밀물의 영향도 받지 않아 이 섬은 해면 위 3m를 유지하게 되었다.

 90년대 초 이 구조물이 완성되었을 때 일본 언론은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독도 문제로 한·일 간에 분쟁이 일어나자 오키노토리시마에 대한 보도는 자취를 감추었다. 일본이 오키노토리시마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즐거워하면 할수록, 주변국들이 이섬의 법적 지위와 영유권에 시비를 걸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이 시기 한국은 자꾸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국제 사회에 독도가 영유권 다툼이 있는 곳인 양 ‘선전’해 준 셈이 되고 말았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이 섬을 처음 발견한 것은 17세기 스페인 함대이다. 그러나 23년 일본 해군이 이 섬 주변을 측량하고, 31년 일본령으로 선포해 오가사와라(小笠原) 현에 편입시켰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함으로써 이 섬은 오키나와 등과 함께 미국령에 편입되었으나, 지속적인 반환 운동을 펼쳐 68년 미국으로부터 오키나와와 함께 돌려받았다.

 역시 오가사와라 현에 속하는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는 일본의 최동단 이자 태평양 한가운데로 가장 많이 진출한 섬이다. 이 섬에서부터 일본 최서단 첸카쿠시마까지 무려 3천1백44㎞에 이른다. 이 섬은 면적이 2㎢, 섬 주위 길이가 5㎞, 평균 고도 5~6m에 이르기 때문에 사람이 살수가 있다. 96년 미즈타니 신로쿠(水?新六)라는 사람이 이 섬을 발견한 이후 일본은 어부들을 이주시키며 영토에 편입시켰다. 2차 세계대전 후 역시 미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68년 돌려받았다. 현재 일본은 자위대원과 기상청 요원 들을 이 섬에 상주시키고 있다. 섬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바다를 넓힘으로써 영토를 확장해가는 일본처럼, 한국도 실속 있게 바다를 향해 뻗어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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