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돌’ 던질 자격 없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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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매체 상당수 제이유와 제휴·협찬 관계…비판 없는 홍보성 기사 게재

 
“사회부 기자가 제이유그룹을 비판하는 기획 기사를 쓰려고 하면, 산업부 기자가 그 정보를 미리 제이유그룹에게 알려줬다. 그런 식으로 비판 기사를 막곤 했다. 네트워트 마케팅(다단계) 업체는 상품을 개발하는 일보다 사회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언론계 인사가 전하는 제이유그룹의 언론 관리 비결이다.

서울 YMCA 시민중계실의 김희경 팀장은 “그동안 우리 나라 언론은 제이유그룹을 비롯한 네트워크 마케팅 피해 사례를 너무 방치했다. 냉정하게 점검하기보다는 일방적인 홍보에 앞장서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4월 초 MBC <PD수첩>이 제이유그룹의 석유 탐사 파문을 폭로하기 전까지 제이유그룹을 비판하는 언론사는 <내일신문>을 빼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메이저 신문 3사 가운데 5월4일 제이유 비자금 문제를 보도한 곳은 동아일보(1면)가 유일했다.

문제는 우리 언론사들이 대부분 다단계 판매 시장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의 ‘네트워크’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사가 많지 않은 것이다.
조선일보 계열 월간지 <이코노미 플러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사 자회사인 (주)조선일보생활미디어는 2004년 11월부터 경제 월간지 <이코노미 플러스>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문화관광부 정기간행물 등록 목록에는 이 잡지가 조선일보사가 아니라 제이유네트워크사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발행인도 정생균 제이유네트워크 사장으로 되어 있다. <이코노미 플러스> 관계자는 “발행처가 그 쪽인 것은 맞다. 우리가 기획 제작을 하고 납품을 해주는 거다. 아웃소싱의 일종이다”라고 말했다.

창간 당시 계약 조건은 제이유네트워크사가  매달 제작비조로 2억 원을 조선일보생활미디어에 낸다는 것이다. 어려운 잡지 시장 현실을 감안하면 쏠쏠한 장사다. 제이유측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1월 창간호의 경우 4만8천 부 가운데 4만2천 부를 제이유네트워크 회원들이 샀고, 조선일보생활미디어가 6천 부를 자체 판매했다. 2004년 12월호의 경우는 제이유그룹이 2만4천 부, 조선일보가 4천 부를 팔았다.

제이유그룹 회원 정기독자만 2만1천명에 달했다. 직접 <이코노미 플러스>를 판 적이 있다는 제이유 회원은 <이코노미 플러스>의 구매점수(PV)가 40%나 되는 바람에 인기가 있었다. 미처 창간하기도 전에 정기구독을 유치했다”라고 말했다.

 
<이코노미 플러스> 이창희 편집장은 “제이유그룹은 농어촌 특집· 중소기업 특집 기사를 제외하고는 책 전체 편집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주수도 회장 인터뷰는 창간 초기 한 번 한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측은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말했다. 현재 석 달치(6억원) 제작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 6월호부터 제이유와 손을 끊고 조선일보생활미디어 책임자가 발행인을 맡아 제호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조선일보 계열사와 제이유네트워크측의 이런 관계가 어떤 효과를 낳았을까? 조선일보 관계사인 <월간조선>은 최근 제이유네트워크를 해부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사화하지 않았다. 한 조선일보사 관계자는 “우리도 제이유그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면이 있어서 기사를 내보내기가 부담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은 “제이유그룹 기사를 내보내지 않은 것은 타이밍이 늦어 기사 선도가 낮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이유, 경제 일간지 지분 사들여

중앙일보사 역시 제이유그룹과 파트너 관계였다. 네트워크 마케팅 전문지 <비즈넷타임즈>를 발행하는 중앙일보VM은 2003년 6월19일  제이유네트워크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로써 중앙일보VM은 자사 잡지를 제이유네트워크 판매망을 이용해 팔 수 있게 되었다. PV는 15~20% 선이었다.

중앙일보 시사미디어사가 발행하는 <월간중앙>의 경우 2004년 8월부터 1년간 ‘중소기업을 살리자’라는 공동 연중 기획을 했다. 이 기획을 하면서 <월간중앙>은 매달 2천만원씩 제이유네트워크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월간중앙> 허의도 편집장은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기획 취지에 별 무리가 없었고, 제이유그룹측이 편집에 개입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PV는 30%로 높은 편이었다.

제이유그룹과 기사 제작을 이유로 협찬금을 받은 언론사는 한둘이 아니었다. 매일경제 자회사인 매경TV(MBN)는 2004년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주수도 제이유 회장을 고정 사회자로 출연시켰다. 이 대가로 제이유그룹은 월 5천5백만원씩을 매경TV에 주었다.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뉴스는 아예 제이유가 지분을 인수한 경우다.  파이낸셜뉴스는 2003년 자금 사정이 나빠져 부도설에 시달렸다. 그때 제이유네트워크가 지분 참여해 2004년부터 제이유그룹 자회사인 불스코코가 (주)파이낸셜뉴스신문 지분 2.5%를 가지고 있다. 이후 파이낸셜뉴스는 매주 한 번씩 네트워크 면을 따로 만들었다. 제이유그룹은 홍보실에 <언론에 비친 제이유그룹>이라는 소책자를 비치하고 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기사 가운데 대다수의 출처가 파이낸셜뉴스였다.

그 밖에 제이유그룹이 단순 협찬한 언론사 행사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1억원가량을 후원했으며 2004년 6월 디지털타임스가 주최한 ‘동북아 경제포럼’ 행사에 3천3백만원, 2005년 11월 서울경제의 ‘다단계 이제는 변해야 한다’라는 기획에 광고료조로 2천만 원을 주었다. 제이유그룹은 생활경제TV(SBN)라는 케이블채널을 운영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제이유그룹의 언론 협찬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언론사를 협찬하는 다단계(네트워크 마케팅) 회사가 제이유그룹뿐인 것도 아니다. 한 유명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는 한국기자협회 축구대회를 후원하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동률 박사(저널리즘)는 “광고 수입이 신문 경영에 절대적인 현실을 고려할 때 언론사가 광고주를 의식하는 것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처럼 기업이 광고를 미끼로 언론에 대해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나라는 드물다. ‘광고 따로 기사 따로’라는 말이 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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