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정책, 재검토 도마 위에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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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ㆍ안보에 보탬 안돼 여권서도 비판ㆍㆍㆍ“핵시설 개발” 여론에 당국선 “불가”


 새정부 출범을 계기로 핵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전문가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정부의 핵정책은 91년 12월에 발표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명시되어 있다. 문제는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3조)는 규정에 묶여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2조)이 봉쇄됨으로써 경제적 ㆍ안보적 손실이 막대하다는 것이다. 재검토론의 핵심도 이들 조항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같은 주장은 비핵선언 발표 직후부터 핵공학계와 정부내 일부 핵전문가들이 제기해왔다. 박군철 교수(서울대ㆍ원자핵공학)는 “정확한 공학적 정의 없이 일반적으로 비핵선언이 발표됨으로써 원자력 자립화의 길이 봉쇄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핵정책의 유형을 크게 둘로 나눈다. 첫째는 핵보유정책이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비핵정책이다. 이는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되 그 반대급부로 경제ㆍ외교적 실리를 확보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정부의 비핵정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핵정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핵정책의 핵심인 농축ㆍ재처리 시설 보유까지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한 핵전문가는 “한국은 지구상에서 스스로 핵능력을 포기한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농축ㆍ재처리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막대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원전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우라늄농축 능력을 가진다면 매년 약 2천억원의 연료가공비를 절약할 수 있다. 재처리시설을 보유하면 △사용후 핵연료 재생 △의료ㆍ공업용 핵물질 추출 △독성 강한 핵폐기물 분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같은 경제적 이익 외에도 핵잠재력(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되 유사시 제조 가능한 능력)은 강대국 패권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안보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전쟁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을 뜻하는 ‘핵무기 보유’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박교수의 비판도, 이런 측면을 무시하고 ‘농축ㆍ재처리=핵무기’라고 생각한 정책입안자의 단견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 2월18일 국회 국방위에서 황명수 의원(민자)은 “민족의 자존심과 원자력 산업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는, 정부의 ‘안이하고 낭만적인’ 核無力化 정책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의원은 “정부 고위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핵정책이 지닌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비핵선언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검토론자들은 이같은 논리가 “핵무기 제조 능력만 봉쇄하면 핵보유를 막을 수 있다”는 50년대식 ‘기술이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핵무기 제조기술과 원료물질을 획득하기가 쉬워진 오늘날 핵무기를 보유할 동기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동기이론’, 또는 강대국의 핵능력 증강이 약소국의 핵보유 동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계이론’에 입각하여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은 핵무력화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 동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점을 전제할 때 핵사찰과 남북경협을 연계하기보다는 경협추진으로 북한의 핵보유 동기를 소멸시키는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핵은 더 이상 안보 수단이 될 수 없고 △비액선언으로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았으며 △재처리는 아직 경제성이 없다고 반박한다. 이는 정부의 공식 견해이기도 하다.

 재검토론자들이 주장하는 재해석의 근거는 첫째, 비핵선언 이후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 사실이 드러난 것은 비핵선언 당사자인 북측이 남측을 속였음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평화적 이용을 보장하면서도 농축ㆍ재처리는 포기한 선언 자체의 불완전성이다. 따라서 완벽한 국제사찰을 받아 투명성(모든 과정을 공개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농축ㆍ재처리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같은 재해석의 관건인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다.

 이같은 주장에 대한 새 정부의 입장은 아직 분명치 않다. 정종욱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수석비서관 내정자를 발표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핵문제가 남북관계를 너무 압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존 정책의 수정을 암시하는 발언을 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정수석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남북상호사찰보다 국제사찰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를 경계한 말이 잘못 전달됐다”고 말하고 구체적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민자당의 한 고위 인사는 “김대통령이 핵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며 당분간은 기존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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