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쿼터는 마지막 비상구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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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통상 협정도 ‘영화=예외’인정 … 미국 요구는 ‘외화 유출 블랙홀’

지난 7월22일 외교통상부 한덕수 통상 교섭본부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스크린 쿼터 폐지를 거론하자, 영화계는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어졌다. 감독 · 배우 · 제작자 등 3백여 영화인들은 7월30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부근에 집결해 한덕수 본부장의 발언을 규탄하며 거리 시위르 벌였다.

 스크린 쿼터 문제가 다시 잠잠해진 것은 영화 관련 부처인 문화관광부가 한본부장의 발언을 무시한 채 스크린 쿼터 제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당시 김종필 총리서리도 일단 문화관광부의 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통상교섭본부가 폐지론에 관해 문의하자 실무 담당자는 “정부 부처 간에 협의 중이서 아직 입장을 밝힐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스크린 쿼터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후보도 출마하면서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40%를 넘기 전까지 폐지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던 제도이다.

 집권 여당인 국민회의도 이 제도폐지는커녕 의무 상영 일수를 줄이는 문제조차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물론 국제통화기금 체제라는 불리한 조건에서 미국측과 통상 실무협의를 하고 있는 당국자들의 고충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우리 통상 실무자들에게 스크린 쿼터를 폐지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스크린 쿼터는 ‘국산화’를 업계에 강요하는 제도이기에 한 · 미 양자 투자협정(BIT)표준 문안에 위배된다는 것이 미국측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이다.

 그러나 미국측 요구는 영화산업이 국제 통상 협정에서 ‘문화적 예외(Exception culturelle)로 인정받는 현실을 감안할 때 크게 우려할 바는 못된다. 미국이 스크린 쿼터제를 폐지하는 대가로 굳이 5억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점도 그같은 상황을 반증한다.

 영화인들은 미국측이 제시한 5억달러 투자 내용 때문에 더욱 분개했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한국에 멀티플렉스 극장을 짓는 형식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인데, 우리 영화인들은 미국이 제시한 투자 방식이 한국 영화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스크린 쿼터 감시단 양기환 국장은 “그런 투자를 수용한다면 외자 유치가 아니라 외화 유출의 블랙홀을 만드는 꼴이 된다”라고 반박했다.

 더욱이 지난해 한국 영화 시장의 입장료 총수입이 2천3백84억인데, 5억달러는 연간 이자 수익만을 계산해도 천억원이 넘는 거액이서 그같은 투자가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통상교섭본부측의 스크린 쿼터폐지론은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주무 부처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고 제기된 점. 폐지 대가로 설득력이 없는 반대 급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자충수부터 둔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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