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도 명성” 빗나간 작가정신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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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들 처녀작 ‘낯뜨거운 도용’ 버젓…비뚤어진 출판 상혼도 한몫



제 문제는 혼성모방(패스티시)이 아니라 도용이다. 지난해에는 주요 문학상 수상작들이 표절 시비의 대상이 되었다. 그 시비는 혼성모방에 대한 논쟁이라도 불러일으켰지만 93년 신년 벽두에 터져나온 '문제작' 두편은 표절이냐 혼성모방이냐 하는 차원을 넘어 '혼성도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세계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됐다가 취소 당한 김가원씨의 단편소설 〈떠난 혼을 부르다〉와 지난해 12월 출간된 풍수소설 《명당》(홍익출판사 펴냄)은 한 작가의 여러 작품, 혹은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 단어 몇개와 토씨만을 바꾸는 도둑질을 벌인 것이다.

〈동아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인 유성식씨의 〈아주 사소한, 류씨 이야기〉는 2042년의 소설제작 방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미래의 소설가들은 "현대소설의 ABC가 패스티시의 원칙에 있다"며 컴퓨터 자료 베이스에 들어 있는 남의 문장을 이용해 하루에 두세 편씩 작품을 쓰기도 한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인가. 혼성모방 혹은 표절·도용이 작품 창작의 'ABC'가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일까. 특히 올해초 '도용'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소설들이 신인들의 처녀작이라는 점이 이와 같은 우려를 자아낸다. 《문화예술》2월호에 〈표절 유감, 신춘문예 소설 유감〉을 기고한 문학평론가 이경호씨는 최근 문제가 된 표절행위의 원인을 정보화사회로 이행해가는 우리의 현실에서 찾고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 유별나게 큰 젊은 문학 지망생들은 기존의 모범적인 작품들을 부지런히 읽고 좋은 점을 본받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버린 자본주의 정보소통 방식에 순응해버리기 쉽다“ 이씨는 지적했다. 이런 방식에 익숙하다보니 기존 작품도 정보를 습득하듯 읽게 되고, 결국은 표절에 대한 가책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문단 일각에서는 지난해 빚어졌던 혼성모방 논쟁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표절을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문단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고소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된 소란 가운데서도 작품상 심사위원들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어 그 시비는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서도 당사자인 신인작가 두명은 단번에 베스트셀러 소설가의 반열에 올라 작가 지망생들에게 '저렇게 하면 유명해지는구나‘하는 인식을 암암리에 심어주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에 말썽을 빚은 한 작가는 도용 사실이 밝혀지자 "혼성모방은 비일비재한 것이 아니냐. 재수없이 걸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소설가는 "혼성모방 등은 예술기법상 인정할 수 있지만 그 기법들만이 세계를 재현 혹은 반영하는 유일한 창작 원리라고 강요하는 것이 표절을 부채질하는 큰 요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소설가 李淸俊씨는 "이름이 욕되고 비판을 받더라도 책만 잘 팔리면 된다는 저자와 출판사의 장삿속이 이런 도둑질을 낳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표절은 정신작업의 산물을 경시하는 풍조에서 나온 것이다. 책 한권을 훔치면 절도범이 되지만 그 내용을 훔치는 것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경향에 문제가 있다. 표절은 독자로 하여금 장물을 취득하게 하는 명백한 도둑질이다"라고 했다.

명백한 도둑질은 상업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일부 출판사의 출판 전략에 의해서 조장되는 측면이 많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판매전략에만 주력하는 그들의 행태는 막대한 광고비와‘베스트셀러 만들기??로 나타난다. 최근 일고 있는 장편 역사소설 붐도 출판사들의 경쟁적인 판매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만 획득하면 된다는 천민 자본주의논리에 문학의 창조행위마저 포섭당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민음사 이영준 주간은“일부 출판사는 책을 가지고 도박을 하고 있다. 초판을 5만~10만부 찍어놓고 광고와 영업 전략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그는??출간 1주일 만에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조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출판 상업주의가 완숙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학은 평생을 건 승부??충고 귀담아야

소설《명당》사건도 역사소설 붐에 편승해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조급하게 책을 제작한 출판 상업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 이 사건은‘누가 도용했느냐??하는 공방이 벌어져 그 책임을 작가와 출판사가 서로에게 떠넘기며 맞고소를 한 상태이다. 작가 李佑庸씨는??《명당》은 돈 때문에 쓰게 됐다??고 말했고, 홍익출판사 대표 李升用씨는??어리석고 무식한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내려고 인격이 파탄된 작가 하나 만나서 처음부터 그의 음흉한 의도에 사기당하고 놀아났다??고 말했다.

이청준 趙廷來 金源一 김정빈 씨의 소설과 풍수지리학자 崔昌祚 전 서울대 교수의 책을 그대로 베껴(사진 참조) 짜깁기한《명당》은 처음부터“사기치려고 작정??을 했다. 작가와 출판사가 서로 상대방이 썼다고 주장하는 소설집필 계획안마저 이청준씨의《자유의 문》에서 인물의 이름만 바꾼 채 그대로 도용해온 것이다.

도용이라는 범죄를 예방할 엄격한 제도나 장치는 없다. 또 지금의 출판 구조는 표절 작품을 얼마든지 재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악명도 명성이다??라는 모토를 앞세운일부 출판사도 각성해야겠지만 도용을 출세수단으로 삼으려는 작가 지망생들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문학은 평생을 거는 긴 승부이다. 표절로 출발해서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세계일보〉당선작의 피해자인 소설가 吳貞姬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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