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라고?
  • 도정일(경희대 영문과 교수. 문학 평론가) ()
  • 승인 1998.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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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평

정부 관리들과 인사들이 입에서‘이제는 문화가 중요하다’거나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사이의 일이다. 문화의‘문’자도 잘 들먹이지 않던 사람들이‘문화’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스런 인식변화 같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갑자기 문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나서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문화가 고부가가치 산업영역이라는 사실이‘마침내’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닌텐도(印天堂)같은 문화산업체가 불과 수백인원으로 수천 종업원이 매달린 굴지의 제조업체들보다 높은 수익을 올린다든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쥐라기 공원>한 편이 자동차 몇 만대를 수출한 것보다 높은 부가가치 산출 효과를 낸다는 얘기가 그들에게는 대단한‘정보’로 가 닿았음에 틀림없다.

‘문화=돈벌이’인식은 큰 문제
 문화의 중요성을 겨우 문화산업의 대두나 문화 시장의 떠오름과 관계지어서만 파악하는 수준의 인식은, 정작 뿔이 나야 할 곳은 제쳐두고 엉덩이에서부터 먼저 뿔내는 못난 소처럼 추악하고 경멸한 만한 것이다. 그 인식법에 따르면, 돈벌이가 되느냐 안되느냐가 문화의 중요성을 경정한다. 돈이 되면 중요하고 돈 안되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문화가 아니다. 돈이 되건 안되건 관계없이 중요한 것이 문화이고,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문화정책’이다.

 새로 출번한 김대중 정권의 초기 행보를 보면, 이 정권도 문화에 대한 인식내용이 빈곤할 뿐 아니라 구정권 정책 집단들의 인식 수준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문화체육부가 어째서 문화부 아닌 문화관광부로 개편되었는지 그 내막은 잘 모르지만, 그것이 어떤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면 문화영역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근시안적이다. 문화 정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의 내용도 무슨 정책적인 심사숙고를 담은 것이기보다는 즉흥적 도상 연습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취임사에 담긴 김대통령 자신의 문화에 관한 정책 암시이다. ‘문화산업은 21세기의 기간산업’이고‘관광산업 · 회의체산업 · 영상산업 · 문화적 특산품 등 무한한 시장이 기다리고 있는 부의 부고’라는 취임사 대목은 대통령의 문화관이 어떤 수준이며 내용인지 짐작하게 한다.

 취임사라는 것이 반드시 대통령의 생각을 모든 경우에 충분히 드러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눈살부터 찌푸리게 하는 것은 이를테면‘문화산업은 21세기의 기간산업’이라는 식의 표현이 취임사에 허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산업을 비롯한 여타 문화산업 영역들을 일일이 거명하고‘무한한 시장이 기다리는 부의 보고’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문화 산업의 산업적 중요성을 아는 것은 이 시대 대통령의 자랑이 아니며, 마치‘그 정도는 나도 안다’라고 말하려는 듯이 취임사에서 드러내는 것은 더더구나 대통령의 영광을 높이는 일도, 품위있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역대 정권의 경우나 진배없이,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문화정책적 과제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문화관광부 탄생은 단순한 타협의 결과가 아닐지 모른다.

 문화산업 영역이 산업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산업 이상으로 중요한 문화 정책적 과제들이 있다. 그 과제들은 이번 취임사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민족 문화의 세계화’같은 표현도 사실상 허사 이상의 것이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도 민족 문화의 세계화 방안과‘관광산업’이 연결된 끝에‘문화관광부’가 탄생한 것이라면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문화 자원 자체가 황폐화하고 있는 마당에 관광산업이 어떻게 가능하며, 창조성과 상상력이 마비된 사회에서 어떤 문화산업이 가능한가? 문화를 위한 기초투자도 없고, 지역 도서관들은 책 살 돈이 없어 저자들에게‘한 권 보내줍쇼’라고 구걸하고 있는 판에 문화산업이라? 문화산업이란 것이 돈벌이여서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돈벌이이기 때문에 동시에 사회적 · 정치적 문제 영역이라고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그런 문제에 대책도 없이 문화산업을 말하는 것이 무슨 자랑이겠는가. 만들 돈도 없지만, 돈이 있어도 <쥐라기 공원>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화산업적 접근법이어야 할 마당에, 그런 영화를 모델로 삼아‘우리도’라고 나선다면 그것이 무슨 문화정책이겠는가.

 새 정권은 늦기 전에‘문화의 세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문화가 어째서‘부의 부고’인지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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