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북한 미사일 회담 타결의 의미/미사일과 일본 자본 진출 '빅딜' 가능성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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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종 목표는 일본의 수교 배상금‥ 경제 사정 호전 등 정황 증거 많아

 북한과 미국의 베를린 미사일 회담이 타결되어 한반도의 시계 바늘은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갔다.

  96년 7월14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국제문화회관 대회의실. 그 해 따라 도쿄의 여름은 무덥다 못해 푹푹 쪘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국제문화회관 대회의실은 각국에서 몰려든 취재진과 기업 관계자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 날의 주인공은 지난해 3월 '총살설'로 국내 언론에 대서 특필된 김정우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대경추) 위원장이었다. 이날 행사는 그 해 9월 나진ㆍ선봉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국제 투자 포럼에 앞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열린 나진ㆍ선봉 투자설명회 자리였다.

3년전에 이미 북ㆍ일 합작 움직임
  13박14일에 이르는 김위원장의 장기 일본 출장은 그가 국제 무대에 등장한 이래 가장 화려한 외출이었다. 그만큼 북측으로서는 심혈을 기울였고, 일본 역시 그에 걸맞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도쿄ㆍ나가타ㆍ도야마 등 일본 굴지의 공업 도시를 순방하는 형태로 진행된 투자설명회 기간에 일본의 3대 기업 마쓰이ㆍ미쓰비시ㆍ스미토모 대표가 그와 비밀리에 접촉했고, 나진ㆍ선봉 개발 계획을 깊이 논의하기도 했다.

 김정우와 일본 대기업 간에 이루어진 나진ㆍ선봉 개발 계획의 일단이 드러난 것은 바로 그 두 달 후인 96년 9월 나진ㆍ선봉 국제 포럼에서였다. 당시 투자 포럼에는 일본에서 이들 3대 기업 대표단을 포함해, 외무성 운수성 관계자 등 1백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 중 미쓰이 물산 계열인 도요엔지니어링 사와 신와붓산(新和物産)이라는 회사의 움직임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들은 나진ㆍ선봉 지역의 우암공단 개발 계획을 담은 소책자를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바로 우암공단을 도쿄 인근 가시마 공단과 같은 중화학 공업 단지로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도요엔지니어링측은 이 소책자가 북한 대경추와 협의해 작성되었다고 밝힘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일본 단독 작품이 아니라 북한과 일본의 공동 산물임을 드러냈다.

  가시마 공단은 일본이 60년대 중화학공업을 일으킬 때 견인차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러나 일본의 산업 구조가 첨단화하면서 사양 단지로 변모했고, 환경 문제 등으로 일본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은 가시마 공단의 주요 기업을 나진ㆍ선봉 지역에 이전함으로써 일거 양득을 노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단 이전에 드는 막대한 비용이 약 70억 달러에서 백억 달러에 이르는 수교 배상금으로 해결한다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3년 전 상황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은, 바로 미ㆍ북한 간의 미사일 회담이라는 공통 분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96년 4월 북한과 미국은 베를린에서 첫 번째 미사일 회담을 개최했다. 당시 무산되기는 했지만 중요한 것은 미사일 회담을 보는 양측의 시각이다. 요즘 들어서는 미ㆍ북한간 미사일 회담이 단순한 군사 이슈가 아닌 경제 이슈라는 시각이 보편화해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이런 시각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미사일 문제는 첫 출발점부터 경제 이슈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미사일 해외 수출 대금이 바로 북한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제2 경제 부문'(군수경제 부문)의 주요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부의 수입원을 다른 방식으로 보장하지 않으면 협상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미국 처지에서 항상 문제가 된 것은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미국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그 재원을 부담할 의사가 없었고, 의회의 반대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일본 처지에서도 겉으로는 불편했겠지만 속으로는 타산이 맞는 일이기도 하다. 어차피 북한과 수교 협상에 들어가면 배상금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이슈와 연계하지 않고 수교 협상만을 통해 막대한 자금이 북한에 들어간다는 것은 일본 국내나 주변 국가, 특히 한국을 설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의 불안 요인인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을 곁들이게 되면 한결 문제를 풀기가 쉬워진다. 그동안 북한 진출에 뜸만 들이고 있던 일본 자본이 96년에 일시에 움직였던 데는 바로 이같은 복잡한 배경이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제네바 회담 타결이 바로 3년 전 일본 자본의 북한 진출 움직임을 연상시켰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미ㆍ북한간 베를린 회담이 타결됨으로써 지난 3년간 대내외 여건으로 인해 닫혀 있던 일본 자본의 북한 진출이라는 판도라 상자 뚜껑이 열릴 가능성이 매우 커진 것이다.

  이번 협상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이런 지적이 단순한 상상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번 협상에서 매우 특이한 것은, 협상 타결 소식만 전해졌지 구체적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국내외 언론은 그동안의 협상 쟁점을 근거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고 모호하게 보도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추측일 뿐 과연 미ㆍ북한 양측이 어떤 수준에서 협상을 타결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언론이 보도한 수준을 훨씬 웃도는 빅딜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이번 회담에 임하기 전 미ㆍ북한 양측의 분위기를 볼 때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달러"
  우선 이번 회담에서 대북 제재 해제와 미사일 발사를 맞교환했다는 언론 보도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얘기는 사실 이번 협상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 8월 제네바에서 있었던 미ㆍ북한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측이 이런 제안을 했고, 북측은 이에 대해 "경제 제재 해제는 94년 조ㆍ미 협정 때 미국이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것이다. 먼저 이행하면 되는 문제지 새롭게 협상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완강히 버텼다고 한다.

  이번에도 북한측은 일관되게 이 주장을 펼쳤다. 애초에 낙관적으로 보였던 이 회담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막판에 비관적 상황까지 갔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따라서 북한측이 전혀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완강하게 버텼던 대북 제제 해제안만을 보고 막판에 협상을 타결지었다는 것은 논리로나 정황을 볼 때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또 실제 이런 수준에서 협상이 타결되었다면 그 결과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양측은 경제 제재 해제를 웃도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번 협상에서 북한의 노림수는 과연 무엇이었나.

  그 단서를 엿볼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지난 8월19일 북한 외무성 담화이다. 이 담화는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미사일 발사 문제)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처음으로 협상을 통한 미사일 문제 해결 가능성을 언급한 이틀 뒤에 나왔다. 담화의 전반부는 김정일 비서의 발언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내용이었는데, 주목할 것은 바로 그 후반부에서 일본을 걸고 들어간 대목이다. 즉 '일본이 유독 북한 미사일에 대해 신경 과민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이 '금세기가 다 가도록 우리에게만 청산하지 않고 있는 과거 죄행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북한 외무성 담화에 대해 당시 우리 정부 역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 8월26일 황원탁 외교안보 수석이 기독언론인클럽 조찬 강연에서 한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황수석은 문제의 외무성 담화 내용을 거론하면서 "북한은 미사일을 대미 협상뿐만 아니라 대일 협상 카드로도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대미 협상을 통해 식량과 중유 등 많은 것을 얻었으나 미국으로부터 경화(달러)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그 경화를 일본으로부터 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한테서 경화를 받는 방법이란 수교 배상금을 받는 길밖에 없다. 일본과의 수교 배상금 문제를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 자리에서 끄집어내 미국측 동의를 얻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지난 3년간 북 ㆍ일 수교 협상이 공백 상태에 빠졌던 것은 일본 정책 당국자들의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일본측은 오히려 매우 적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97년만 해도 당시 일본 외상이던 오부치 게이조 현총리는 97년 말 안에 북ㆍ일 수교 협상이 본회담까지는 진행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북한, 중국과 관계 복원 등으로 자신감
  일본이 당시 그렇게 하지 못했던 데에는 일본인 납치 의혹 사건이나 북한 미사일 발사 같은 요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미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 카드, 즉 일본 청구권 자금을 매개로 한 일본 자본의 북한 진출에 대해 카드로서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해온 측면이 있다. 일본의 국력 규모로 볼 때 언제든지 미국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내심으로는 자신들에게 덜 부담스러운 한국과의 동반 진출을 오히려 선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대북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갈등만 빚었고, 새 정부 들어서도 서로 마음만 터놓을 수 있는 대회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올해 들어 북한의 대내외 여건이 호전되어 감에 따라 미국도 마냥 시간만 끌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상대적으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우선 경제 상황 호전이다 지난 9월2일 일본의 교도 통신은 매우 의미 심상한 보도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올해 2월 농민시장폐쇄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농민시장은 지난 95년 대홍수 이래 중앙의 배급 체계가 무너지면서 그 대안으로 저절로 생겨났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아무런 대안 없이 농민시장을 폐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교도 통신 보도 내용을 추적하던 국내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9월 현재 농민시장 자체가 완전 폐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같은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보다 놀라운 것은 식량 배급 사정이 현저히 좋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2,3일씩 주거나 그마저도 중단되곤 했는데, 하반기 들어 15일차씩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평양 등 대도시에 국한되고 있지만 이같은 추세가 곧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 경제가 회생할 가능성과 관련해 지난 5월 국내외 전문가들의 시선을 끄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북한 경제가 이미 바닥을 쳤다는 주장이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주장한 사람이 바로 이번 베를린 회담에 미국측 수석 대표로 나온 찰스 카트먼 대사였다는 점이다. 지난 5월3일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주최 세미나에서 그는 이같은 주장과 함께 북한이 이미 '김일성 시대를 벗어나는 전환기에 처해 있고, 내년에는 김정일의 지도 하에 경제 분야에서 완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있다는 분석은 국내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지난 8월26일 한국은행은 98년 북한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1.1%대였다고 추정치를 발표했다. 97년 -6.8%까지 떨어졌던 데 비하면 감소 폭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경제가 이처럼 회복기에 들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요인들을 몇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우선 가장 큰 것이 바로 북ㆍ중 관계 복원이다. 그동안 국내에는 북한과 중국 간의 교역이 매년 축소되어온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는데, 비공식 분야에서는 사실상 대폭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즉, 원유 지원의 경우 97년 50만t에 이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금강산 관광을 통해 매년 현대측이 지급하는 1억5천만 달러와 국제 기구의 각종 지원 액수 역시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다급한 처지도 원인 됐을 듯
  최근 들어 경제 외에 군사적으로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국내 북한 전문가 사이에는 제일 교포 출신으로 북한 국사 평론가로 활동하는 김명철씨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간의 대담 자료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대담에서 김명철씨는 북한이 이미 89년에 다단계 미사일을 개발했으며, 93년의 시험 발사에서 하와이까지 날려 보냈다고 주장했다. 즉 여태까지는 지난해 발사된 대포동 미사일이 최초의 다단계 미사일로 알려졌는데, 이는 93년 시험 발사된 다단계 미사일의 개량형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이 유사시 미국의 워싱턴ㆍ뉴욕ㆍ시키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대륙한 탄도 미사일(ICBM)을 이미 확보하고 있으며, 여기에 탑재할 소형 핵탄두 제조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같은 미사일 개발 수준에 대해서는 미국 정보 당국 역시 발표를 못하고 있을 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북한과의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난 상태이며, 오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씨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기는 어렵지만, 그의 주장을 통해서 북한 지도부가 이상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엿볼 수 있다.

  북한측 사정과는 별개로 미국 역시 대북 협상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1~2년 사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한반도와 대만이라는 2개의 전선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북ㆍ중 관계가 복원됨으로 인해 전선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이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2개의 중국 발언을 계기로 대만에 대해 국지전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코소보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은 2개의 전선 중 하나의 전선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나머지 하나의 전선에서는 일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에서 미국을 도울 보조 세력이 필요한 상황이고, 그것이 바로 일본의 대북 진출 허용으로 나타났을 법한 것이다.

  일본의 북한 진출과 관련해서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이 앞으로 북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카드가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북한에 대한 일본 자본 진출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은 이미 중국식 개발도 미ㆍ일 식의 시장 경제회도아닌 '우리식 개방'으로 국제 사회에 등장하겠다고 호언한 바 있다. 즉 일본의 청구권 자금이 들어오더라도 '우리식 사회주의'의 골간을 유지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자본 진출로 나타날 북한 경제의 발전 방향이 북한측이 주장하는 대로 그들 식의 사회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이 될지, 아니면 미ㆍ일이 추구하는 구미식 시장 경제회로 나타나게 될지 하는 문제가 다음 세기 초 동북아시아 국제 역학 관계에서 최대 쟁점으로 등잘할 것으로 보인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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