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 무서워 전자오락 못할까
  • 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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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생활 속에 이미 자리잡아…유통구조 개선·교육용 게임 개발이 숙제



류켄 춘리 가일 브랑카 달심. 낮선 말이지만 어린이들 세계에서 이 이름을 모르면 아예 이야기 상대가 못된다. 이들은 얼마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전자오락게임 ‘스트리트파이터 Ⅱ??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들이 지닌 승룡권 파동권 선풍각 같은 ??必殺技??는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어 서로 장난을 칠 때에도 ??승룡권으로 혼내주겠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전자오락실용 오락기는 물론 가정용 비디오게임으로도 나와 어른은 모르는 재미의 세계로 어린이를 끌어들이는 이 게임에 최근 관심이 몰리고 있다. 집에서 비디오게임을 즐기던 어린이가 간질과 비슷한 발작을 일으키다 쓰러져 입원했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사는 여섯살 먹은 어린이는 지난 1월26일 집에서 이 게임을 하다 말고 "머리가 아프고 기억이 안난다"라고 울다가 쓰러졌다. 입과 눈에 경련을 일으키다 곧 눈동자가 돌아가고 팔이 오그라들며 정신을 잃었다. 이 어린이의 아버지는 가족 가운데 비슷한 증상의 병력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증상은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 가정용 게임을 즐기다 발작을 일으킨 어린이들의 증상과 일치한다.

가정용 비디오게임은 컴퓨터의 일부 기능을 특화시킨 오락기를 텔레비전과 연결해 전자오락을 즐기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로는 게임이 저장된 카세트형의 롬팩을 끼워 쓴다. 80년대 중반부터 나돌던 게임기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 국내 업체들이 대량으로 시판하면서 값도 많이 떨어져 급속히 보급됐다. 국민학생 또래가 있는 집은 어린이날이나 생일에 오락기를 사달라고 졸라대는 어린이에게 시달릴 정도였다.

닌텐도, 세계 시장 60% 석권

 현재 국내에 보급된 게임기는 2백50만대 정도. 하드웨어인 게임기와 소프트웨어인 롬팩을 합친 국내 시장은 작년 5백80억원, 올해는 6백4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금 판매되는 것은 삼성의 알라딘보이(8비트)와 슈퍼알라딘보이(16비트), 현대의 컴보이(8비트)와 슈퍼컴보이(16비트), 해태의 슈퍼롬(16비트) 같은 대기업 제품과 중소업체에서 조립해 판매하는 제품이다. 여기에 일본의 세계적 메이커인 닌텐도 세가 NEC 같은 제품이 밀수입되어 시판되기도 한다.

전세계 게임기 시장은 일본이 장악하고있다. 1억2천5백만대 가량 보급된 게임기 모두 일본에서 개발한 것으로, 세계 시장을 닌텐도(60%) 세가(30%) NEC(10%) 세 회사가 점령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도 이들 일본 회사와 기술제휴하여 제품을 조립·생산하며 소프트웨어는 라이센스 허가를 통해 수입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스트리트파이터 Ⅱ 게임은 닌텐도사에서 개발한 것이다. 다양한 무예를 지닌 여러 나라의 격투사 12명이 격투를 벌이는 이 게임은 기술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상이나 움직임, 음향 등이 모두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놀림이 매우 라르고 화면이 화려할 뿐 아니라 격투기 게임들이 거의 그렇듯 긴장과 몰입의 정도가 높아서 어린이의 정서를 지나치게 자극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 게임을 즐기는 어린이를 지켜보면 손가락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찔거리거나 어깨를 들썩들썩한다. 스트리트파이터 Ⅱ 게임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 게임기가 설치된 오락실에서는 ‘게임 삼매경??에 빠진 어린이들의 고함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게임 전문가들은 어린이용 게임이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일본에서 개발된 것이 대부분이라 일본색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한 게임 분석가는 “게임중에는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폭력적인 것도 있으며, 알게 모르게 일본 문화가 담긴 것들이 무분별하게 수입되어 문화적 위기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 알라딘보이의 김규철 과장은 ??게임 내용은 닌텐도 같은 일본 회사에서 제작할 때 1차로 규제할 뿐 아니라 국내 수입사들이 자체 선별해 어린이에게 부적합하거나 우리 정서와 동떨어지는 것은 제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스트리트파이터 Ⅱ처럼 인기가 높은 것은 다소 비교육적이라 해도 외면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체 80%가 불법 유통

게임 소프트웨어와 관련하여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롬팩 대부분이 밀수나 복제를 통해 불법으로 유통된다는 점이다. 이는 전체 소프트웨어 물량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직접 많은 양이 밀수입된다는 것은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핸드캐리어??라 불리는 보따리장사꾼은 보통 한번에 1천만원이 넘는 물량을 밀반입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드래곤퀘스트 V??나 ??파이널판타지??제품처럼 일본에서 아침에 시판하기 시작한 게임이 오후면 용산 등 게임 전문시장에 깔리는 일도 많다. 게임에 관한 한 일본과 우리나라는 국경이 없는 셈이다.

일본으로부터 밀수입이 성행하는 것은 인기있는 게임을 현지와 거의 동시에 판매할 수 있다는 점, 정식으로 수입하면 세금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투자라고 해봐야 운반비밖에 들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이다. 게다가 국내 유통 과정에서 부가가치세 부담도 없다.

밀수입·복제 같은 불법 유통이 성행하는데 대해 용산의 한 게임기 점포 주인은 “소비자인 학생들이 게임 잡지들을 통해 일본에서 발매되는 새 게임 소식을 먼저 알고 찾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을 찾는 소비자들은 국내 대기업의 정식 소프트웨어는 종류가 많지 않아 만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판매상들은 불법 소프트웨어가 범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대기업들을 비난한다.

게임기 판매상들은 이번 발작 사태로 인한 판매상의 타격은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게임과 발작의 직접 관련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전자오락은 ‘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게임기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수많은 어린이가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데 그중에는 유달리 예민한 어린이도 있을 수 있다는 반응이다. 그 비율은 운동을 하다 다치는 정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일부 폭력성 게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자오락 자체를 이상 증상의 직접 원인으로 매도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한 게임 전문가는 光과민성 간질발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단순한 추정만으로 어린이로부터 오락기를 빼앗는 것이야말로 과민성 반응이 라고 말했다.

닌텐도사는 전자오락과 간질 발작 간에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사 가와부치 과장은 “빛의 자극에 예민한 사람이 있으며 이들은 디스코장 같은 곳의 현란한 불빛에도 비슷한 반응 을 보인다. 그러나 일단 문제가 되었으므로 각종 게임에 과민반응 증상을 가진 사람은 의사와 상의하도록 하는 경고문을 붙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제기된 이번 문제는 무역역조 시정이나 수입규제 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오락 시간 제한이 ‘최선책??

한 학부모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의사들이 권고하는 대로 아이들의 오락 시간을 제 한하고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게임기산업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이미 16비트 고급형이 나와있을 뿐 아니라 CD-롬을 이용한 20만~30만원짜리 최신 제품도 곧 일반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오락은 이미 어린이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게임기를 독버섯으로 볼 것인가, 건전한 오락기구로 볼 것인가는 부모들을 포함한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전자오락 자체보다 게임 중독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엇이든 지나쳐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유통구조를 바로잡고 좋은 우리 게임을 개발하는 데에 투자하며, 교육면에서 유익한 게임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와 업계가 떠맡아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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