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다 질에서 뒤진 YS '호남 끌어안기‘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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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포함 6명 입각ㆍㆍㆍ“지역정서 대표성 미흡” 지적도


 김영삼 대통령의 ‘호남 끌어안기’ 정책이 관심거리이다. 그가 내건 국민 대화합은 바로 호남의 민심을 다독거려 날카로와진 지역성을 둔화시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관측통들은 2ㆍ26 조각을 통해 이 문제와 관련한 김대통령의 의지를 읽으려 한다. 우선 황인성씨를 총리로 임명한 것이 호남에 대한 배려인지 의구심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김영삼 대통령이 황인성 민자당 정책위 의장을 국무총리로 내정한 지난달 22일 오후 1시30분 국회 146호실에서는 민자당 의원 총회가 열렸다. 황인성 총리 내정자는 인사말을 하기 전 김종필 대표 자리에 가 인사를 했다. 김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은 다음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고, 그는 김대표에게 인사를 거듭하며 깍듯이 예를 갖췄다.

 이 장면은 바로 황총리의 오늘이 있게 한 단면이다. 황총리는 육사 8기생인 김대표보다 4기나 선배다. 그는 처세에 있어 자신의 과거 경력이나 계급 의식을 무시하는 독특한 행보를 보여 왔다. 70년 국방부 재정국장 때 예산이 언론에 보도된 데 책임을 지고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경리장교 시절 자기 부하였던 이병옥 당시 제1무임소장관 보좌관으로 들어갔다. 71년에는 김종필 총리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들어가 전북지사

교통부장관 눙수산부 장관을 두루 거쳤다.

 

‘정치 순발력’ 뛰어난 황총리

 그는 박정희 태통령의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5공과 6공에서도 중용됐다. 관측통들은 그가 이렇게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부하 밑으로 굽히고 들어간 처세술을 꼽는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천부적으로 온화하고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황총리가 계속 요직에 등용됐으나 그것은 원만한 대인관계의 연장이지 본인이 권력을 쫓아다니면서 아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그를 총리에 임명한 것은 그의 뛰어난 처세와 함께 거대한 수구세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지 호남 지역에 대한 배려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황씨는 총리로 내정된 후 “호남에 대한 김대통령의 배려라고 보느냐”고 기자들이 여러차례 질문했으나 한사코 이를 부인했다. 그는 ‘당정 일체’를 되풀이 말하며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당직자인 자신이 등용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호남 지역의 대표성을 부인하는 황총리 자신의 말이 아니라도 그는 호남의 정서를 대변하기에는 미흡한 인물로 여겨져왔다. 따라서 호남을 대표한다는 것이 국무총리 인선 기준이었다면 그는 대상에서 제외됐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국무총리 내정자가 공식 발표되기 전 언론은 유력한 대상자로 이돈명 전 조선대 총장, 홍남순 변호사, 윤 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등 전남 지역 인사와 김준엽 전 고대 총장(평북 강계), 그리고 언론인 박권상씨(전북 부안)를 거론했다. 특히 전남ㆍ광주 지역에서 신망이 높은 이돈명씨와 홍남순씨가 강력한 총리 후보로 거명됐고, 특히 이씨에게는 총리직 수락 권유가 막판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실상 김대통령측은 거명된 인사 중 누구에게도 총리직을 제안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져다. 이경재 청와대 공보수석이 이례적으로 “총리 내정과 관련해 누구도 사양한 사람이 없었다”고 밝힌 대목은 사실이었고, 이는 아무에게도 제안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다만 이돈명 전 총장한테는 김대통령의 측근이 찾아가 “앞으로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을 바란다”는 말을 했으나, 이를 조각과 관련한 제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황인성씨를 총리로 임명한 것은 지난달 초 김종필 대표가 강력하게 천거한 결과라고 알려졌으나 황씨 자신은 발표 전날 오후에야 내정 사실을 통고받았다고 한다.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내정하기 전 대상자들과 2~3시간씩 면담하면서 상대의 의중을 탐색하고 국정 운영방향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정가의 한 소식통은 총리 임명과 관련해 김대통령은 누구와도 면담을 시도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회창 감사원장의 경우에만 2~3 차례 독대하면서 이씨의 동의를 얻어냈다고 한다.

 이를 두고 김대통령이 호남 정서를 대변하는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았다고 보는 관측통이 적지 않다. 이돈명씨와 홍남순씨가 거명된 것은 여권의 ‘언론 이용’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생각도 없으면서 그들의 총리 등용 가능성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돈명씨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후 하루 다섯시간씩 찜질을 받고 있고, 홍남순씨는 82세의 고령이다. 광주 사람들은 언론이 총리 유력자로 거론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이미지와 품위가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이어 단행된 조각 내용을 보면 호남 출신인사는 총리를 빼고 5명이다. 이들은 오병문 교육(광주) 허신행 농림수산(전남 승주) 허재영 건설(전북 진안) 김덕룡 정무 제1(전북 익산) 유경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사무총장(전남 순천) 등이다. 숫적으로 볼 때는 그런대로 안배된 것으로 보이나 질적인 면에서 호남 지역에 대한 배려가 미흡했다는 시각도 있다.

 

오병문 교육부장관 기용은 ‘합격’

 광주 출신 한 언론인은 “김대통령은 선거때 호남 유세에서 ‘인사는 만사다, 이 땅에 호남 소외라는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조각 내용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한다. 그는 농림수산부와 교육부 장관 자리가 핵심 요직이라기보다는 조금만 잘못해도 몰매맞기 쉬운 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차관 3인방, 즉 한갑수 경제기획원(나주), 최인기 내무(나주), 조성욱 법무(광주) 중 한 사람은 승진해 입각할 줄로 기대했다고 덧붙였다. 인사와 관렿내 그는 “새 정부 개혁의지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고 말했다.


 호남 출신 각료 6명 중 호남 지역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오병문 교육부장관이 유일하게 꼽힌다. 그는 광주 항쟁과 관련해 5년간 해직됐던 전남대 초대 직선 총장 출신으로 광주 지역에서 신망이 두텁다.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과 허재영 건설부장관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한 인사들이지 지역 정서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김덕룡 정무 제 1장관은 김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평통 사무총장은 장관급이긴 하나 한직일 뿐 아니라 광주ㆍ전남 지역에서는 관변단체로 인식되고 이다. 유사무총장은 조각 발표날 집을 나가 종적을 감췄고, 이날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해단식에도 불참하는 등 인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한 야권 인사는 이번 인선을 보면서 김대통령이 호남의 지역성 해소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문제에 얽매일 필요 없이 그대로 놔둬도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호남을 포용하기 위한 김대통령의 3대 원칙은 과감한 인사 정책을 통한 인물 등용, 지역 균형 개발, 그리고 광주 문제 해결이다. 대통령 취임전 광주 문제에 대한 해결안을 제시하라는 5ㆍ18 항쟁 관련 단체의 요구에 대해 김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측근을 통해 종합해 보면 그는 광주 문제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 역시 지역감정과 신군부 세력의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김대통령은 집권 초반기에 민감한 광주 문제를 끄집어낸다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특히 그는 관련 단체와 민주당 광주특위가 요구하고 있는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에 대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부와 군부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그는 광주 문제에 대해 ‘점진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국민 대화합을 위해 우선 호남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러나 안팎의 장애 요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모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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