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개혁이 분쟁 불씨 남겼다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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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개혁 최종안 성과와 한계/‘MBC’등 결정 과정 미숙, 반발 불러

지난 2월 26일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 강원룡 위원장(82)은 방송 개혁 과제를 갈무리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대개 현상유지파 · 개혁파 · 혁명파 세 부류로 나뉜다. 그런데 개혁파를 늘 강하게 비판하고 탄압하는 세력은 혁명파가 아니라 현상유지파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서일까. 이해 당사자이면서도 자체 개혁안을 내놓지 않았던 지상파 방송사가 방송개혁안에 대해 보인 반응은 ‘최악’이다. 민영화 계획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MBC는 노조 성명을 통해 방개위개혁안을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음모’라고 공박했다. 2월18일 방개위 실행위원회를 전격 탈퇴한 전국방송노동조합연합(방노련) ·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 역시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로은 방개위 개혁안에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다. ‘21세기형 방송 토대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극찬을 제외하더라도, 대개는 ‘방송 독립의 밑그림은 그렸지만 통제 위험도 잠재한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가 일반적이다.

강원룡 방개위 위원장 “외압 없었다”
  다양한 시각과 이해 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방송 현안을 놓고 ‘정답’을 제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미숙함’에서 야기된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과정이 원만하지 못했던 의제들은 결국 분쟁의 불씨를 남겼다.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방개위가 내린 결론의 성과와 한계를 지적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방개위는 2월27일 청와대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그 임무를 끝내고 해체했다. 방개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보고서 내용에 흡족해 하며, 이를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주사위는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방송개혁안의 핵심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21세기 선진 방송 환경의 밑그림을 그리자는 것이 큰 뜻이었다.

 강원룡 위원장은 이번 개혁 기구가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개혁 논의를 진해했다고 주장했다.“위원장으로 위촉될 때만 해도 80%쯤은 외왑이 들어올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럴 경우 나는 바로 탈퇴를 선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위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방개위에 참여한 인사 누구도 그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통합방송법안 상정이 보류되었을 때 정부 · 여당의 ‘음모’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

 방개위의 활동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최종 보고서의 한계는 오히려 내부 역량에 연유한다. 급조된 단체인 방개위의 구조적 모순, 방개위 위원들의 개혁 성향과 보수 성향, 그리고 방송 논리와 산업 논리 등이 서로 맞서 파행을 겪은 의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방개위의 이중적 의사 결정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개위의 이중적 의사 결정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개위에서 토의되는 안건은 3단계를 거친다. 실무를 맡은 실행위원 30명이 1단계분과 회의와 2단계 전체 회의를 거쳐 작성한 안건은 개혁위원 14명이 모인 본회의에 상정되어 채택여부가 결정된다.

 이같은 구조 때문에 개혁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예고되었다. 방개위 개혁위원 1녕이 보수 성향의 인사들로 구성된데다, 방송계와 거리가 먼 인사가 다수 포진해 이들이 실행위가 올린 안건을 번복하면 말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위성 방송에 대기업 · 언론사 · 외국자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당초 실행위는 허용을 전면 금지하자는 의견을 단일안으로 올렸다. 그러나 본회의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보도 분야는 제외했지만, 위성 방송의 소프트 웨어를 제작하는 ‘채널 사용 사업자’에 한해 참여를 허용하자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위성 방송 외국 자본 참여’ 결정도 파행
 구조 조정을 하느라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대기업 · 언론사 들이 위성 방송에 참여하기 곤란하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또 국내 방소 소프트 웨어가 절대 빈곤한 현실을 고려할 때, 결국 위성 방송은 외국 자본들이 장악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 실행위가 우려하는 바였다. 그러나 본회의는 ‘외자 도입’이라는 정부 시책에 더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끝까지 개혁작업에 참여한 한 실행위원은 “문제는 본회의가 뚜렷한 설명도 없이 위성 방송 안건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그때부터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이 실행위원이 말하는 ‘그때’란 방개위가 2차 공청회를 앞두고 개혁 시안을 처음으로 공개한 2월18일을 며칠 앞둔 시점을 가리킨다. 위성 방송 문제 처리는 결국 2월18일 방개위를 탈퇴한 방노련 · 언노련 등이 ‘방소 개혁이 산업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할 빌미를 제공했다.

 위성 방송의 경우만 제외하면 적어도 실행위가 단일안으로 올린 의견은 모두 채택되었다. 그러나 ‘MBC민영화’방침은 또 다른 파행 결정 사례에 속한다. 2월18일 개혁 시안이 공개되었을때만 해도, 그같은 내용은 없었다. 이미 실행위가 28대1의 압도적 지지로 마련한 ‘MBC의 공적 성격 강화’방안이 본회의에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84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개혁 시안이 공개되자 MBC문제에 대한 처리 방침은 방개위의 최대 실책으로 부각되었다. 5개 일간지가 사설에서 이 문제를 집중 성토할 정도였다. 2월22일 여린 제2차 방송 개혁 공청회에서도 이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었다.

 강위원장은 언론의 반응에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제2차 공청회와 여의도클럽 간담회(2월24일)등 공개 석상에서 계속 ‘공청회 전에 공개한 시안들을 마치 확정된 개혁안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공청회를 무엇 때문에 열려고 한 것인가?’라고 항변했다. 공청회가 끝나자 방개위 본회의는 기존안을 철회하고 ‘MBC민영화’방안을 제시하고 실행위에 요구했다.

 강위원장의 지적도 그릇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공청회에서 제기된 문제는 개혁 방안에 반영될 터였다. 하지마 여론이 제기한 민영화 논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주축인 실행위원회가 결정한 사항(공적 성격 강화)을 뚜렷한 대안도 없이 번복한 점은 납득하기 힘들다.

 KBS의 경우도 그렇다. 방개위느 KBS구조 조정과 방송 수신료 인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가, 여론의 십자 포화를 맞은 뒤에야 ‘선 개혁, 후 인상’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위성 방송이나 MBC 소유 구조 등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 문제는 방개위의 구조적 모순에서 말미암은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도 방개위 참여 인사들은 이러한 여건을 극복할 정도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방노련 · 언노련이 방개위를 중간 탈퇴한 사실이 한 예이다.

 이들이 탈퇴한 목적은 끝까지 방개위에 남을 경우 최종 개혁안에 저항할 명분을 찾기가 힘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합법적 개혁 기구인 방개위를 이탈한 결과는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 방개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느 정권보다 더 많이 보장하고, 방송사 개혁에 대한 여론의 눈길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현실에서 탈퇴한 것은 큰 호응을 끌어내기 힘들었다.

 탈퇴 시점도 너무 빨랐다. 2차 공청회를 열기도 전에 방개위를 떠남으로써 방노련과 언노련은 ‘경기를 너무 일찍 포기한’결과를 낳았다. 강원룡 위원장이 지적했듯이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시점이었다. 이들이 계속 실행위원회에 머물렀다면 특히 ‘MBC민영화’같은 방향 선회에 제동을 걸 수도 있었다.

 방노련 · 언노련 등은 앞으로 권한이 막강해질 방송위원에 대한 인사 검증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권 세력의 ‘방송 장악 음모’를 꼬집었다. 그러나 인사 검증 장치의 주요 수단으로 제기된 ‘인사 청문회’는 통합방송법이 아니라, 현재 여야가 협의 중인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규정될 내용이어서 방개위가 ‘앞질러’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방송위원에 대한 인사 검증장치는 그에 대한 필요성에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마련될 전망이다.

방송의 독립성 강화에는 일조할 듯
 방개위의 임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혀안이던 방송의 독립성 강화는, 방송위원회가 행정권 · 준입법권 · 준사법권을 보유하게 되어 상당히 진전되었다. 또 방송위원9인을 대통령 · 국회 · 시청자 단체가 3인씩 추천하도록 규정해, 과거와 달리 집권 세력의 ‘일방 동행’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이와 함께 시청자위원회와 시청자가 주체가 되는 프로그램 · 채널 등을 신설할 수 있게 되어 ‘시청자 주권’을 향한 방송 환경 조성에 큰 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방개위가 가장 갈팡질팡한 지상파 방송사들에 대한 개혁 방안은 앞으로 여전히 문제로 남을 듯하다. 특히 MBC에 대해서는 민영화를 요구하고 다른 방송사에는 부과하지 않는 ‘공적 기여금’을 매출액의 7%나 내도록 결정한 데비해, 시청률 과열 경쟁을 주도해 오 민영 방송 SBS는 거의 개혁의 칼날을 비켜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민영 방송의 대주주 지분 상한선을 현행 30%에서 10%이하로 낮추어야 한다는 방송인들의 열망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쉽게 배제되었다. 방송의 공익성 강화가 개혁의 중요한 화두임을 떠올릴 때, 결코 ‘사유 재산’일 수 없는 전파방송의 독점적 경영문제가 계속 남게 되었다.

 강원룡 위원장은 “현재의 개혁안은 앞으로 얼마든지 바뀔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매끄럽지 못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친 안건에 대해서는 입법 전까지 좀더 집중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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