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만든 ‘3김 시대 30년’
  • 고종석(소설가·에세이스트) ()
  • 승인 1999.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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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비평

현대인이 세계에 대한 심상을 구성하는 것은 대중 매체를 통해서다. 우리들은 언론을 통해서 세상 일을 알게 되고, 세상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결정한다. 그런 커다란 힘을 지닌 언론이 조심스러움을 잃어버릴 때, 일반인이 세계에 대해 지니는 심상은 현실과 크게 어긋나게 된다.

 후삼김 시대라는 말이 유행한다. 여권에서 내각제 개헌을 유보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일부 언론이 유포한 말이다. 이 말은 매우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후삼김 시대라는 말의 속뜻은 ‘또 삼김이야?아, 지겨워!’라는 푸념이다. 후삼김 시대라는 말은 삼김 시대라는 말을 전제한다. 그리고 삼김 시대 부활 저지, 곧 삼김 시대종언을 외치는 일부 언론과 야권에 따르면, 한국 정치사에서 삼김 시대는 3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지금을 ‘이회창 시대’ 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문화 비평 난을 어줍잖은 정치 평론으로 채울 생각은 없다. 다시 말해서 나는 김씨 성을 지닌 세 원로 정치인의 거취에 대해서 논평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일부 언론이 사용하는 ‘30년동안의 삼김 시대’라는 말이 사실과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언론이 삼김 시대가 30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왔다고 말할 때, 그 30년은 아마도 71년에 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과정에서 나온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그 기점으로 삼는 것 같다.

 그렇다면 40대 기수론 이후 지난 30년이 과연 삼김 시대였나? 내 평범한 판단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삼김 시대’ 라는 ,  이 폭력적인 단순한 라벨을 울리 현대 정치사의 시대 구분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판단은 미루어 두자. 그렇더라도 그 삼김 시대는 높게 올려잡을 경우 고작87년 대선 이후에 시작되었고, 얼밀히는 김영삼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93년2월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삼김 시대는 30년 역사를 지닌 것이 아니라 긹 잡으면12년, 엄밀히는 6년반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왜 그런가? 대통령 중심제는 그 자체로 어느 정도 권력의 집중을 전제한다. 그런데,72년부터 87년까지 우리가 겪은 대통령 중심제는 정상적인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라 실질적 파시즘 체제였다. 그 시대를 지배한 두 군인, 박정희씨와 전두환씨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 김대중씨는 감옥에 갇혀 있었거나, 가택에 감금되어 있었거나, 외국에 추방되어 있었다. 그는 심지어 우스꽝스런 법의 이름으로 사형 선고를 받기까지 했고, 해외에서 납치되어 수장될 뻔하기도 했다. 상당한 기간,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언론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꼭 언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70년대 말에 그는‘재야 인사’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고, 80년대 초에 그는 ‘국사범’답게 ‘씨’조차 날아간 그저 ‘김대중’ 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다. 85년 2·12총선을 앞두고 그가 미국에서 귀국 했을 때, 많은 언론이 ‘전 비를 뉘우치지 못한’ 이‘대통령병 환자’를 비난했다.

 김영삼씨는 박정히 정권이 광기를 제어하지 못하던 79년에 야당 총재로서 국회의원에서 제명당 했고, 죽은 박정희를 대신해서 전두환씨가 철권을 휘두르던 80년대 초에는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김영삼씨가 연금에서 풀려난 것은 죽음을 각오한 단식 투쟁 이후였다. 그 단식 토쟁은 우리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그것이 언급되어야 할 맥락에서는 그 사건이 ‘정치 현안’ 이라는 말로 암시 되었다. 말하자면 72년부터 87년 사이의 파쇼 체제에서 한국 언론은 - 지금 후삼김 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외치며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언론 - 두 김씨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탄압에 적극적·소극적으로 공조했다.

 명확한 것은 이것이다. 70년대는 삼김 시대가 아니라 박정희 시대였고, 80년대의 처 여덟 해 역시 삼김 시대가 아니라 전두환 시대였다. 지금 이회창씨는 국회 제1당 총재다. 그는 투옥 위험도, 가택 연금 위험도, 해외 추방 위험도, 정치적 이유에 의한 암살 위험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70~80년대의 세 김씨(적어도 두 김씨)보다는 훨씬 더 안락한 상태에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집권에 더 근접한 상태에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을 이회창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이회창씨 자신부터 반대할 것이다. 거기에 동조할 언론도 있을 것 같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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