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정책의 역기능/IMF는 고금리 덫 풀어라
  • 박상기<시사저널> 편집장 ()
  • 승인 199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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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국제통화기금(OMF)의 긴급 지원을 받은지 넉달이 흘렀다. 지난해 초겨울 이 기금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한국 경제는 파산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정설이다. 절박한 순간에 국가부도 사태를 막고, 조금씩이나마 기사회생할 프로그램을 진척시킬 기력을 회복하는 데 국제통화기금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바닥났던 외환보유고도 지금은 국제통화기금의 전망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나아지고 있고, 외채 상환 만기 연장도 숨 돌릴 만해졌다.

 경제지표를 보더라도 환란 초기에 1달러당 2천원대까지 급등했던 환율이 지금은 1천3백원대로 떨어졌고, 종합주가지수 300대로 폭락했던 주식값도 500선을 회복했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실낱같은 회생의 징후나마 얻게 된 데는 노 · 사 · 정대타협을 이룬 국민화합,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 추진등이 우호적인 평가를 받는 탓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 회복에 뒷심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의 협조가 큰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제 외환위기 진압의 초동 작전을 비교적 발 빠르게 수행한 시점에서 김대중 정부와 국제통화기금이 함께 생각해야 할 점은 실물경제의 활력회복이다. 특히 기업의 연쇄도산과 투자심리 위축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고금리 정책에 대한 재고가 시급하다.

 고금리 정책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데 도움이 되고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등 순기능적 요소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실세금리 18%의 고금리 정책을 고수할 경우 살아남을 기업이 없다는 것이 시중여론이다.

 가뜩이나 극도의 내수부진에 허덕이는 기업들로서는 치솟는 금융비용을 감내하면서 신규투자를 벌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기술 · 연구개발 투자만큼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동화, 에너지절약, 연구개발등 경영합리화 투자를 멈춘다면 현재의 우량 기업조차 2~3년 후에 국제경쟁력에서 크게 뒤떨어질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기업의 투자의욕이 꽁꽁 얼어붙어 실업확대와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생산과 고용기반이 야금야금 무너져 내리는 불황의 장기화 현상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금리15%선으로 낮추어 실물경제 활력 살려내야

 고금리정책은 외호나위기 초기에 외국 금융자본을 유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환란 진압에 일정부분 기여한 몫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율이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고 있는 진정 국면에서는 건전기업이 제대로 기업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금리를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에서 금리차액의 열매를 따먹던 해외자금은 대부분 투기성단기자금, 즉  핫머니이다. 현재의 금리를 15%이하 적정선으로 낮추더라도 이는 국제금리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기업과 금융기관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 투자 위험도를 줄인다면, 외국 자금이 한국에서 빠져나갈 위험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보아야한다. 이와 함께 기왕에 협의된 서방 선진 7개국의 공동차관 80억달러와 세계은행 차관 20억달러를 하루빨리 들여오도록 노력한다면, 또다시 급격한 외환부족으로 인해 빚어지는 환율급등과 같은 불안요인은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금리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실업자가 급증해 사회불안이 고조되는 마당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거액현금을 보유한 금융자산가는 고금리 덕분에 앉아서 떼돈을 버는 반편 영세상인과 기업들은 돈을 빌리기도 어렵지만, 어렵게 빌리더라도 이자에 눌려 허리가 휠 형편이다. 현재의 고금리 상태가 지속되면, 너도나도 기업을 팔고 상점을 팔아 치운 다음 이자나 따먹고 살자는 기생심리가 만연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기업이 기업의욕을 잃고 노동자가 노동의욕을 잃는 상태에서는 IMF졸업도 국난극복도 기대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은 지금 단계에서 한국의 경제위기극복을 돕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재고하고, 고금리 압박을 풀어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용단을 내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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