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이사장 농간에 학생 · 교수만 피눈물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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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대 · 광주예술대 폐교 … 인가 남발한 교육부도 문제

지난 8월3일 교육부(장관 이해찬)는 유례 없는 대학교 폐쇄 계고 조처를 내렸다. 전 서남대 총장 이홍하씨(59)가 소유한 한려대와 광주예술대에 대해 내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뒤 2002년까지 폐쇄토록 하고, 서남대와 광양대는 현재 학생 정원에서 각각 4백92명과 5백19명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최근 부실 기업 퇴출과 구조 조정의 대세를 타고 교육부가 정상 운영이 어려운 부실 학교를 과감히 퇴출시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도대체 이 대학들에서는 재단 설립자와 학교 당국의 사학 비리가 얼마나 극심했기에 건국 이후 첫 ‘대학 퇴출’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일까? 학교 부실의 흔적은 교육부 발표 내용에서부터 드러난다. 광주예술대와 한려대 재단은 설립당시 제출한 현금 출연 증서의 잔액증명서를 위조하고 등록금을 횡령해, 광주예술대의 재정 잔고는 20만원, 한려대는 겨우 4만원이었다. 설립자 이홍하씨는 등록금 4백26억원을 횡령해 전국 각지에 대학 설립을 위한 부동산과 병원 인수 자금으로 사용했다.

‘유령 교수’에게 월급 주고, 교수 · 학생 폭행
 교육부 감사가 있을 때면 시가 만원짜리 영어 회화 테이프가 백만원대로 둔갑하는 등 4개 대학 모두 시설 기자재를 과다 계상하는 수법을 ‘애용’했다. 이홍하씨 소유 남광병원 의료 기자재가 서남대(전북 남원시)까지 이동했고, 광남고등학교 농구대가 광주예술대로 옮겨져 학교 물품으로 등재되었다. 학교에 근무하지도 않는 남광병원 간호사를 버젓이 광양대학 교수로 등재해 ‘유령 교수’확보율을 높였고, 월급이 지급된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광주예술대와 한려대 교수들은 비가 새는 강의실의 유리창을 닦거나 건축자재를 날랐고, 삽을 들고 운동장에서 노역을 했다. 이씨는 학교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는 서남대 · 광주예술대 · 한려대 학생회 간부들을 장학금과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 이에 반발하는 일부 교수와 학생은 이씨에게 멱살을 잡히고, 폭행당하기 일쑤였다.

 부실과 비리의 정도가 여기까지 이르렀다면 두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폐쇄 계고 결정은 정당한 조처처럼 보인다. 그러나 폐교라는 ‘사형선고’에 대해 교수 · 학생 · 학부모 모두 할 말이 많다.

 방학 중이어서 텅텅 빈 광주예술대(전남 나주시)에서 만난 한 학생(디자인학과 2년)은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의문이고, 차라리 휴학해서 편입학 공부나 열심히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한려대(전남 광양시)는 교수 79명과 학생 2천5백여 명은 학교 폐쇄라는 날벼락을 맞고 망연자실해 있다. 양기웅군(재활치료학과 2년)은 “1, 2학년은 그래도 휴학이나 편입학을 해서 새 길을 갈 수 있지만, 3,4학년은 대책이 없다. 문 닫은 학교의 졸업장으로 어디에 이력서를 내겠느냐”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특히 여천석유화학단지나 광양제철소 등에서 주경 야독하며 학교에 다니는 야간부 학생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늙은’ 직장인 학생들이 다른 대학으로 편입학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문 닫은 학교의 졸업장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교육부가 내놓은 4개 학교 정상화 방안은 학교 폐쇄와 법인 통합을 설립자 이홍하씨가 주도해 시행토록 해 4개 학교 교수와 학생 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남대 이경훈 교수는 “폐쇄 계고 조처로만 끝난다면 서남대와 광양대의 부실과 파행 운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번 기회에 4개 대학 모두 관선 이사진을 파견해 정상화해야 마땅하다”라는 입장이다. 학교의 부실과 있이의 개인 비리를 추적해 검찰 수사를 이끌어낸 이보릉 교수(광주예술대 교수협의회장)도 “퇴출 대상은 학교와 학생이 아니라 설립자인 이홍하씨와 서복영 총장이다. 비리 주범인 설립자에게 수습을 맡긴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이성희 사무관(대학지원과)은 “사실상 이홍하씨가 해당 대학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수습을 맡긴 것이다. 학교를 설립한 사람에게 학교를 폐쇄토록하는 것만큼 큰 벌이 있겠느냐”라며, 입장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맞서 한려대와 광주예술대 교수 · 학생 · 학부모와 지역 사회 대표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청와대와 관계 요로에 탄원서를 내는 등 학교 폐쇄 조처철회를 강력히 요구할 방침이다.

교수협의회, 교육부 고소 · 고발준비
 한려대 김병현 교수는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부실 대학으로 낙인 찍힌 4개 대학 가운데 서남대만 6억여 원 부채가 있고 나머지 3개 대학은 부채가 아예 없다. 설립자가 등록금을 횡령하고 재단에서 시설 투자를 하지 않아 부실해진 것일 뿐 4개 대학 다 자생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4개 대학 교수협의회는 특히 ‘전국 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연합회(회장 이재헌 중앙대 교수)와 공동으로 무책임한 교육부의 행정 행위에 대해 행정 소송을 제기하고, 교육부 당국자들을 부실 관리 책임을 물어 직무 유기로 고발할 방침이다.

 이들 대학의 교수 · 학생은 4개 학교 설립 인가를 담당했던 교육부의 대학지원과 · 개방대학교육과 · 전문대학행정과 · 재정과 등 관련 담당자들에 대한 책음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이홍하씨가 정 ·  관계에 포진한 자신의 인맥과 광주고 교사 시절 맺은 인연을 활용해 정계 · 교육부 · 광주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대단한 로비력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교육부와 이씨의 ‘적정한 타협’ 의혹을 제기하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이다. 사상 초유의 대학 페쇄 조처가 몰고 온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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