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의 어머니’ 무대에 부활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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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 일대기 담은 <아! 정정화> 공연

광복 53주년,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광복절을 전후해 역사 뒤안에 묻혀 있던 한 여성 독립운동ㄱ가가 역사의 전면으로 걸어나왔다. 정정화(1900-1991). 불꽃처럼 산화한 인물은 아니지만, 상해 임시 정부(임정)가 수립된 이듬해부터 광복을 맞을 때까지 임정과 동고 동락하며 임정의 안살림을 맡았던 인물이다. 투쟁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탓에 잊혔던 이 인물이 최근 연극 <아! 정정화>(8월13일-23일 · 서울 연강홀)를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극은 김 구 이시영 이동녕 신규식 같은 임정 요인들이 정정화를 무대 한가운데 세우고, 그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데서 시작된다. 임정 요인들은, 비록 교과서에는 수록되지 않았으나 정정화 같은 인물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운동가’였다고 말한다.

 1900년 수원 유수(留守)를 지낸 정주영의 3녀로 태어난 정정화는, 열한 살에 대한협회 회장을 지낸 깁가진의 집안으로 출가하고,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한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이듬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 때 나이가 스무 살. 임정의 궁핍한 살림을 목격한 정정화는 독립 자금을 구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는데, 그같은 활동은 여섯 차례나 계속되었다. 세 번째 잠입했을 때는 신의주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기도 했지만, 출옥하자마자 다시 독립운동의 전선으로 떠났다.

주연 맡은 원영애씨, 1년 3개월 발로 뛰어 제작
 정정화의 활동은 당시에도 크게 눈에 띄눈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임정의 살림을 도맡아 뒤치다꺼리한 그는임정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따. 백범이 임정의 아버지였다면, 정정화는 어머니였던 셈이다. 일본군에 쫓기어 상하이에서 중칭(重?)에 이르는 5천㎞ 대장정에 참여하는 등 정정화의 망명 생활 25년은 곧 임정의 역사였다. 마음만 달리 먹으면 미국 유학도 갈 수 있었던 넉넉한 집안의 딸이었으나, 정정화는 묵묵히 임정 활동을 뒷바라지 했다.

 정정화의 일생을 무대 전면으로 끌어낸 인물은 <아! 정정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원영애씨이다. 지난해 5월 정정화의 일대기를 우연히 접한 원씨는 그의 삶에 단박 매료되어 ‘독립운동하듯’1년 3개월을 뛰어다녔다. 지난해 11월에는 현장의 긴박감과 고초를 몸으로 경험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정정화가 걸었던 대장정의 길을 돌아보기도 했다.

 “정정화를 처음 접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40년대에 한국의 잔 다르크라 불렸던 인물, 안락한 생활을 마다하고 젊은 나이에 고난의 길로 서슴없이 들어선 이 인물이야말로 참된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원씨는 말했다. 원씨는 이 영웅을 극화해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오만군데’를 다 뛰어다닌 끝에 ><아! 정정화>를 제작해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임정 시절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정정화의 파란 만장한 일생을 다룬 <아! 정정화>는 연극 자체로는 다소 평면적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저런 흠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민족 앞에 청춘을 바친 인물들, 그 가운데서도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인물들도 후대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작품이다. 정 현씨가 연출을 맡은 <아! 정정화>에는 권성덕 오승명 이도련 유영환 정재진 이태훈 정규수 등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연극과 때를 맞추어 정정화의 일대기를 그린 <장강 일기>(학민사)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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