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상 ‘제 정신’ 아니다
  • 김은남 .최영재 기자 ()
  • 승인 1998.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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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같은 봄·여름 속 가을 ‘이변’ 속출…태풍의 공격 전무

엘니뇨로 인한 기상 이변 징후가 한반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올해 1월과 2월 평균 기온은 영하 3.4℃, 영하 1.1℃로, 평년 평균치보다 2℃와 4.5℃ 높았다.

 봄철에 접어들자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상 이변이 속출했다. 4~5월에 수은주가 30℃ 안팎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100㎜ 넘는 비가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한마디로 ‘여름 같은 봄’인 펼쳐진 것이다. 4~5월에 같은 달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한 관측소만 아홉 군데였다. 당시 기상청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발달을 직접적인 이유로 꼽았다. 이 시기 북태평양 고기압은 마치 여름 장마 때처름 한반도 남동쪽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6월 장마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역전했다. 예년 같으면 한반도 남단에 있던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한·만주 쪽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북단에 있던 오호츠크 해 고기압은 반대로 세력이 약해져 장마가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여름 들어 오히려 약화된 북태평양 고기압이 더 북상하지 못하고 동아시아 남쪽에 자리를 잡아 버린 것이다. 대신 한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차가운 오호츠크 해 고기압이 7월 중순부터 지속적으로 발달하면서 동해안 지방에 저온 현상을 가져왔다. 장마 중간중간 서울 지역에 ‘여름 속 가을’처럼 청명한 날씨가 나타났던 것도 오호츠크 해 고기압의 영향이었다.

 여름 들어 태풍은 한 차례도 한반도를 스쳐가지 않았다. 북태평양 전체를 통틀어 올해는 태풍이 가장 늦게 발생한 해이기도 했다. 올해 들어 대만 서쪽에서 제1호 태풍 니콜이 발달한 것은 7월9일~10일. 이는 태풍이 가장 늦게 발생한 과거의 기록(73년 7월2일)을 1주일이나 뒤로 늦춘 것이었다. 이같은 상황을 분석한 기상 전문가들은, 엘니뇨가 열대 태평양 지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기압계 형태를 크게 변화시켜 기상 이변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뒤틀린 기압계를 지나가면서 태풍도 이상 발달을 보였다. 8월3일 필리핀 해상에서 태어난 제2호 태풍 오토는 중국 화난(華南) 지방에 상륙할 때까지 열대성 저기압이었다가, 북상해 양쯔 강 유역에 머무르고 있던 저기압과 만나면서 온대성 저기압으로 변했다. 이로써 오토는 태풍으로서의 생명을 다한 셈이었다(태풍은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 열대성 저기압을 말한다).

 그러나 양쯔 강 유역의 수증기를 한껏 빨아들인 오토는 서해를 지나면서 해상 수증기를 공급받아 태풍 때 못지않게 강력한 비구름대를 부활했다. 장마가 끝난 뒤 다시 세력을 확장하려던 북태평양 고기압과 한반도 북서쪽에서 밀고 내려오던 한랭전선이 중부 지역에서 충돌한 것도 집중 호우를 위한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지난 8월5~8일 서울·경기 지방을 강타한 호우는 이같은 오토의 ‘혼령’이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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