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 묻은 개’ 나무란 일본언론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2006.05.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 촌지 파문 확산... 종합상사 사장 폭로에 <닛케이신문> “법적 조처”


 91년 봄 수서사건이 언론계로 비화하자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촌지 수수는 한국언론의 뿌리깊은 병’이라 꼬집으며 크게 비웃었다. 특히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는 2쪽에 걸쳐 한국 보사부 기자단 사건의 전말을 소상하게 보도하면서, 한국 기자를 돈을 보고 “원원(WON WON)"하고 짖으며 꼬리를 흔들고 침을 흘리는 개로 묘사한 삽화를 게재했었다.

 그러나 일본 언론계에서도 “원원”대신 “엔엔(YEN YEN)”이라고 짖는 기자가 있다는 의혹이 껍질이 최근 벗겨지고 있어 ‘똥 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랐다’는 격이 되었다.

 일본판 촌지사건이 처음 밝혀 진 것은 91년 12월. 오사카에 본사를 둔 중견 종합상사 ‘이토만’을 난맥 경영한 혐의로 기소된 전 사장등의 첫 공판 때 검찰측의 모두 진술에 따라 그 윤곽이 드러났다.

 그 진술은, 이토만측이 자사의 난맥 경영을 90년 5월에 특종 보도한 후 계속 불리한 기사를 보도한 <니혼게이자이신문>(이하 닛게이신문>)에대한 공작비로 그 내부자에 1천만엔을 건네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또 대중 주간지 《주간 新潮 전직 기자에 5백반엔, 격주간지《경제계》에 이토만측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하면서 2억엔을 건넸다는 사실이 폭로 되었다.

 하지만 《주간 新潮》전직 기자만 촌지를 수수했다고 인정했을 뿐<니케이신문>은 백여명을 자체조사한 결과 촌지를 받는 기자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 촌지 사건은 그 후 관심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러나 지난 2월1일 오사카지방 재판소에서 개재된 이토만 공판에서 촌지를 주었다는 아르카디아 코페레이션 고바야나와 시게투 사장이" <닛케이신문>에 대한 대책비로 내돈 1천만엔을 <닛케이신문>에 대한 촌지 의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대중 주간지《週刊文春》 최근호가 고바야카와 사장을 단독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닛케이 신문 기자에게 촌지를 준 날짜는 90년 9월 26일 오후. 당시 이토만 경영진은 경영권 장악을 놓고 주거래 은행인 스미모토은행과 암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닛케이신문>의 내부 정보를 수집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바야카와 사장의 오랜 친구라고만 밝혀진 그 기자는 부탁받은 날로부터 이틀 만에 이토만에 대한 공격을 맡은 기자의 인적사항, 그 기장의 정보원 그리고 <닛케이신문> 내부문서를 도쿄 캐피탈호텔 로비에서 건네주었는데, 그때 현금으로 1천만엔이 오갔다는 것이다.

 

기장 인적사항 공개 거부

 <닛케이 신문> 기자는 처음에 “돈은 필요없다. 그럴 마음은 없다”고 현금 받기를 거부했으나 “함께 나눠 쓰게. 샐러리맨도 출세하려면 돈이  들 게아닌가”라고 권유하자 촌지를 받았다는 것이 고바야카와 사장의 설명이다. 그가 이때 기자에게  “함께 나눠 쓰게”라고 말한 것은 그만한 정보를 겨우 이틀만에 수집한 것을 보내 내부 협력자가 더 있을것  같아 그렇게 말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고바야카와 사장은 <닛케이 신문> 기자의 인적사항 공개를 거부해 온갖 억측만 떠돌 뿐이다. 지금까지 일본 언론들은 가장 유력한 인물로 재계 거물의 아들, 이토만에 대한 취재를 말은 팀장, 경제부 데스크,<닛케이신문> 간부와 임원 들은 거론해 왔으나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인물은 없다. 고바야카와 사장는 그 이유를 “협력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내 책임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닛케이신문>이 나를 명예훼손제로 고소하면 누구인지 공개할 용의도 있다”고 말해 촌지를 받는 <닛케이신문> 기자가 의외로 빨리 밝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촌지 의혹 사건이 재연되자 <닛케이신문>측은 “작년 1월 내부조사를 한 결과 해당자가 없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라고 거듭 천명하고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은 채 공개석상에서 이를 거론한 고바야카와 사장에 대한 법적 조처를 강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편중보도 일삼아 비약적 성장

 그러나 이런 반박에도 불구하고<닛케이신문>이 다른 언론사로부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식의 의혹을 사는 까닭으로는, <닛케이 신문>의 보도가 지금껏 지나치게 업계에 치우친 성향을 보여왔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닛케이 신문>은 이토만 사건이 터진 직후인 90년대 10월 그토록 바라던 발행 부수 3백만을 돌파해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와 겨루는 일본의 4대 일간지로 떠올랐고, 경제지로서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약 2백60만부)을 누르고 세계 최대 발행부수를 기록할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닛케이신문>으로 하여금 비약적인 성장을 하도록 해준 것은 실은 경제계, 나아가서는 대기업에대한 편중보도를 일삼는 데 있었다는 것이 일본 언론계에 떠도는 상식이다. 이토만의 나낵 경영과 관련해 촌지의혹 사건에 휩쓸린 것도 바로 이토만보다 거대한 스미토모은행측에 유리하게 보도하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또한 <닛케이신문>의 불상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도 그런 의혹을 부채질한다. 지난 88년 전후에 최다 의혹사건을 발전한 ‘리크푸트 사건“이 터졌을 때 <닛케이신문은 모리다 야스시 사장을 해임에 가까운 형태로 퇴진시킬 수 밖에 없었다. 모리다 사장이 퇴진한 이유는, 리크루트사의 에조에 회장으로 부터 코스모스 주식 2만주를 양도받아 팔아서 약 8천만엔의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당시 <닛케이 신문> 편집국은 분노와 허탈감으로 충격에 휩싸였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회사 방침으로 기자들의 주식투자를 금지시킨 사장 자신이 몰래 주식투자를 해 왔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쿠(    )의 커튼이라고 불리는 일본 기자클럽의 폐쇄성과 함께 천지 문화도 일본 언론이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