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길 산길 구비마다 ‘민족 화해’ 봄기운 넘실
  • 김당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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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중간 점검 / 북측 인식 변화 엿보여

2월24일 현재 금강산 관광객이 3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1월18일 한국 주민들에게 금강산 관광을 개방하기 전까지 북한의 1년 평균 금강산 관광객은 2천명을 넘지 않았다. 올봄 성수기부터는 현대측이 금강산 관광에 유람선 한 척을 더 투입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날마다 유람선이 뜬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되면 날마다 유람선이 뜬다는 얘기이다. 금강산 관광은 이제 본격적인 ‘속도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금강산 관광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금강호 선상과 금강산 현지에서 중간 점검했다.<편집자>

 금강산 관광객을 안내하는 현대측 가이드들은 금강산 광광을 ‘하지마 관광’이라고 부른다. 한때 유행했던 ‘묻지마 관광’에 빗댄 표현이다. 그만큼 금기 사항이 많다는 얘기이다. 금강산 관광 사전(辭典)에는 ‘발길 닫는 대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표현은 없는 셈이다.

 우선 가는 곳마다 사진 활영이 금지된다. 배가 장전항에 정박해 있을 때도 바깥이 보이는 6층 이상 선실에서는 촬영이 금지된다. 160mm이상의 망원 렌즈는 아예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장전항에 도착해도 사진 촬영은 금지된다. 그 이유는 장전항이 군항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뭣 모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카메라를 압류당하고 벌금을 물게 된다. 버스 이동 중에도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장전항에서 ‘금강산’ 번호판이 달린 36인승 관광 버스를 타고 온정리 휴게소를 거쳐 등산 코스 입구인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에 차창 밖 풍경은 볼 수만 이TWl 촬영은 안된다. 금강산에서 기념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은 휴게소와 토산품 매장 그리고 공연장이 자리잡은 현대 온정리 지구와 금강산 등산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이다.

제약 많지만 ‘깨끗한 명산’ 구경에 보람
 쓰레기를 버리는 따위 환경 오염 행위와 입산후 끽연도 엄격히 금지된다. 북한이 자랑하듯 ‘천하 제일 명산 금강산’을 보호 ·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등반이 시작되는 주창장 지역을 일단 벗어나면 화장실이건 어디서건 담배를 피울 수 없다. 규정을 어기다 환경 보호 감독 관리원(관리원)한테 들키면 역시 벌금을 내야 한다. 금강산 관광에서 또 하나 하면 안되는 것은 곳곳에서 눈에 띄는 암각(岩刻)글씨를 비방하는 일이다. 실제로 한 광광객이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보고 무심코 이를 비방했다가 공화국 비방 죄목으로 그 다음날 입국이 거부된 적이 있다. 어쩌면 관광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식 질서를 배우는 여행인 셈이다.

 항만 시설이 미비해 작으 배로 갈아타고 내려야 하는 점도 관광객들에게 질서와 인내를 강요한다. 엄격한 인원 파악 때문에 천여 명이 한꺼번에 한줄로 서서 내려야 하고, 출입국 수속을 하는 데에도 오랫동안 줄을 서야 하는 고생은 여전하다. 그렇다 보니 배를 타고 내리는 시간이 정작 산을 오르고 내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걸린다.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배려한 탓인지 세관 수속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것은 금강산 관광이 쇼핑관광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관광객들은 한국돈을 가져갈 수 없고 달러로 환전해야 하는데, 살만한 물건이 없기 때문인지 달러를 남겨오는 수가 많다. 호기심에서 사는 술 · 담배를 제외하면 산꿀 · 장뇌삼 가루 · 오징어 · 명태 따위 농수산물이 구매품의 대종을 이룬다. 기획 관광 상품 개발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같은 제약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측이 금강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관광객의 95%가 금강산에 다시 가고 싶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우선 금강산은 한국의 어떤 산보다도 잘 보존된 느낌이 든다. 한 관광객은 “금강산을 이렇게 잘 보존한 북한 당국과 주민들한테 감사한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것은 금강산을 가본 사람만이 할수 있는 말이다. 또 그것은 금강산 관광이 가져온, 북하느이 체제와 질서를 인정하는 열린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금강산을 관광하려면 누구나 동해에서 배를 타기전에 통일부가 주관하는 두 시간짜리 방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정부의 통일 정책과 방북시 주의사항에 관한 교육이다. 예컨대 △어렵게 열린 방북 길인데 북한 사람들을 괜히 자극하지 말자 △우리보다 못산다고 북한 사람들을 모욕하지 말라 △북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김일성은 ‘김일성주석’르로, 김정일은 ‘김정일 지도자 동지’라고 불러라등이다.

 금강산 관광은 잘 알다시피 북한이 선택한 방충망(모기장)식 개방의 산물이다.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개방이다. 기존 도로와 별도로 관광객 전용 도로를 개설하고, 그 도로 양옆으로 철조망을 치고, 관광 버스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약 2백m 간격으로 군인들을 세워놓고 하는 것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남북한 주민 접촉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또 북한 당국은 온정리 · 양진리 등 관광객에게 노출된 동네의 주변에 주민들을 동원해 새로 담을 쌓고 있다. 남한 광광객들에게 궁핍함을 보여주기 싫다는 의사 표시이다.

명승지 관광 넘어선 ‘통일운동’
 이제 석달밖에 안되었지만 북한측의 태도 변화도 조금씩 엿보인다. 초기에는 관광 버스를 보면 등을 돌리고 일부러 모른체했던 주민들이 먼저 손을 흔들고, 특히 아이들은 버스 행렬이 다 지나가도록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봄부터 해금강 코스가 개방되면 좀더 많은 접촉이 이루어질 것이다.

 북한 당국 또한 금강산 관광 사업(자)을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동업(자)으로 인식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최근 현대측 근로자들에게 발급하던 입국 비자를 두 달짜리에서 1년짜리로 연장해 발급하고 있다. 현지에서 사업운영을 총괄하는 김보식 상무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장전항에 4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선상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또 올봄부터는 현대가 지은 온정리 공연장에서 모란봉 교예단의 서커스를 관람할 수 있다. 아직 교섭이 진행 중이지만, 해외 공연에서 관람료를 50달러이하로 받아본 적이 없는 이 교예단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특별우대요금(20-35달러)을 적용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금강산 관광은 비로 제한된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남쪽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하나, 분단 이후 최초의 대규모 남북 인적 교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91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발효한 이후 8년 동안 접촉승인을 받고 북한측과 접촉한 사람은 총인원 2천5백명에 이른다. 그런데 금강산 광광 석 달 만에 이미 그 10배가 넘는 인원이 북한측과 접촉했다. 예전의 잣대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면 다수가 범법자이다. 더 많은 접촉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나 분쟁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당국간 개입과 접촉을 자연스레 유도할 수 있다. 체류 관광과 육로 개방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접촉과 대화 그리고 더 많은 교류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 관광은 통일운동인 것이다. 금강산에는 이미 민족 화해 · 협력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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