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와 검찰 으르렁대는 까닭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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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DJ의 확고한 사정 의지 잘못 읽어 마찰

최근 경성 리스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민회의와 검찰측의 신경전은 지켜보는 이들을 다소 의아하게 만든다. 검찰이 여당 의원들의 이름이 주로 들어 있는 특혜대출 의혹 사건의 수사 기록을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에 격분한 여당이 검찰에 진상조사위원들을 파견하고 검찰 수뇌부를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검찰을 집권당의 우군이라고 보아 온 국민 처지에서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질 법도 하다. 그렇다면 국민의 정부에서 국민회의와 검찰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국민회의 내부에는 여전히 검찰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하다. 발단은 물론 경성 사건 수사 결과 발표다. 지난 8월7일 간부회의에서는 검찰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정치권 사정을 둘러싼 검찰의 수사 태도가 어딘가 수상쩍다는 분위기였다. 조순형 위원장을 위시한 ‘경성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서울지검 박순용 검사장을 찾아가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말이 수사 촉구이지, 내용은 강력한 항의 방문이었다.

DJ “검찰은 여당이 뭐라 해도 흔들리지 말라”
명단에 오른 의원들의 불만은 더욱 크다. 박검사장을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한 조흥규 의원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 기족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검찰의 관례를 깨고, 그것도 휴가 중이던 박검사장이 출근해 얼토당토 않은 수사 기록을 발표한 것은 난센스 아니냐”라며 검찰에 뭔가 저의가 있다는 표정이다.

 이런 불만은 즉각 검찰 내에 반개혁 세력이 있다는 쪽으로 증폭되었다. 과거 정권에서 득세한 검찰 내부의 반DJ 세력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그 이유로 정권 교체 이후 검찰의 수사 잣대가 여당측에 더 가혹했다는 점을 꼽는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6 · 4 지방 선거 직후 내 지역구 국민회의 기초단체장 후보가 아주 사소한 일로 잡혀갔다. 알고 보니 검찰이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더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그동안 여기저기서 쌓였던 검찰에 대한 국민회의 내부의 불만이 경성 사건을 계기로 한꺼번에 표출된 셈이다.

 국민회의는 이번 기회에 검찰의 군기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며 자기당 출신 박상천 법무장관을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다. 8월 말로 예정된 검찰 정기 인사에서 적군을 솎아내야 한다는 압력이다.

 이런 국민회의측 태도에 검찰은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한편으로는 불편하다는 반응이다. 서울지검 박순용 검사장은 “거론된 정치인들의 무혐의를 입증하고 야당의 정치 공세를 막기 위해 수사 기독을 공개했다”라며, 여당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서운해 했다.(인터뷰 참조). 검찰 하부 조직의 기류는 훨씬 더 냉소적이다. 대통령이 여 · 야 성역 없는 수사를 천명한 마당에 여당이 검찰을 돕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한일선 검사는 “여당 의원이 검찰 고위 간부를 고소한 것은 검찰권 침해에 해당한다”라며, 이 때문에라도 정치인 사정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고 검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국민회의와 검찰 사이에 갈등이 드러난 데는 양자간 의사 소통 창구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랜 세월 야당 생활을 한 국민회의와 친여 성향이 강한 검찰이 쉽사리 공감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검찰은 항상 여당 편이라는 고정 관념이 국민회의를 더욱 불만스럽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회의가 김대통령의 사정 의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데 있는 것같다. 8월15일 광복절 축사에서도 재확인되었듯이 김대통령의 정치권 사정 의지는 단호하다. 청와대 한 고위 인사는 “대통령은 정치권 사정을 기정 사실화하고 마지막 수위를 놓고 고민하는 단계다. 국회의원 2백99명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사정이 아니라, 정격 유착 등 개혁에 정면 위배되는 악성 비리에 대해서는 여든 야든 가리지 말고 수사하라는 지침이 검찰에 전달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회의 의원들은 설마 하면서 대통령의 사정 의지를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은 검찰의 경성 수사 발표 직후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경고를 보랬다. 하지만 그 냐용은 국민회의가 맞고 검찰이 틀려TEk는 질책성 경고가 아니라 “검찰이 사정과 관련해 괜히 시시비비에 말려들지 말라”는 중립성 요구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말하자면 여당이 뭐라 해도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의 사정 의지가 결코 말뿐이 아니라는 점이 곳옷에서 감지되자 검찰은 정치인 수사에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박상천 장관도 검찰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다. 검찰 출신인 박장관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한번 검찰은 영원한 검찰’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국민회의와 검찰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박장관측은 “국민회의가 아직 야당 체질을 못 벗고 있다. 검찰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라면 검찰을 두둔하고 있다.

 이래저래 정치권 사정이 본격화하면 양자 간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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