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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2006.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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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근씨, 환자 병력 등 입력한 IC 카드 개발…효율적 진료 가능


 

한 젊은 의사가 개발한 건강관리용 IC (Integrated Circuit : 직접회로) 카드가 93년 의료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건강관리용 IC 카드를 개발한 사람은 메덱스클리닉 이사장 박유근씨다. 그는 고려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수련의 때 참가한 국제 학술대회에서 IC 카드를 소개받은 뒤, 전산팀을 구성하여 2년여 연구 끝에 우리 실정에 맞는 건강관리용 IC 카드를 개발했다.

그는 대학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의료인이 양적으로 팽창하는데도 불구하고‘3시간 대기에 3분 진료??라는 우리나라의 불합리한 의료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더욱이 전국민에 대한 의료보험 실시와 노동부령으로 법제화한??30인 이상 기업체 정기검진?? 등으로 연간 1천만명 이상이 집단 검진을 받고 있어 진료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의료계의 이같은 고질적 관행을 타개하는 방편으로 건강관리용 카드 개발을 생각해낸 것이다. 박씨는 이렇게 말한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최소한 10~15분은 필요한데, 그러려면 의사 1인당 하루 30명 정도의 환자만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루 평균 1백~2백명이 밀려드는 현재 상황에서는 형식적인 진료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이때문에 의사를 장사꾼쯤으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병원 진료의 큰 틀은 문진·이학적 검사·실험실 검사를 통한 처치와 투약으로 이루어진다. 문진은 과거 병력과 현재 증상, 과민반응 및 건강과 관련한 여러가지 생활습관 등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학적 검사는 청진기로 진찰하는 것이며, 실험실 검사는 말 그대로 혈액· 방사선 검사 등을 포함한다. 흔히 3분 진료라 함은 문진과 이학적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짧게 줄인 것을 빗댄 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IC 카드를 의료계에 도입하는 일은 짧은 시간 안에 더 효율적으로 문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와 환자의 관계, 의학용어로 말하자면‘랍보??를 개선할 수 있으며, 아울러 접수?등록?차트 작성을 전산화함으로써 병원의 혼잡한 업무를 간소화할 수 있다고 박씨는 주장한다.

건강관리용 IC 카드에는 개인의 인적사항은 물론 보험자료·개인병력·가족병력·수혈경험 ·과민반응 유무 등 의사가 진료 때 알아야 할 기록이 입력되어 있다. 따라서 IC판독기에 의해 출력된 자료는 기존 접수 등록 절차는 물론 의사의 문진 인터뷰나 별도서류작성 절차를 대신할 수 있다. 또한 의사는 환자에 대해 많은 정보를 파악하게 되므로 곧바로 전문적이고 포괄적으로 진찰할 수 있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상태가 된 환자가 병원응급실로 실려왔을 때 의사는 환자의 IC 카드 출력자료를 보면서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 또 수혈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IC 카드에서 과거 수혈경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찾을 수 있으며, 15세 미만 환자에게 중요한 단서가 되는 출생 경력을 쉽게 확인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진료의 질적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IC 카드는 대규모 인원을 한꺼번에 실시하는 직장 단위 건강검진에서 더욱 큰 실효를 거두리라 기대된다.

카드 한장 10년, 1만번 사용

이렇게 볼 때 IC 카드는 진료환경을 개선하는 혁명적 조치라 하겠지만, 그렇다고 의사고유의 전문영역을 침범하거나, 그 내용이 법적인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박씨는 IC 카드가 “진료의 보조도구일 뿐, 진료를 대신하는 의무기록자료는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IC 카드가 널리 보급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도 그 안에 기록된 내용을 수정하려면 반드시 담당 의사가 사인하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이것은 만일 여러 병원에서 여러 의사가 임의로 내용을 수정했을 때 발생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어떤 의사에게 물을지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IC 카드는 신용카드만한 플라스틱 카드에 마이크로 컴퓨터 칩을 장착하고 필요한 정보 또는 소프트웨어를 입력하는 새로운 정보통신 미디어다. 마이크로 칩은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임시기억장치·주기억장치 같은 컴퓨터 기본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영문 2천자까지 수록할 수 있다. 운용방법은 IC 판독기에 넣어 네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작동시키면 일반 컴퓨터와 호환해 사용할 수 있다. 일명 스마트 카드(Smart Card)라고도 불리는 IC 카드는 1973년 프랑스 인노바트롱사의 로란드 모레노씨가 개발했다. 선진국에서는 산업 경제 의료 보안 같은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사용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7년전 삼성전자 금성사 등 하드웨어 생산업체가 처음 소개했다. 이번에 메덱스클리닉팀이 건강관리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데 이어 93년 말에는 공중전화카드용 IC 카드가 생산·공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고려시스템에서 개발한 금융결제용 IC 카드도 곧 실용화 단계에 이를 것이다. 현재 IC 칩이 달린 플라스틱 카드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프랑스 전자회사로부터 수입하는데 한장당 원가는 1만원이 넘는다. 카드 유효기간은 10년이고 사용 횟수는 1만번이다.

건강관리용 카드가‘보다 나은 진료환경 만들기??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전국 각지의 병?의원에까지 소프트웨어가 보급되어야 한다. 신용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신용카드 가맹점이 많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위해 메덱스클리닉은 전국 병?의원에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1월말 현재 전국 40개 병원과 계약을 맺었다??고 밝히는 박씨는 3월말에는 1백여개, 연말까지는 1천여개 병원에까지 소프트웨어를 확대 보급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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