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재정 ‘노란불’ 세금 덜 걷힐 듯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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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침체로 82년 이후 처음 2천억 부족... “적자재정 경각심 가져야”



 92년도 세금이 82년 이후 처음으로 덜 걷혔다. 92년도 국세 징수 실적(잠정)은 35조1천9백6억원으로 예산(35조3천8백63억원)에 비해 1천9백57억원이 부족하다. 특히 관세는 목표액보다 2천9백20억원이나 모자란다. 내국세도 4백73억원이 덜 걷혔다.

 세금이 덜 걷힌 가장 큰 요인은 경제침체에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하반기에 2~3%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았다. 세수 부족은 올해에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제가 자난해보다 크게 호전될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뜻밖의 세수 부족 사태에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올해 국세청 소관 목표액인 37조4백억원(총 세입 목표액은 41조7천3백억원)을 달성하기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관세청도 촉각을 세우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목표액인 3조4천억을 달성하기가 여의치 않다. 세수 확보가 어렵다는 소식이 납세자 사이에 퍼지자 국세청이 대대적인 세금 공세를 시작하지 않겠느냐 하는 걱정도 많아지고 있다.

 국세청은 92년을 분수령으로하여 1백80도 달라진 상황에 처해있다. 징세 실적은 경제가 매우 나빴던 82년을 빼고는 매년 예산목표액을 웃돌았다. 특히 88년부터 91년까지는 3조원 이상의 歲計잉여금이 발생해 곤혹스러웠다. 세수 예측이 부정확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하지만 92년의 세수부족에 따른 곤혹스러움에 비하면 그것은 ‘즐거운 비명’이었다

 이동안 정부는 남는 돈을 쓰기위해 추가경정예산을 짜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이 자신감의 근거는 ‘세입내 세출’, 곧 들어온 만큼 쓴다는 원칙이 지켜져 재정운용이 ‘건전’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적자재정이 안된다는 보장은 이제 없다. 조세정책을 세우는 부처인 재무부는 자난 2월 국회에 제출한 업무현황 보고에서 “지난해 경제성장이 저조하고 올해 경기도 불투명하여 세입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물론 지난해에 세금이 덜 걷혔다고 당장 적자재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예산에서 부족한 규모는 0.6% 수준이다. 나라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 데는 세금 수입이 절대적(93년 기준 97%)이지만 세금 말고도 국고에 들어올 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통범칙금이나 각종 수수료, 국유재산 매각 같은 조세외 수입으로 부족분을 채울 수 있다. 92년도 결산이 끝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산에는 잡혀 있는데 쓰지는 않은 돈도 생긴다. 이런 ‘예산불용’ 규모는 지난 몇년간 1천억~2천억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무부는 세금이 덜 걷혀도 세입은 세출보다 4천억원 가량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1조원 이상 적게 걷힌다면 재정적자가 될 공산도 있다. 정부는 올해 예산을 짤 때 경제성장률을 7%로 잡았으나 6% 성장도 어려울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견해다. 한국조세연구원 崔 洸 연구부장은 “예측치가 실적치에 1%포인트 밑돌 때 세수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계량화한 연구 사례는 없지만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행정력 동원한 ‘징세 압박’우려

 모든 세금이 경제성장률에 큰 영향을 받지만 그 잣대로만 세수를 예측할 수는 없다. 관세는 수입 규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으며, 법인세와 근로소득세는 기업경영 여건과 임금상승률에 민감하다. 또 부가가치세는 기업의 매출액 규모에, 특별소비세는 소비 동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올해 세수 확보가 어렵다고 보는 요인은 시차에서도 찾을 수 있다. 통상 경제동향이  세금실적에 반영되려면 6개월~1년 걸린다. 지난해 경제침체의 영향이 지난해 세수에 덜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세청은 올해 세수를 확보하기가 지난 몇년 간에 비해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얼마나 부족할 것인지 예측하기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본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국세청의 한 국장은 “올 상반기는 지나봐야 윤곽을 그 릴 수 있다. 이때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지금 이 문제를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세수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금이 정상적으로 걷히지 않게 되면 국세청이 대대적으로 세금 공세를 펼치지 않겠느냐”하는 일부 납세자의 시각도 걱정스러운 것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金居仁 징세심사국장은 “세금은 국세청이 마음먹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이거나 줄이는 게 아니다. 세금은 조세법률주의에 의거해 엄격히 세법에 따라 과세된다”고 말했다. 근거가 없는 과세는 있을 수 없는데도 이런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 기업의 세금업무 담당자는 “행정력을 동원한 압박은 강해지지 않겠느냐”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행정력 동원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국세청의 한 과장은 “가령 세무조사를 해서 탈세를 잡아낸다고 하자. 그러나 한 기업에서 10억원을 추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대기업이라도 자금계획에 잡혀 있지 않은 10억원을 일시에 추징당하면 견뎌낼 기업이 별로 없는데 정당한 근거 없이 추징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과장은 또 “세무조사등 세정을 통한 추징은 조세평평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 세수 확보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국세청 출신인 민주당 張在植 정책위의장은 “행정력을 동원한 세수 확보는 한계가 분명하다. 득이 적은데 조세저항이라는 무서운 대가를 치르면서 국세청이 무리하게 몰아붙이겠는가”라며, 이는 지나친 억측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씀씀이 얼마나 줄일지 관심

 국세청은 지난 2월 임시국회에 낸 업무현황 보고에서 “효율적인 세원관리와 공정한 세정운영을 통한 국가 재정수요의 차질없는 확보로 국가세입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다짐은 격려할 일이지 비판할 일은 전혀 못된다. 국세청의 최대 목표는 “국가 재정수요가 차질이 없도록 세수를 확보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세수 확보가 어려운 때에 국세청이 공격적인 세정을 펼 것이라는 견해는 설득력이 없지 않다. 재무부의 한 과장은 “행정력 강화는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국세청은 지난해에 정치적인 영향으로 조사에 소극적이었으므로 앞으로 법인세조사등 세무조사를 강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하면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소득을 숨기려는 잠재 탈세자를 위협하는 상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에서 영업 목표를 세우듯 세금을 할당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선세무서에 집중 징수관리체제에 들어가는 등 차질없이 세수 확보를 하도록 독려 하고 있다.

 올해 세금이 턱없이 적게 걷혀 예산규모를 크게 밑돈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정부는 돈을 갖고 있지 않지 때문에 한번 적자재정의 늪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지극히 어렵다. 적자재정을 메울 수 있는 방법으로는 중앙은행 차입·국채 발행·외자도입 등이 있지만 이는 재정인플레를 일으켜 경제를 망칠 수 있다. 적자재정을 원천적으로 막자면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든가, 아니면 씀씀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金泳三 대통령은 취임 전에 이미 올해 예산을 2조원 이상 줄여보라고 경제기획원 예산실에 지시했다. 이는 정부가 절약한다는 모범을 보이고 중소기업 등 소외당하는 부문에 지원을 늘리려는 목적에서 나왔지만 올해 세수가 불투명하므로 현실적인 조처로 비친다. 재무부 金永燮 세제심의관은 “아직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지만 현단계에서 적자재정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60~70년대의 적자재정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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