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 김재일<시사저널> 취재 1부장 ()
  • 승인 1998.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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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 가는 정치 불신

정치권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가뜩이나 IMF에 가위눌린 민심이 직무 유기의 국회에 대해 분개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마에 할퀸 민심은 급기야 정치권을 과녁 삼아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 정치 불신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정치권을 향한 원성이 높은 적도 드물었던 듯하다. 국민의 처지에서는, 온 나라가 국난과 천재를 당했는데도 국회가 공전과 파행, 곡절과 파란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가 국민의 아픈곳을 어루만져 주기는커녕 오히려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고 받아들일 법하다.

 ‘여름 내내 헛돈 국회’ ‘국회 반년간 한 일 없다’‘파행 국회에 국만 분노’‘국회가 국민을 버렸다’‘정부 수립 50주년에도 국회 공전’ 같은 신문 기사 제목들은 정치권을 향해 격앙한 민심고 따가운 질책을 그대로 반영한다. ‘국회 해산’ ‘국회와 의원 퇴출’이라는 말들이 서슴없이 등장하고, 시민단체들은 국민소환제 입법 청원운동, 세비 가압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아닌 게 아니라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 정치는 국민을 짜증나게 했다. 김종필 총리서리 인준 문제에서 꼬이기 시작해 의원 빼가기 실랑이를 거쳐, 국회의장 직을 어느 당이 차지하느냐, 총리 인준안 재제출이냐 재투표냐, 마지막에는 상임위원장 배분 흥정과 노른자위 상임위 차지하기 싸움 등 산 넘어 산 식이었다. 지루하고 소모적인 협상 끝에 가까스로 국회 정상화 물꼬가 트이기는 했지만 국회내 역학 구도와 의원들의 사고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정치가 다시 뒤엉킬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언제부텨인가 한국 정치는 타락의 대명사,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인은 신뢰하지 못할 사람 첫 순위로 꼽힌다. 이와 함께 수많은 사람이 정치를 비난할 뿐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자람 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구심을 갖는다. 정치를 경멸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그 정치를 책임지지 않는 자리에 스스로를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들의 정치 무관심과 경멸은 추악한 정치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애써 격리함으로써 자신을 그 ‘지저분한 무리’와 차별화하려는 심리와 상통하지 않을까. ‘정치인들은 모두 다 개새끼들’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인의 존재 이유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정치는 바로 우리의 수준이다
 독자들은 오해 없기 바란다. 필자는 지금의 한국 정치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의 정치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너도나도 정치인과정치권을 마구잡이로 매도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면서 자신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식의 태도에는 찬성할 수 없다. 필자는 ‘모든 국민은 스스로에게 가장 어울리는 정치를 갖는다’는 제임스 브라이스의 말에 공감한다. 한 나라의 정치는 결국 국밍의 수준에 귀결된다.

 수준 미달 정치인을 과연 누가 뽑았는가. 금품 타락 선거는 유권자와는 무관한 것인가. 우리는 확실한 기준과 안목을 가지고 한 표를 던졌던가. 여론조사에 나타난 정치인의 자질은 청렴과 도덕성. 비전,능력,개혁성 순이다. 그러나 정작 투표할 때는 그것과 동떨어진 소속당, 학연, 지연, 당선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을까. 우리는 뽑은 다음 그들의 활동을 잘 감시하고 있는가. 흔히들 정당은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으로 경쟁해야 한다거나, 정당 구도가 보수 대진보의 구도로 짜여야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 풍토에서 진보 노선을 표방한 당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가. 우리 국민은 몇 차례 실험에서 그같은  구도를  허용치 않았다. 당위적 이론과 현실적 선택은 딴판이었다.

 정치가 국민의 수준이라면, 그리고 우리 스스로 국민의 한 사람임을 인정한다면 지금 돌팔매질을 당하는 한국 정치는 바로 내 수준이요, 그 일정 부분은 내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정치권과 정치인을 호되게 나무라되 국외자로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참여자로서 비판하자는 말이다. 정치를 경멸하는 국민은 경멸당할 수밖에 없는 수준의 정치를 가질 뿐이다. 본질적으로 정치의 질은 정치인의 정신 차리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정치 의식고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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