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지방은행 생명줄은 ‘애향심’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8.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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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은행, 천억원 유상 증자 성공

금융계에 빅뱅 태풍이 불어닥쳐 지방 은행 4개가 문을 닫았지만 광주은행(은행장 박영수)은 피나는 자구 노력으로 천억원 유상 증자에 성공했다 더구나 시가 9백~1천7백원을 오르내리던 주식을 3배 가까이 비싼 액면가 5천원에 팔았는데도 목표를 초과 달성해 금융기관 사상 유례 없는 기록을 남겼다.

광주은행은 4월22일 회사를 살리기 위한 비상 수단으로 노ㆍ사 공동으로 천억원 유상 증자를 결의했다. 아시아 자동차, 한라중공업, 화니ㆍ가든 백화점, 라인 그룹 등 지역 연고 기업의 연쇄 부도로 인해 부실 채권이 증가하고 주식 시장마저 침체해 금융권 구조 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생존을 위해 천억 유상 증자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

우선 임직원 1천7백여 명이 3백억원을 소화하는 ‘자사주 갖기 운동’을 펼쳐 한 사람이 적게는 천만원에서 많게는 7천만원어치 주식을 매입했다. 이와 함께 모든 임직원이 광주ㆍ전남 지역민의 애향심에 호소하는 광주은행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유상 증자가 성공하면 시ㆍ도민 성원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천억원 전액을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지역 중소기업과 지역민에게 특별 자금으로 지원하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2천여 기업체, 시민ㆍ학생 2만명 공모주 청약 참여
경제적 희생을 감수한 광주은행 임직원의 ‘은행 살리기 운동’은 광주ㆍ목포ㆍ여수ㆍ순천ㆍ광양 상공회의소 등 지역 상공인이 주축이 된 ‘도민 은행주 갖기 운동’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금호ㆍ교보생명ㆍ동원그룹 등 대주주를 비롯해 대우그룹, 광주시장, 전남도지사, 광주ㆍ전남 지역 대학 총장과 총학생회도 참여했다. 전남 광양읍 광양시장의 한 야채 상인은 자발적으로 4백주를 청약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 6월17~18일 실권주 일반 공모 청약 실적은 무려 1천1억3천여만원에 이르렀다.

이번 공모주 청약에는 2천여 RDJQCP와 지역민 2만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은행 주식 50주를 매입한 전남대 철학과 안진오 명예교수는 “지역 기업들의 연이은 부도로 큰어려움에 빠진 지역 은행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유상 증자는 광주은행 임직원이 30%, 광주ㆍ전남 지역민과 지역 기업체가 50%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민 참여가 높았다. 광주은행 노조위원장 이형석씨(38)는 “IMF가 노조원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한때 주가가 8백80원까지 내려갔다. 노조원 모두가 은행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공감해 노조가 먼저 앞장섰고 지역만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천억원 증자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말했다.

광주은행 노조에 따르면, 현재 광주은행 임직원은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포함해 14%를 소유하고 있다. 사실상 임직원이 대주주가 되어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69년 자본금 1억5천만원으로 출발한 광주은행은 이번 유상 증자를 성공시켜 30년 만에 자본금을 2천8백억원으로 늘렸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 자본 비율도 10.65%에서 14%대로 높였다 국내 시중 은행의 평균 BIS 자기 자본 비율이 6.6%, 지방 은행 평균이 9.6%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다. 그 덕분에 광주은행은 구조 조정 태풍에서 벗어날 힘을 갖추었다. 박영수 광주은행장은 “우리는 자체 기술로 밀레니엄 버그를 해결할 만큼 탄탄한 전산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역 경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부심으로 지역성을 확보해 가겠다”라고 밝혔다.

은행간 합병을 유도하고 있는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원장은 “광주은행처럼 증자를 통해 자산 건전성을 높인 은행들은 살아 남을 것이다. 부실 은행들은 광주은행을 본받아라”고 말했다. 임직원이 앞장선 은행 살리기 운동은 현재 충청ㆍ대구 은행 등 다른 지방 은행으로 확산되고 있다. 광주ㆍ전남 지역민들은 광주은행 증자를 성공시킨 데 이어 퇴출 기업으로 판정된 해태 타이거즈 구단을 회생시키기 위해 주식을 공모해 시ㆍ도민 구단 만들기 운동까지 벌일 태세이다.
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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