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한 일본, 가난한 일본인
  • 도쿄ㆍ남유철 기자 ()
  • 승인 2006.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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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징 혜택 못받고 죽도록 일만 했다.” ??? 자민당 ‘생활대국’ 실현 선언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에서 미국을 앞지른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일본은 정말 잘 사는 나라인가. 일본인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흔히 “일본 기업들은 부자이나, 일본과 일본 국민은 가난하다”는 명답을 내놓는다. 지난 80년대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일본으 세계 제일의 채권대국, 일본 기업은 세계 최대의 자산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이렇듯 화려한 경제 성장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주도록 일만 했다는 자조와 비판이 최근 높아가고 있다.

 일본은 재계를 대표하는 경재단체연합회의 오타 하지매 국제경제부장은 “일본의 경제력 향상이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으로 연결 되지 못한 것은 경제 운영의 가장 심각한 잘못이었다”고 지적한다. 경제다체연합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일본 경제가 90년대에 실현해야 할 최대 과제는 ‘진정으로 풍효한 국민 생활 실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일본 국민의 생활수준은 미국의 4분의 1∼7분의 1밖에 안되는 것으로 본다.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고도 선진국과의 생활수준 격차를 좁히지 못한 일본의 고뇌는 일단 1억2천3백만명이 살기에는 너무 좁은 국토에서 비롯된다.그러나 일본 경제의 성숙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 위주의 성장만을 추구해온 일본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일본 재계는 비판한다.

 극심한 불황이 2년째 지속되는 가운데 작년 한 해 일본의 무역흑자는 지난 90년에 비해 무려 두배가 넘는 1천3백50억달러에 달했다. 도산하는 기업이 한달 평균 1천개가 넘는 경기침체가 계속되어도 수출전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는 일본의 무역흑자는 일본 경제의 강점이 아니고 가장 큰 약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 싹터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편지자이며 지난 88년 일본 경제를 비판한 《해는 또다시 진다》를 써서 세계적으로 눈길을 모은 빌 에모트씨는 그 이유를 최근 출간한 그의저서《일본의 세계화》(Japan's Global Reach)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너무나 많은 일본인들이 ‘수입은 나쁘고 수출은 좋은 것’이 라는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 한 국가가 수출을 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필요한 수입에 지불할 대금을 벌기 위해서이다. 수출은 원하는 물건을 벌기 위해서이다. 수출은 원한느 물건을 사들이기 위한 희생일 뿐이다. 이 논리는 많은 물건을 팔아 최대 이윤을 추구하려는 사기업에게는 물론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국가와 기업의 차이를 혼동하고 있다.

 에모트씨의 주장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일본 경제는 수출에 의존하기보다 내수 위주로 전화되어야 한다는 일본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수입이 지나치게 억제됨으로써 일본의 소비자들은 엔화 가치가 높은데도 세계에서 가장 질 좋고 값싼 제품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이와 더불어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기피하고 사회기간시설과 같은 공공분야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함으로써 생활수준을 적극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했다.

 오타 부장은 “일본 정부가 수입자유화를 서두르고 일본 경제에 시장메커니즘이 작용 할 수 있도록 개방과 자유화를 충실히 이행했더라면 국민의 실질적인 생활수준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도 최근 이런 문제점을 자각하고 이른바 ‘생활대국’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집권 자민당에는  ‘생활대국’을 적극 추진해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다. 불어나기만 하는 무역흑자는 통상마찰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이론이란 닫힌 시장안에서 살인적인 물가고에 시달리며, 노동의 진정한 대가를 향율하지 못하는 ‘풍요한 나라의 가난한 국민’들의 마음에서 서서히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다.

 

“한국,90년대 후반 도약대 오른다”

노무라* 관지웅 실장 전망???“일본 첨당식으로 이해, 한국과 경합 분야 감소”

 한국 사람들은 거의가 일본을 경쟁국으로 생각한다. 한국 경제를 말할 때도 일본과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경제의 규모나 발전단계를 보면 한국은 결코 경제대국 일본과 비교해서 한국 경제를 논하는 것은 한국인들이나 좋아하는 접근법일 뿐, 일본이나 다르나라 학자들은 대개 한국과 일본을 경쟁상대로 보는 것을 무리라고 생각한다.

“한국 수출 고전은 비교우위 변화 탓”

 그런데 수출상품만큼은 한국과 일본이 상당히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한국과 일본의 주력 수출상품은 다같이 철강, 자동차, 가정용 전자제품, 반도체 같은 몇몇 품목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경쟁관계는, 엔고로 일본 수출품의 가격이 올라가면 아시아 신흥 공업국가 중 한국의 수출이 가장 현저히 늘어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상자 기사 참조).천원자원이 없는 한국과 일본은 다같이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삼아 ‘수출주도형 경제’로 성장했다. 이처럼 유사한 경제환경이 한 ? 일 두나라가 동일한 특정 산업분야의 상품 수출에 주력하도록 만든 것이다.

 노무라연구소 *** 이시아조사실장은“한국과 일본 경제는 기본적으로 유사한 성장 패턴을 밟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홍콩의 출신인 그는 한국 경제가 보여주는 현재의 발전 양상이 일본의 70년대 초와 비슷하다고 평가한다. 70년대에 진입하면서 당시 신흥공업국으로서는 이미 성숙단계에 있던 일본은 기계류, 특히 자동차 수출이 급증하면서 선진국 단계로 발전해 나갔다. 오늘날의 한국 또 한  그때의 일본과 같은 단계로 움직여 가고 있다는 게 관실장의 생각이다.

 경제의 발전단계에 따라 경쟁력에서 비교 우위를 높은 산업 분야는 달라진다. 가령 저임금중국은 선진국보다 경제의 발전단계는 훨씬 낮지만, 섬유와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는 선진국보다 월등한 비교우위를 갖는 것이다. 한국의 예를 보면 수출경쟁력의 비교우위는 80년대에 들면서  섬유나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서 기술집약적인 제조업 쪽으로 이동해 왔다.  이른바 ‘성숙 신흥 공업국’ 단계로 넘어온 것이다. 관실장에 따르면 지금 한국이 놓인 위치는 성숙 신흥공업국의 초기단계로 이행하려는 시점이라고 한다(도표 참조)

 한국이 지난 수년간 수출전선에서 고전한 것도 한국의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수출경쟁력의 비교우위 분야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수출경쟁력의 비교우위가 변화하는 전환기에 선 한국은, 저부가가치 품목에서는 동남아에 밀리고 고부가가치 품목에서는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관실장은 “한국이 처한 상황은 앞으로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일본의 비교우위가 첨단산업쪽으로 이행하면서 현재 일본의 주력 수출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의 비교우위는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산업구조 조정이 열쇠”

 아시아의 변화하는 무역구조에 관심을 가져온 관실장은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주력 수출업종인 전자 철강 자동차 분야에서 서서히 일본보다 비교우위가 앞서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90년대 후반 한국에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한다는 관실장은 한국의 설비투자, 노동력, 생산성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한국의 경제학자나 언론은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만 본다”고 그는 지적한다.

 70년대 초 선진공업국 진입에 성공한 일본의 산업구조는 이제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수출경젱력 비교우위는 고도의 기술과 자본집약적인 첨단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은 90년대에 철강 ? 자동차 ? 전자 산업의 비교우위에서 한국에 서서히 처지게 된다. 성숙 단계를 지난 미국 경제가 전자산업과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금융과 같은 서비스업으로 옮아간 사례가 이같은 비교우위와 이행형태 이론을 증명한다.

 중요한 관건은 경쟁력과 비교우위가 변화하는 전환기에 산업구조 조정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불황을 ‘행운의 불황’이라고 역설적으로 부르는 것은 경기침체가 이러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강조한 때문이다. 관실장은 “한국은 너무 첨단을 강조하지 말고 자동차 전자 철강과 같은 주력 제조업에 계속 집중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90년대를 한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21세기에 가서 정면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라는게 그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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