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고르비’드 클레르크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2.04.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흑백차별 철폐’는 共産몰락 맞먹는 强震… ‘다인종 정부’ 추진, 실각 염려도

 프레드릭 드 클레르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자는 지독한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 실시로 악명높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직 대통령이며 후자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옛 소련의 해체를 가져온 페레스트로이카의 장본인이다.  얼핏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사람은 세계사에 남을 ‘개혁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찌보면 드 클레르크(56)는 고르바초프보다 훨씬 더 ‘신속한’ 개혁주의자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5년 취임 이후 91년말까지 점진적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해왔으나 드 클레르크는 89년 9월 대통령에 오른 지 2년도 안돼 44년간 남아공을 지배해온 인종차별정책의 대부분을 일거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드 클레르크 대통령은 최근 3천3백만 인구중 5백만명인 백인만을 상대로 완전한 인종차별정책 철폐와 권력의 흑백 공유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68.6%의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또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정치적 지진”이라고 표현했다. 드 클레르크 자신도 “이로써 아파르트헤이트는 영원히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정치분석가들은 남아공이 국내적으론 넬슨 만델라를 중심으로 한 흑인지도세력과 유화정책을 펴고 밖으로는 탈고립정책을 추구하는 등 과거와 다른 모습을 만들어낸 데는 드 클레르크의 남다른 노력이 컸다고 본다. 지난 89년 9월 문교장관겸 집권 국민당 당수이던 그가 철권통치로 악명 높던 피터 보타 대통령의 뒤를 이을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이 그의 ‘과거경력’을 들어 별 기대를 안했다. 변호사 출신인 그가 증조부는 상원의원, 숙부는 총리, 아버지는 장관을 지낸 귀족가문 출신인 데다 지난 48년 정권을 장악한 후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저책을 도입한 장본인인 국민당의 당수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일반의 예상은 그러나 취임 한달 만인 89년 10월 드 클레르크가 월터 시술루를 포함한 주요 반체제흑인지도자 8명을 석방함으로써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이듬해 2월엔 反아파르트헤이트 무장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합법화시킨 데 이어 61년 12월 반정부혐의로 체포돼 종신 복역중인 ‘남아공의 양심’ 넬슨 만델라까지 석방하는 등 대대적인 흑인유화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지난 91년 6월 출생과 동시에 인종을 분리해왔던 인구등록법, 인종별로 거주지와 영업지역을 제한한 집단거주지법, 국토의 87%를 백인소유로 만든 토지법 등 3대 인종차별악법을 철폐함으로써 국내외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미국의 보수적 칼럼니스트인 진 커크패트릭 여사는 이를 두고 “소련최고 인민회의가 공산당의 권ㄴ력독점을 포기한 것만큼이나 극적이고 본질적인 도덕적·지적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남아공에 대한 오랜 국제적 경제제재가 완화되고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 10개국 이상과 관계개선을 이룩한 것도 이같은 인종차별정책의 폐지 덕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드 클레르크가 일련의 혁신적인 인종차별 폐기 정책을 취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인종차별정책이 흑백간의 끊임없는 유혈충돌로 인한 내정불안을 가져왔고 국제적으론 지구상 유일한 인종차별국으로 낙인찍혀 각종 제재를 받아온 터였다. 특히 80년대 들어 계속 마이너스 성장에다 실업률이 30%에 달해 사실상 남아공의 경제는 한계상황에 온 시점이었다. 드 클레르크는 탈냉전의 신질서조류를 맞아 탈고립화와 대외협력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을 것이고 그 타개적으로 인종차별정책을 폐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얘기된다.

 오는 94년 9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드 클레르크 대통령의 발등에 떨어진 과제는 작년말부터 추진중인 신헌법 제정이다. 정부특과 ANC 등 19개 재야단체가 참여한 신헌법 제정작업에서 소수백인에 대한 권리보장을 요구하는 드 클레르크측은 이에 반대하는 ANC와 정면으로 맞서 있다. 드 클레르크는 신헌법이 제정되는 대로 올해 안에 흑인도 참여하는 과도정부를 수립하고 94년경 총선을 실시해 남아공 최초로 다인종 정부를 출범시킨다는 생각이다.

 드 클레르크는 최근 “어떠한 홍수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철근으로 튼튼하게 만든 교량과 같은 이미지를 가꾸고 싶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한 바 있다. 反아파르트헤이트의 기수인 그가 혁명을 완결지을 수 있을지 아니면 고르비처럼 도중하차할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