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낙원’의 불길한 불길
  • 나권일 기자 ()
  • 승인 1999.03.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천만 갈대밭에 잇단 방화…습지 보전 지역 지정 둘러싼 갈등이 불씨

 전남 순천시를 관통하는 동천 하류와 드넓은 개펄을 끼고 있는 순천만이 합류하는 순천시 도사동에 ‘대대포’라는 쇠락한 포구가 자리잡고 있다. 예로부터 ‘갈대밭 10리 길’로 유명한 대대포 인근은 매년 11월이면 갈대 축제가 열릴 정도로 갈대밭이 장관이다. 순천만으로 날아드는 회귀 철새들을 찾아 망원경과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는 철새 탐조단이나 관광객도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이다. 순천만에는 현재 세계적인 회귀 조류인 흑두루미 80마리를 비롯해 검은머리 갈매기 등 천연기념물 11종과 혹부리오리 · 민물도요 · 쇠기러기 등 조류 총 1백67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떠오른 순천만이 최근 갈대밭 방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갈대밭 방화는 순천만을 ‘습지 보전 지역’으로 지정하는데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표면화한 것으로서, 환경권에 앞서 생존권을 주장하는 주민들릐 강력한 의사 표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1월 24일, 순천만 생태계 보존운동에 앞장서온 ‘전남 동부지역 사회 연구소’(동사연)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찾은 대대포 인근 갈대밭은 불에 탄채 군데군데 검게 그을려 아름다운 경관이 상당부분 훼손되어 있었다.

“재산권 침해 우려한 주민들이 방화”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동천 하류 지역 갈대밭에서는 최근들어 화제가 세 차례란 발생했다. 지난 해 12월30일 첫 방화로 1천2백평이 불탔고, 1월13일과 2월9일에도 각각 5천여평이 불타 지금까지 모두 2만2천여평이 훼손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동사연 관계자는 “1차 방화는 동사연 연구원들이 목격했다. 주민 2백명 가량이 동시에 조직적으로 갈대밭을 불태웠다. 순천경찰서에 정확한 조사를 요구했지만 관계자들은 농민들이 논두렁 불지르기를 하다 옮겨 붙었다는 애매한 얘기만 반복했다.라고 말했다.

 갈대밭 경관을 구경하러 순천만을 찾은 이병진씨(순천시 금곡동)는 “갈대밭은 순천 시민 모두의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이기심으로 갈대밭을 불태운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철새 탐조는 위해 순천만을 자주 찾는다는 일본인 유타카 가나이(재단법인 일본야조회 연구센터 부소장)씨는 “순천만은 넓은 개펄과 갈대밭, 주변농토가 잘 갖춰져 있어 철새들의 서식지도 매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갈대는 작은 새들에게는 훌륭한 피난처인 만큼 잘 보존됐으면 한다”하며 갈대밭 훼손을 아쉬워했다.

 농토와 인접한 둑길을 사이에 두고 불이 난 갈대밭에 굴삭기 한 대가 들어서서 개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동사연 문태룡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하천부지의 갈대를 불태운 뒤 경작하려는 것 같다. 주민들은 갈대밭의 경관이나 생태학적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갈대밭은 오염된 하수에 포함된 질소나 인을 제거하는 하수 처리장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순천만을 찾는 철새들의 은신처이자 보금자리라는 것이 문씨의 주장이다.

 최근 순천시의 용역을 받아 순천만 생태계를 연구하는 박기영 교수(순천대 · 생물학과)의 주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박교수에 따르면, 염생습징(鹽生濕地)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인 갈대는 하수 저화 능력과 함께 개펄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원래 있었던 자리에서 다시 새싹이 나는 갈대는 불태우는 것보다 조금씩 베어주면서 관리하는 거시 바람직하다고 박교수는 주장한다.

 쇠락한 포구, 70년대 초만 해도 화물선이 드나들었다는 대대포구 옆 대대가든 식당에 모여 소줏잔을 나누던 주민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환경단체를 비판하다가 갈대밭 방화르 사실사 자인했다. 주민 정종옥씨(60)는 “갈대는 외지인들이나 도시 사람에게 눈요기로 좋은 것이지 실제 농민들에게는 백해무익할 뿐이다. 갈대밭이 조금 탔다고 무슨 큰일 난 것처럼 언론에서 떠드는데 우리는 아무 죄가 없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대포에서 순천만쪽으로 백여 m 내려가면 민자를 유치해 골재 채취를 하다가 전면 중단된 동천 하류 공사 현장이 있다. 이곳에는 ‘철새 보호 나중에 하고 하도(河道) 정비 먼저 하자’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주민 채대홍씨(56 · 순천만 습지보전지역 지정 반대 투쟁위원장)는 “무성한 갈대밭이 동천 하류의 물길을 막고 있다. 하도를 정비하고 물길을 넓혀 주민들이 걱정하는 침수 피해를 막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현재 순천만 일대 순천시 도사동과 해룡면 지역 주민들은 ‘습지보전지정 반대투쟁위원회’를 경서하고 2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와 국민회의 등 관계 요로에 탄원서를 보내고 강경한 투쟁을 벌일 참이다.

 주민들의 주장과 관련해 순천시 의회 박상호 의장은 갈대밭 방화는 순천만 인근 지역 주민들의 사정을 모르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박상호 의장은 “수십 년간 개발 혜택에서 소외된 주민들에게 순천만이 습지 보전 지역으로 묶인다는 것은 또 다른 소외이자 재산권 행사 제약이다. 갈대밭 방화는 이들의 불만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순천시, 주민 생존권 · 환경 보존 사이서 갈팡질팡
 올해 완공 예정인 하수종말처리장을 비롯해 도축장과 화장터, 쓰레기 처리장, 변전소 등이 순천만에 인접한 순천시 도사동에 몰려있다. 그동안 꾹 참고 혐오시설을 받아들여온 주민들에게 재산권 제약을 가져 올 습지 보전 지역 지저을 요구하는 환경단체나 언론은 지탄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정황 때문에 정작 난처한 처지에 빠지게 된 쪽은 동사연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이다. 매년 갈대밭 축제를 벌여온 동사연은 현재 갈대밭 문제로 주민들과 대립하는 양상으로 비치면서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순천시가 동천 하류 하도 정비 공사를 강행할 경우 골재 채취보다 더 큰 생태계 피해를 가져 오리라는 것이 순천지역 환경단체들의 우려다. 현재 40m에 불과한 강폭을 배로 늘리고 강바닥을 3.5m깊이로 파는 공사는 단순히 갈대밭 훼손에 그치지 않고 순천만 주변 생태계를 교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순천시가 주민 생존권과 환경 보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적극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현행 습지보전법 제18조는 습지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주민과 자치단체장 및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주민들의 동의 협조 없이는 어떤 보존 계획도 세우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탄원을 받아들여 하도 정비 공사를 실시하려는 순천시는, 하도 정비 공사에 대한 용역결과가 나오는 대로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해결하겠다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 자연정책과 고재윤 과장은 “순천만을 습지 보전 지역으로 지정하는 문제는 환경부가 검토중인 사안일 뿐이다. 주민의견 수렴 절차를 꼭 거쳐야 하기 때문에 순천시가 먼저 지역 주민과 충분한 협의를 해야한다”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월동하는 철새를 연구하고 있는 산림청 임업연구원 김진한 박사는 “흑두루미의 월동지인 일본 가고시마 현 이즈미 시의 경우 철새 모이주는 구역을 딸 ㅗ정해놓고 그 땅을 소유한 농민들에게 임차료를 주고 있다. 또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을 쳐주는 등 주민들의 재산권에 대한 배려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산권과 환경권이 대립하는 데 따른 갈대밭 방화는 순천이 처음은 아니다. 경남 창녕에서 우포늪과 주남저수지 보호운동을 펼쳐온 이인식 습지보전연대회의 의장은 “주남 저수지 역시 2-3년 전 주민들의 갈대밭 방화로 몸살을 앓았다. 지금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을 계속 설득하고 있다. 환경부와 순천시가 주민들과 끊임없이 만나 토론하면서 견해 차를 좁혀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결국 순천시와 전라남도가 주민들의 생존권과 환경 보존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순천만 갈대밭은 방화 위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