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의 공백을 화폭에”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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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50점 연작으로…□□□씨 ‘민중주체 시각’ 첫 시도

 경기도 수색의 허름한 농가 한 켠을 개조한 화실에서 만난 □□□씨(40)는 ‘제주 민중 항쟁사 연작’ 50점을 서울전시장에 올려보내자 “허전했다”고 한다. 3년간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겉핥기식’이라는 자책감에서였다는 것이다 제주출신인 그가 고향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의무감으로 시작했고, 글을 모르는 사람도 내용을 알아볼 정도로 사실묘사를 충실하게 했지만, 뭔가 미진했다는 것이다(4월3일부터 11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학고재화랑 전시). 관변 시각을 벗어나 민중이 주체가 된 시각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주요사건을 담은 연작 연사화는 강씨가 그린 ‘제주민중항쟁사’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강씨는 증언집 《이제사 말햄수다》《4·3 長□》에서 제주도민들의 생생한 사투리를 통해 그 당시의 현장감을 얻고 30여권의 관련서적에서 역사적 기록들을 학습하고 다섯차례 현장답사를 하여 ‘기록마다 오락가락한 사실’을 재정리하여 전체구성을 한 뒤 작품을 제작하는 순서를 밟았다고 한다.

 강씨는 “4·3의 전개과정을 그리되 그 당시 제주도민의 정서형태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라고 말한다. 회화의 재료나 작품 크기가 제각기 다른 것도 제주도민 정서를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 설명한다. 연작을 보면, 항쟁전개과정에서는 펜화 콘테화를 주로하여 사건의 진행을 따라 장면마다 밀도있게 그리다가 <하늘이 울다(天□)>를 기점으로 항쟁발발에서 학살에 이르는 과정을 1백호 이상 대형화폭에 아크릴릭과 유채를 써서 현란한 색채로 묘사했다. 또한 제주 민중이 ‘한라산 정기를 받아 대의를 위해 한 목숨을 거리낌없이 바친 사람’들임을 가리키는 장두를 그린 연작의 마침표<장두(狀頭)>는, 이에 앞서 해방의 기쁨을 암시한 작품 <학교창설>에서 선생님으로 묘사된 이덕구씨(유격대 사령관)가 다시 등장하여 존경받는 선생이 괴수로 돌변한 현대사의 질곡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강씨는 그동안 먹고 살기에 바빠 이제서야 첫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79년부터 86년까지 7년간 고등학교 미술교사(창문여고)로 재직할 때에는 주전자로 운동장에 물뿌려 그림그리기, 만화그리기 등 남다른 미술수업을 시도했다. 그는 회사원, 삽화가로도 생활했다고 한다.

 미술 평론가 李□□씨는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강씨는 대중적인 사회적 소통의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면서 그의 작품세계를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첫 단계는 80년대 한국미술의 이념적 중심 그룹이었던 ‘현실과 발언’의 동인 시절, 두 번째 단계는 88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현기영의 소설 ‘바람타는 섬(제주 해녀들의 반일투쟁이 내용)’의 삽화시절, 세 번째 단계는 제주 4·3의 연작시기라는 것이다. 특히 그가 ‘현실과 발언’의 일원으로서 ‘6·25전’에 출품했던 작품 <금순이>는 유행가 가락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다.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관능적이도록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뾰죽구두를 신은 모습으로 묘사하여 금순이라 양공주로 전락했음을 풍자했다. 삶속에 녹아있는 일상을 자신의 회화계에 독특하게 결합시킨 이 작품 이후 강씨는 대중성을 획득하면서 마침내 근대사의 공백을 찌르는 작품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씨는 아직 제주 4·3의 민주항쟁에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 “50점은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유격대원의 경우 <유격대원> <한 유격대원의 죽음> 등 두 점밖에 담아내지 못한 ‘이 시대인의 한계’를 느끼는 탓이다.

 전시와 아울러 강씨는 역사화집 《동백꽃지다》도 발간했다. 제주 민중항쟁사로 전시되는 각각의 그림 옆에 양인권씨(33·제주 4·3연구로 서울대에서 석사학위 취득)가 역사적 배경을 해설형식으로 써 넣는다. 일종의 삽화와 글의 엮음집이 되는 셈이다. 삽화는 원래 문맹자를 계몽하는 차원에서 시작됐으나, 르네상스시대 이후 고급취미의 회화에 눌려 계몽차원의 삽화류가 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강씨의 연작은 그림의 일차적 목적을 회복한 것으로도 의미를 찾을수 있으므로 미술에서 쟁취한 ‘웅혼한 4·3서사극’이라고 얘기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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